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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스타트업 인터뷰⑧] 김지윤 DSRV랩스 대표

스테이킹 대중화에 모든 걸 건다 "블록체인 제일 재밌어요"

2020. 09. 25 by 박근모 기자
DSRV랩스의 팀원 모습. 여기에 최근 1명이 충원돼 총 8명으로 구성된다. 출처=DSRV랩스
DSRV랩스의 팀원 모습. 여기에 최근 1명이 충원돼 총 8명으로 구성된다. 출처=DSRV랩스

지독한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12일 DSRV랩스가 있는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공유하우스 논스(nonce)에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갔다. 논스의 위치는 신논현역과 언주역 사이, 국기원 뒷쪽 언덕이다.

저 멀리 논스 입구에서 슬리퍼에 반바지에 반팔티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아저씨가 보였다. 김지윤 대표였다.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 탓에 당혹스러워하며 김 대표는 "원래 이렇게 하고 다니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거짓말. 누가 봐도 밤새운 뒤 잠깐 광합성 하러 잠시 밖에 나온 모습인데? 김 대표는 그제야 실토했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그렇다"면서, 새벽부터 나와서 새벽까지 일을 하려면 편하게 입어야 한다고 했다. 역시 이 모습은 평상시 모습인 듯싶다.

명함도 교환하지 못한 채 논스 내 인터뷰 공간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다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건물 안에 피신해 있는 듯했다. 김 대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비밀 장소로 안내한다고 나섰다. 논스 앞 커피숍이었다. DSRV랩스에 찾아온 중요 손님만 모셔오는 장소라고 김 대표는 너스레를 떨었다. DSRV는 '~할 만하다'는 뜻의 deserve를 줄인 말이다. 내가 그곳에 갈 만한 손님이란 뜻인가. 후후. 이런 김 대표에게 권혁빈 CSO(최고전략책임자)가 슬쩍 눈치를 준다. 이 분위기 맘에 든다.

삼성전자의 능력있는 개발자였던 김 대표는 블록체인 업계로 들어온 것 자체가 특이했다. 그 이유인즉,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사실 원래 사용했던 언어만으로도 먹고사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근데 어느 순간 기술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거 같더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봤죠. 그러다가 눈에 띤 게 고랭이었어요."

2009년 구글이 개발한 범용 프로그래밍 언어 고랭(Go programming language, Golang)은 C언어(C++)에 비해 시스템 최적화가 편하고, 초보자도 쉽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문법이 단순하다는게 장점이다. 특히 컴파일이 가능한 오픈소스 언어라는 점에서 이더리움 등 다양한 블록체인 네트워크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새로운 언어로 고랭에 관심이 갔고,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어느새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다가 블록체인의 매력에 빠져든 셈이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코드를 공부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더군요. 네트워크, 프로세싱, 암호학, 사회학 등 다양한 기술이 코드에 녹아있었어요. 이 기술이라면, 모든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에 본 슬리퍼 끄는 아저씨에서, 엔지니어이자 철학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김 대표의 모습이 어쩐지 어색했던 건 비밀이다. 하지만 곧이어 듣게 된 이야기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에서 철학자로, 다시 신대륙 탐험가로 우뚝 선 인물을 처음 본 감회였달까.

"그 길로 삼성전자에 사표를 던졌어요. 그게 작년 4월이죠. 그만큼 이더리움에 푹 빠졌어요. 그렇게 나온 후 처음 한 일이 이더리움 전체 코드에 한글로 주석을 다는 일이었어요. 지금도 그걸로 이더리움을 공부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그거 다 제가 한 거에요."

나 같으면 삼성전자를 쉽게 그만두지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에 김 대표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아내만 빼고 온 집안 식구들이 반대했죠. 도저히 설득이 안 되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권 CSO는 조용히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어쩌다 보니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와 있었다고 나직이 설명했지만, 듣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2014년에 처음 비트코인을 접했어요. 그러다가 거래소에서 코어 개발자 겸 비즈니스 개발 업무를 했죠. 그즈음에 이더리움 퍼블릭세일에 참여를 했죠. 그렇게 구입한 이더리움을 다오(DAO)에 올인했어요. 믿었거든요. 휴… 그러다가 다 날리고,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 다우기술에서 HTS(Home Trading System) 영웅문 개발에 참여했죠. 이후에도 후오비코리아에서 상장이나 리서치 업무도 했죠,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이더리움 다오 해킹 사건은 2016년 6월 발생한 것으로, 이더리움 기반의 탈중앙화 자율 조직 프로젝트인 더다오(The DAO)는 당시 1500억여 원을 모금했다. 하지만 스마트계약상 이중지불의 취약점 탓에 640억원 어치의 이더리움을 도난당했다. 이더리움 재단은 포크(fork)를 통해 탈취된 이더리움을 복구하기로 결정했고,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해서 하드포크(Hard fork)가 발생해 이더리움 클래식(ETC)가 탄생했다. 권 CSO는 이더리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산 증인이었다.

논스 인근 비밀 카페에서 김지윤 대표(좌)와 권혁빈 CSO(우)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처=박근모/코인데스크코리아
논스 인근 비밀 카페에서 김지윤(왼쪽) 대표와 권혁빈 CSO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처=박근모/코인데스크코리아

김 대표는 웃으며 "권 CSO가 거래소뿐만 아니라 트레이딩도 했던 인물이다 보니, 암호화폐 시장을 예측하고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눈이 탁월해요"라며 DSRV랩스의 핵심이라고 추켜세웠다.

 

삼성전자 퇴직자에서 DSRV 창업자가 되기까지

김 대표가 삼성전자를 관두고 처음부터 DSRV랩스를 만든 건 아니었다. 무작정 논스에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와서 블록체인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지윤 대표를 비롯해 권혁빈, 전정호, 김종광, 최형규 등이 모이게 됐다. 블록체인 하나로 의기투합한 이들은 그해 9월 DSRV랩스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인터뷰 당시에는 공동창업자 5명과 엔지니어 2명이 있었지만, 최근 1명이 충원돼 현재 DSRV랩스에는 총 8명이 함께하고 있다.

블록체인 하나만 보고 모인 이들에게 시련은 빨리 찾아왔다. 열정은 넘쳤지만 성과는 없었다. 수익이 전무했다. 김 대표는 크게 2번의 고비가 왔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작년 11월과 올해 2월이 DSRV랩스의 가장 큰 고비였어요. 블록체인이 좋아서, 너무 재밌어서 모였지만 수익이 없는 거에요. 올해 2월 통장에 딱 200만 원이 남았더군요. 막막했어요."

권 CSO는 지난달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창업한 지 10개월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일만 했다는 거다. 무언가를 더 말할려는 권 CSO의 입을 가로막고 김 대표는 얼른 "돈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서로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모두가 흩어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었죠"라며 "사실 힘든 순간마다 우리를 도와준 크립토 키다리 아저씨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버틸 수 있었어요"라며 숨은 조력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제 월급도 나오는 거 보면, DSRV랩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건데, 뭘로 돈을 벌고 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검증인'이라고 짧게 답했다. 검증인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내에서 노드를 운영하고, 블록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작업증명(PoW)에서는 채굴을 의미하고, 지분증명(PoS)에서는 스테이킹(staking)을 말한다.

"검증인은 단순히 노드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블록체인에서 발생하는 거래를 검증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해요. PoS에서 검증인은 스테이킹으로 이뤄지는데, 스테이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 블록체인별로 막대한 기술 자원이 필요해요. 여기에 거래소와 연계도 필수죠."

PoS 합의 알고리듬을 활용하는 블록체인이 많아지면서, 스테이킹 서비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하나의 거래소 혹은 네트워크 전체에 대한 스테이킹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과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DSRV랩스는 이러한 틈을 파고들었고,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DSRV랩스는 테라(Terra), 첼로(Celo), 코다(Coda), 니어(NEAR) 등 프로젝트의 중요 검증인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차이스캔, 루나웨일, 첼로웨일, 논스데이터 등 스테이킹 모니터링 툴이나 온체인 데이터 탐색기도 공개했다.

DSRV랩스가 만든 루나웨일. 출처=루나웨일
DSRV랩스가 만든 루나웨일. 출처=루나웨일

네이버의 기술 스타트업 투자 프로젝트 'D2 스타트업 팩토리'(D2SF)로부터 자금 투자를 받으며, DSRV랩스는 성공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하며 "스테이킹 분야는 이제 걸음마를 하는 단계거든요. 우리는 탈중앙화된 PoS 생태계 인프라를 최대한 확장하는 게 목표에요. 그렇게 되면 누구나 스테이킹에 참여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현재는 거래소가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스테이킹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직접 해당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스테이킹 툴을 설치하고 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노드도 운영해야 하는 건 덤이다. 그만큼 일반인이 개인적으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생태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게 DSRV랩스의 최종 목표이자 계획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차례, 최종 질문이 남았다. 탈블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변에 탈블하는 분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블록체인이 너무 재밌어요.
이 좋은 걸 두고 탈블을 왜 합니까!"

김 대표는 만약 탈블하는 사람이 10명이라면, 더 쉽고, 재밌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선보여서 10배, 100배 이상의 사람들을 끌어오겠다고 했다. 오늘도 재밌는 블록체인을 개발하다 밤을 새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들은 다시 논스로 뛰어갔다. "블록체인 너무 재밌어요"라는 한마디를 다시 한 번 되풀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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