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이 크립토를 찾은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출처=Sara Kurfess/Unsplash
필이 크립토를 찾은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출처=Sara Kurfess/Unsplash

“지인이 대체불가능프로젝트(NFT) 프로젝트 민팅(발행)을 신청하는데, 화이트리스트(우선권) 대상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했어요. 그런데 화리 대상 여부 확인을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주고 직접 지갑 주소를 찾으라고 했다고 들었어요.”

최근 한 업계 관계자를 만나서 들은 말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NFT 프로젝트 서비스의 UX가 부실하다'일 것이다.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이라는 뜻으로 사용자가 어떤 시스템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총체적 경험을 말한다. 하지만 웹3 환경에서 이용자가 겪는 경험은 웹2의 환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웹3의 고질적인 UX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필 히데얏니아 에어포일 최고경영자(CEO)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4일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비들 아시아 2022’ 행사에서 필 히데얏니아 CEO를 만났다.

웹3와 UX. 이 두 단어는 잘 붙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웹3 UX를 전면에 내세우는 회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UX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블록체인과 웹3 시장에 뛰어들게 됐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대뜸 필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게 됐다.

“프로그램이 가능한 화폐(programmable money)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 좋지 못한 형편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주로 대출을 받으며 살았죠. 금요일에 돈을 빌려서 당장 그 다음 주 화요일에 쓰는 그런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당장 돈을 빌려야 했기 때문에) 2~300%의 이자율을 받는 고리대금업을 이용했어요.

당시에는 그런 구조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돈을 빌릴 때는 누구나 빌릴 수 있는데 갚을 때는 (이율이 높아) 높은 위험 부담을 지니까요.

그러다 프로그램이 가능한 화폐를 만났죠. 그게 저와 가족의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필은 해커톤에도 참여하며 크립토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러다 ‘드리프트’라는 솔라나 기반 탈중앙화 거래소(DEX)가 디자인 의뢰를 필에게 맡겼는데 그 작업물을 본 다른 크립토 회사들이 필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은 에어포일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에어포일은 8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90여명 성장했다. 사업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에어포일은 2019년 설립돼 사업을 이어갔지만, 필은 팬데믹이 시작된 직후에 코로나19에 걸렸다.

“갑자기 코로나에 걸렸죠. 백신도 상용화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나왔을 때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잘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업은 커 가는데 리더인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클럽하우스에서 김민 에어포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만났다. 캐나다 소재 대형 통신회사인 로저스에서 상품 디자인을 맡은 김민 COO는 기술 분야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동업하게 되면서 회사는 성장했다.

필 히데얏니아 에어포일 CEO. 출처=박범수 기자/코인데스크 코리아
필 히데얏니아 에어포일 CEO. 출처=박범수 기자/코인데스크 코리아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고생해 차린 회사를 통해 웹3 UX를 어떻게 개선한다는 걸까?"

먼저 묻고 싶은 건 웹3 UX가 불편한 이유였다. 앞서 얘기했듯이 웹3에서 이용자가 겪는 불편함은 주로 UX 차원의 문제다. 간단히 말해 사용자가 웹3 서비스를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은 웹3의 UX 환경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크립토 업계에는 특정 서비스가 부진한 서비스여도 성공하면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만일, A라는 서비스의 UX가 형편없다고 해도 초기 시장에 진입해 성공했다면 후발주자는 그 UX를 답습한다는 것.

“사람들은 그들이 보는 걸 따라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또 그게 성공한다면 그걸 그대로 수용하고 따라가곤 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누군가 나서서 그게 아니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업계에서 서비스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낮게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크립토 시장에서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주 낮습니다.

만일 오픈시의 일일 활성 이용자 수(DAU)가 10만명이라고 한다면 크립토 업계는 아주 기뻐합니다.

동남아시아의 대표 차량 공유 기업인 그랩(Grab)과 고젝(Gojek)을 보면, 이들은 가상자산 지갑을 서비스에 적용하며 5억명의 이용자를 유치합니다.

크립토 앱을 보고 사람들은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잘 운영된다'의 기준이 아주 낮습니다.

크립토 업계는 현재 기술자 중심의 업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Alexandre Debieve/Unsplash
크립토 업계는 현재 기술자 중심의 업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Alexandre Debieve/Unsplash

또 필은 "크립토 앱은 전문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 상태로 더 큰 시장에 들어간다면 그런 앱은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필은 웹3의 UX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단한 방안을 제시했다. 기술 전문가가 아닌 다른 영역의 전문가가 업계에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분야가 아닌 영역에서도 사람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미국에서 웹3를 주제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기술 공학자와 벤처캐피탈(VC) 종사자밖에 없습니다.

애플이 상품을 판다고 생각해봅시다. 엔지니어가 제품을 만들지만, 애플은 뮤지션이나 영화 스타를 비롯한 그 문화를 아는 사람들을 상품에 포함합니다.

애플이 만드는 아이폰은 하나의 기술적인 장치일 뿐 아니라 그 안에 여러 앱이 구동하는데 거기에는 음악, 영상,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도 처음 나올 때는 ‘인터넷 회사’라는 말을 쓰며 독특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인터넷 회사’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모든 회사가 인터넷을 쓰기 때문이죠. 크립토 업계도 다양한 영역을 포괄해서 인터넷처럼 자연스럽게 쓰이는 용어가 돼야 합니다.”

필은 UX 개선 방안으로 이용자가 웹3 서비스에 가입할 때 정보를 제공하는 걸 제시했다.

통상 웹3가 아닌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용자는 이메일 주소, 이름 등의 개인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웹3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용자는 개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데, 필의 의견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서비스의 신뢰도가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필은 “웹3 앱이 이용자의 모든 정보를 받을 필요는 없다”며 “앱에 따라서 이용자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다르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 히데얏니아 CEO는 6일 비들 아시아 2022 행사에서 '웹3 UX는 끔찍하다(horrible)-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라는 주제로 기조 연설도 진행했다. 필은 "현재 웹3 앱은 모두 웹사이트 전면에 서비스가 무엇을 하는지를 설명하는데 '무엇(what)을 서비스하는지'보다는 '왜(why) 이 서비스가 필요한지' 설명해야 한다"며 웹3 생태계의 UX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필이 2019년 설립한 에어포일 스튜디오는 DEX인 드리프트 프로토콜, 다오(DAO, 탈중앙화자율조직)를 위한 자금 관리 툴 유토피아랩스 등의 UX 디자인을 맡았다. 또 솔라나랩스가 지난 6월 공개한 웹3에 특화된 스마트폰 서비스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국내 미디어 회사와도 협업할 계획이다.

비들 아시아 콘퍼런스 2022에서 기조 연설하는 필 CEO. 출처=박범수/코인데스크 코리아
비들 아시아 콘퍼런스 2022에서 기조 연설하는 필 CEO. 출처=박범수/코인데스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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