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Rob Curran/Unsplash
출처=Rob Curran/Unsplash

블록체인 산업의 종사자들을 만나다 보면 '탈중앙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탈중앙화에 대한 자세한 정의를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다. "기업이나 플랫폼 혹은 자산에 대한 결정 권한을 분산시키는 현상"이라고만 알아두면 이해하는 데 문제없을 것이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창립자나 개발자들 중 탈중앙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들이 보기에 현재 인터넷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중앙화 현상이다. 구글이나 메타(페이스북) 같은 소수의 기업들이 대부분의 콘텐츠에 대한 권한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화가 왜 문제냐고 묻는다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한 유튜브의 크리에이터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아주 잘나가는 인플루언서다. 하지만 어느 날 이 크리에이터가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콘텐츠를 포기해야 한다. 그가 만든 콘텐츠지만 콘텐츠에 대한 소유권은 그가 아니라 유튜브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책을 쓰더라도 책에 대한 판권은 소설가 본인이 아니라 출판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만들었지만 자기 게 아니다.

금융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금융 시스템은 소수의 은행과 증권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내 개인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고 치자. 하지만 어느 날 그들이 어떤 사유를 제시하면서 출금을 거부한다면 나는 재산을 못 받는다. 권력은 개인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아주 드물지만 가끔 일어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케이스는 반정부 시위나 활동을 하다 금융권으로부터 개인 재산을 압수당하는 사회운동가다. 이런 현상은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후진국'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종종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도 일어난다.

지나친 중앙화 현상이 문제라는 걸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프로젝트 창립자나 개발자들의 말을 듣다 보면 이런 현상이 오직 기업이나 권력자들의 잘못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개인 이용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구글이 그동안 어마어마한 권력과 영향력을 얻게 된 이유는 오직 그들의 탐욕이라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개인 이용자는 아무런 죄가 없고 구글이나 메타는 그들의 소중한 뭔가를 무자비하게 뺏어간다는 이야기를 엮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SNS 플랫폼들이 정신건강에 안 좋다는 내용을 담은 다큐를 봤는데 이 다큐 역시 모든 책임을 SNS 플랫폼 운영자들에게 묻고 있었다.

분명 이런 플랫폼들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우리의 방심과 약점을 끊임없이 노리면서 어떻게든 우리의 시간과 돈, 데이터를 뺏으려고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플랫폼에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돈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개인이다. 지하철을 탄 채 출근하면서 책을 볼 수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멍을 때릴 수도 있는데 한 직장인은 인스타에 몰두하기로 한다. 보통 그렇게 하기로 한다기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겠지. 하지만 그건 인스타가 아니라 그 직장인의 개인적인 결정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금융적으로 말하자면 조금 더 복잡하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아니면 개인 재산을 맡길 데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그의 개인적인 결정이긴 하나 그렇게 하지 않고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활동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직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인스타 없인 살 수 있되 돈 없인 못 산다.

탈중앙화금융(디파이, DeFi)의 목표는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온전히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만 봤을 때는 훌륭한 목적이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일반인 이용자 대다수가 진정 자산을 온전히 소유하고 직접 관리하고 싶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자기만의 상상으로 조립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사용설명서 대로 조립하고 싶을 것이다.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일단 자신의 자산을 온전히 소유하고 직접 관리한다면 책임질 사람이 본인밖에 없다. 여기서부터 대부분의 사람은 겁먹는다. 대중의 대다수는 자신 외에 책임질 사람이나 기관을 찾는다. 디파이 프로토콜에 자금을 넣었다가 그 프로토콜이 해킹당하거나 다운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프로토콜은 코드가 왕인데 왕국이 습격당하거나 위험해지면 코드가 책임지고 왕국을 지킬 것인가?

두려움 외에 더 막강한 요소가 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는 건 무서울 뿐만 아니라 매우 귀찮다. 일일이 다 챙겨야 하고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증권사, 브로커, 부동산중개업자, 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등이 먹고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 자신이 뭔가를 직접 할 권리가 있어도 대부분은 직접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군가한테 맡기고 싶다. 자신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를 찾아 고용하려 한다. 

왕이 되고 싶은 사람, 사장이 되고 싶은 사람,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극소수다. 대다수는 평민으로, 사원으로, 팔로우어로 살고 싶다. 왕관이란 매우 무거우니까. 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우리는 고대인처럼 여전히 누군가를 따르려고 한다. 우러러볼 상대를 찾는다.

디파이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은 사업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사원으로 안 살고 자신이 책임지고 자기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의 가상자산 시장을 살펴보면 시장에서 돌고 있는 자산 중 약 85%가 업비트나 빗썸 같은 중앙거래소에 맡겨져 있다. 디파이 세계에 유입된 건 15%밖에 안 되는 셈이다.

지금은 디파이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UI가 불편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게 개선되더라도 중앙화 현상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디파이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플랫폼들의 UI가 아무리 좋아져도 여전히 대부분의 이용자는 중앙거래소만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2가지다. 중앙거래소가 더 안전하다고 믿고 책임질 기관이 있다. 그리고 디파이는 어렵고 귀찮다.

지난주 부산에서 진행된 2022년 업비트 개발자 컨퍼런스(UDC 2022)에서 메타버스 플랫폼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를 대표하는 연사가 이런 말을 했다. 초기 인터넷은 원래 탈중앙화한 공간이었다고. 코드만 알면 누구나 웹사이트 구축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그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 디지털 세계였다고. 이런 탈중앙화 디지털 세계가 철저히 중앙화해버린 현재 인터넷으로 변질됐다고. 이유는 구글과 메타, 아마존(Amazon) 같은 거물들이 등장해서 그들만의 수익을 위해 이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장악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디지털 부동산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위의 스토리에서 빠진 게 있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구글 같은 거물 플랫폼을 찾는다. 대규모 플랫폼보다 소규모 플랫폼에 대한 불신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브랜드 심리다.

구글 같은 거물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판다는 사실, 자신을 추적하고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 자신의 약점을 노려서 시간을 뺏으려고 한다는 사실은 이용자가 다 알고 있다. 그래도 쓴다. 그래도 자신의 돈을 내놓는다. 이런 현상을 오직 구글만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는 무리다.

그래서 묻고 싶다. 탈중앙화는 가능한 것인가? 무엇보다 대다수의 이용자는 그걸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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