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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칼럼 ‘돈을 다시 생각하다’ 76화

[마이클 케이시] 판도라 페이퍼스가 보여준 부패와 가상자산

2021. 10. 12 by Michael J Casey
최근 일련의 폭로 사건으로 중앙화된 권력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내렸다. 신뢰받는 중개 주체가 개입하지 않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출처=출처=Fikry Anshor/Unsplash
최근 일련의 폭로 사건으로 중앙화된 권력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내렸다. 신뢰받는 중개 주체가 개입하지 않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출처=출처=Fikry Anshor/Unsplash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통화 정책을 입안하는 고위 관리직의 주식거래 활동에 대한 폭로가 최근 잇따라 터지면서, 해당 논란을 계기로 미국 보스턴과 댈러스 연은 총재가 사임하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의 연임이 위태로워졌다.

또 지난주에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서 ‘판도라 페이퍼스(Pandora Papers)’를 공개했다. 1190만 기밀 문건을 토대로 작성된 판도라 페이퍼스는 전 세계 전·현직 지도자 35명, 91개국 330여 명의 정치인과 공직자들, 그리고 탈주자, 사기꾼, 살인자 등 범죄자들이 역외 피난처, 위장회사, 신탁회사로 자산을 옮겨 사업 거래를 숨기고, 수조 달러 규모의 탈세를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누군가는 이 같은 폭로가 이미 다 알고 있던 사실을 재차 확인해줬을 뿐 전혀 새로울 게 없다며 일축해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엄밀히 말해 전부 불법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식의 순진한 관점(내가 보기엔)을 취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 안에 두 가지 다른 룰이 존재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권력을 쥔 소수를 위한 룰이고, 또 하나는 나머지 다수를 위한 룰이다.

올해 어려운 사회경제적 여건을 감안했을 때, 이 불공평한 이분법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것은 우리 경제를 움직이는 중앙화된 기관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할 뿐일 것이다.

또한 가상자산뿐만 아니라 가상자산 옹호론자들이 만들고자 하는 탈중앙화된 대안적 금융 시스템의 전망에 이 같은 제도적 신뢰 측면에서의 타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오늘 칼럼에서는 이 문제들을 다루겠다.

 

위협받는 신뢰

앞서 말한 폭로는 전 세계적으로 빈곤층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지만, 부유층은 적어도 재정적 측면에서 훨씬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글로벌 보건, 경제 위기 상황에서 나왔다. 이는 생산적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장려하는 규제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깊은 당파적 분열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인들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또 전체 경제가 아닌 소수에 속하는 기관 관료들의 이익을 위해 효과가 의심스러운 통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앙은행에서 단행해온 양적완화(QE) 정책을 보다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핵심적 문제다.

지난 ‘돈을 다시 생각하다’ 칼럼과 팟캐스트에서 이미 여러 차례 말한 것처럼, 돈이란 집단적 상상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화폐란 모든 이용자가 해당 화폐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이 공익을 위한다는 믿음을 가질 때에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이때 규칙과 프로토콜,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우리는 신뢰의 기반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이미 보아서 알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짐바브웨,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정부를 무시하는 뿌리 깊은 생각이 점차 악화돼 실패한 통화 시스템이 위기를 반복해서 유발하는 사이클을 끊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선 이 같은 신뢰 붕괴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의 리더십에 있어 국내와 지정학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이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무한정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증거를 사람들이 충분히 확보하면, 곧 믿음은 모두 증발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대안이 되는 매력적인 모델이 등장한다면 그쪽으로 끌리게 될 수 있다.

이는 물론 가상자산 커뮤니티의 염원이기도 하다. 가상자산 커뮤니티는 은행이나 정부처럼 부패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중앙화된 중개 주체에 의존하기보다는 탈중앙화된 프로토콜을 이용해 규칙을 정립하고 거래를 실행하는 시스템을 원한다. 인간이 결점 없는 제도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결점 없는 수학을 믿자는 것이다.

출처=Michael Matlon/Unsplash
출처=Michael Matlon/Unsplash

크립토의 약속과 도전과제

내가 ‘염원’이라 말하는 이유는 일반 대중이 송금이나 저축의 주요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 또는 그 외 다른 코인을 이용하길 원한다는 구체적인 징후가 현재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일부는 적개심을 표할 수도 있다). 그 원인 중 일부는 잘못된 인식과 교육이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계가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이 안고 있는 중앙화된 취약성 중 많은 부분을 계속해서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류 언론에서 가상자산 업계가 지난 10년간 이룩해온 놀라운 혁신과 발전은 충분히 다루지 않은 채 해킹이나 손해, 실패 사례에만 지나치게 치중한다며불만을 토로하는 코인 옹호론자의 입장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 문제의 원인은 연은 총재들의 주식거래 논란이나 판도라 페이퍼스가 폭로한 거래가 이뤄진 원인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상자산 업계에는 남용이나 실패의 가능성이 있으면서 투자자의 자금을 맡아 관리하는 중앙화된 업체가 너무나도 많다. 쿼드리가(QuadrigaCX)마운트곡스(Mt. Gox)를 생각해보라.

이처럼 중앙화된 기업들이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업계 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충분히 발전되지 않은 측면도 있고, 진정으로 탈중앙화된 거버넌스를 실행하기에는 이용자 네트워크가 충분히 크지 않기(두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개발자들이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인터페이스되는 앱을 개발하기를 위해 중앙화된 수탁 서비스와 이용자 데이터 수집이라는 전통적인 규제 요구사항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암호화 솔루션을 마련하고, 탈중앙화된 방식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대중화를 장려하는 데 있어 놀라운 진전을 이뤄냈다.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에서 탈중앙자율조직(DAO)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면 그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반면 현 규제 체계는 이 같은 탈중앙화 움직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말이다). 특히 개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코인 대부분은 증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디파이의 탈중앙화 수준이 그렇게 분류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한 탈중앙성을 갖췄다고 말하는 업계의 주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끝으로 가상자산을 둘러싼 대중 담론의 질이 여전히 높지 못한 것도 문제다. 신뢰받는 중개 주체들의 존재를 없앰으로써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아직도 은행과 같은 중개 기관들이 범죄자 신원을 밝혀내 검거해내는 중앙화된 구식 패러다임의 룰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가상자산을 반대하기 위한 주장의 근거로 많은 사람들이 판도라 페이퍼스를 이용해 코인이 범죄자들의 자금 세탁을 용이하게 해준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릴 거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론 영지식 증명과 같은 개인정보보호 툴과 블록체인 애널리틱스가 개인정보보호와 탈중앙화를 추구하며 법을 집행하는 데 매우 귀중한 툴이 될 수 있다. 단지 이 기술들이 주류 담론에선 빠져 있어 감독당국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결론은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의 실패를 해결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탈중앙화 솔루션이 개발될 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우리를 혼돈 속으로 빠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영어기사: 박소현 번역, 임준혁 코인데스크 코리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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