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도 결국 브랜드다
[미니칼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준혁
임준혁 2022년 8월21일 09:00
출처=임준혁/코인데스크 코리아
출처=임준혁/코인데스크 코리아

업계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종종 하는 경험이 있다. 지난 6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컨센서스 2022 때도 그랬고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 2022(KBW2022)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업계 사람이 나를 대충 훑어보고 특정한 눈빛을 띠고 눈을 휙 돌려버린다. 아마 그 눈빛은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다가 나보다 사회성이 더 뛰어나고 발이 더 넓은 동료 기자가 나를 가리키면서 소개한다.

"이쪽은 코인데스크 코리아 글로벌 에디터를 맡고 있는 펠릭스라고 합니다."

그러면 위에서 언급한 그의 눈빛이 달라진다. 무관심으로 덮였던 시야가 갑자기 맑아지고 활짝 열린다. 입가에서 미소가 핀다.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를 반긴다. 물론 날 소개해줄 동료가 옆에 없을 땐 내 명찰이 같은 역할을 할 때도 많다.

내 이름에 '코인데스크 코리아'라는 브랜드가 붙자 대우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굉장한 일이다. 매번 감탄한다.

참고로 나는 앞서 말한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가 나에게 보내는 눈빛은 날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 사실 난 무표정일 때 약간 졸리거나 지루해 보이는 외모고, 운동으로 불거진 몸에 맞는 옷을 찾기 귀찮아서 대충 입고 다닐 때가 많다. 이렇다 보니 네트워킹 파티에서 야심으로 가득 찬 영업 사원이나 고도한 전략으로 나선 프로젝트 대표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이해가 된다.

어쩌면 그가 나를 '별 볼 일 없는 놈'으로 판단한 것도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청난 자금이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한명의 월급쟁이일 뿐.

만약 내가 전통 금융 기업에 다니거나 정치인이었다면, 내 배경을 보고 날 판단하는 현상을 별 생각 없이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업계에 있는 직장인으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블록체인 업계 사람들은 '금융의 포용성'이나 '금융의 민주화,' '누구나 참여 가능한 오픈소스 네트워크,' '커뮤니티가 통제하는 프로토콜' 같은 개념을 자주 내세우기 때문이다. 심지어 "크립토는 기성 금융계와 달리 엘리트주의가 없다"거나 "크립토는 마지막 부의 사다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크립토 판 개발자들은 뛰어난 코드와 기술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고 싶겠지만, 인간은 브랜드와 명성에 약하다. 이쪽 사람들도 그렇다. 예를 들면 KBW2022 연사 중 이더리움 네트워크 공동설립자 비탈릭 부테린이 있었는데 그가 참여한 세션은 인기가 폭발적으로 많았다. 그렇지만 내용은 재미가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일단 부테린은 말을 재미있게 잘하는 편이 절대 아니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내용의 90% 이상은 이더리움 개발자가 아니면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근데 그 많은 군중이 그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이유는? 행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크립토 판은 개발자가 많고 개발자들은 옷을 잘 입는 집단으로 유명하지 않다 보니 '개발자룩'이 따로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영업 하는 애들은 여전히 정장이나 세련된 복장으로 다닌다. 나는 양쪽에 끼어들지 못해 양쪽한테 무시당한 셈이다. 결국 어찌 됐든 간에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나는 여기에 있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한 듯하다.

이번 행사에서 한 프로젝트의 대표는 세션 중 "모두에게 열려 있는 프로토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집단이나 한 국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부의 기회를 주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션이 끝나고 밤이 되자 그 프로젝트가 주최하는 파티는 "여기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냐"라고 말한다. 연설 때는 금융의 민주화, 놀 때는 VVIP. 뭐니 뭐니 해도 돈이 많다는 걸 보여줘야지.

다시 말해 난 이런 현상이 틀렸다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 단지 크립토 세상은 현실보다 조금 더 모순적일 뿐.

만일 다음 이벤트에서 당신이 나를 보자 "별 볼 일 없는 놈이네"라고 판단하고 무시했다가 내가 코인데스크 코리아 사람인 것을 알게 되면 너무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나는 나를 무시하는 당신의 눈빛을 봤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악수를 청하고 당신을 반길 것이다. 이게 바로 모두를 위한 금융 아닌가. 

Tag
#칼럼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상혁 2022-08-21 10:09:07
일단 저 명함 사진들 프로필 분들일 수도 있군요 신상이 보이는..
약간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있지않나 싶습니다.
처음에 행사장에서 지인이 없으면 용기를 내어 인사해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