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좋아하는 '전통'을 향해 던지는 도발, "어이. 날 압축해보시지"
'압축하지마 세계대회' 서울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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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김동환 2022년 7월28일 13:00
출처=김동환
출처=김동환

"어우…저건 못 이기겠네…"

등 뒤에서 들리는 중얼거림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안경 쓴 한 중년 남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팔을 벌리며 무대로 걸어 나왔다. 그의 양팔과 몸통 사이에는 반짝거리는 기다란 은박지 수술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모니터 앞에 선 남성은 신호가 떨어지자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어느덧 10초가 지나자 버저음과 함께 모니터 정중앙에 글자가 뜬다. '1948KB'. 1등이었다. 목을 빼고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던 청중들이 박수를 보냈다. 지난 22일 저녁 서울 한남동 마더 오프라인(MOTHER Offline)에서 열린 '압축하지 마 세계대회(Don’t Compress Me, World Competition)' 풍경이다. 

'압축하지마' 세계대회에 참가한 이태호씨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김동환
'압축하지마' 세계대회에 참가한 이태호씨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김동환

이 대회는 동영상 압축 알고리듬에 나의 존재가 쉽게 압축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무작위(Random)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겨룬다. 동영상 촬영을 하는 카메라 앞에서 움직임과 음성으로 10초 동안 버텨서 가장 많은 용량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우승하는 방식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는 지난 2015년부터 독일, 스위스, 인도 등지에서 '압축하지마'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세계대회에서는 참가자 중 가장 압축이 덜 된 최종 우승자는 BTC(비트코인) 1개를 상금으로 받게 된다. 나라별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ETH(이더리움) 1개가 상금으로 주어진다. 

 

화려하고 빠르게 규칙성 없이…압축 덜 당하는 사람에게 상금 1BTC

이날 참가자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동영상 압축 알고리즘은 ‘H.264’.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보편적인 영상 압축 표준 기술 중 하나다. 초당 비트 수(bitrate)는 500kbps로 설정됐다. 이론적으로 봤을 때, 이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10초짜리 동영상의 최대 용량은 약 5000KB다. 그러나 동영상 압축 알고리즘이 반복되는 패턴이나 데이터는 압축하기 때문에 통상 용량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압축을 덜 당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화려한 옷을 입고, 규칙성 없이 무작위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이날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대회 참가자들이 저마다 가발, 우비, 군복 등 독특한 복장을 입고 온 이유다. 

경쟁은 치열했다. 은박지 수술 의상으로 잠시 1등을 차지했던 이태호씨도 형광 패턴의 독특한 우비를 입고 온 참가자에게 곧 1등을 내줘야 했다. 이씨는 “인간의 고유한 무엇은 압축될 수 없다는 아이디어에 동의한다”며 “역사적인 대회에서 1등을 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대회 1등부터 9등까지 참가자 동영상. 출처=김동환
이날 대회 1등부터 9등까지 참가자 동영상. 출처=김동환

 

한국 육군 전투복은 무작위 패턴이 적용된 의상 중 가장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옷이다. 노우주씨는 이날 실제로 상·하의 군복에 군화까지 신고 대회에 참가해 이목을 끌었지만 5등에 그쳤다. 생각만큼 ‘옷발’이 크지 않았던 탓이다. 노씨는 “압축을 덜 당하는 방법이 뭐가 있지 하다가 군복이 생각이 났다”며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실제로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압축하지마' 세계대회 서울 우승자 류승완씨. 출처=김동환
'압축하지마' 세계대회 서울 우승자 류승완씨. 출처=김동환

이날 대회 우승은 복잡한 격자무늬 패턴을 가진 우비를 착용하고 동영상 용량 2214KB를 기록한 류승완씨가 차지했다. 그는 우승 상금으로 받은 1이더를 기념으로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메타마스크가 뭔지 몰랐는데 오늘 대회 참가하느라 처음 깔았어요. 코인은 오래전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변동폭이 너무 커서 무섭다는 생각만 해왔죠. 오늘 대회 우승해서 코인이 실제로 생기니까 신기한데요. 일단 이더리움이 하나 생겼으니까 이제부터 좀 알아보지 않을까요. (웃음)”

압축하지마'를 만든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 출처=김동환
압축하지마'를 만든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 출처=김동환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 짧막 인터뷰

-'압축하지마'는 어떤 취지의 작업인가 

"인간, 사물, 서비스 등 모든 것들이 데이터 형태로 저장되고, 갖가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그 데이터를 예측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세상 아닌가. 이런 현대 사회를 냉소하면서 가장 압축되지 않는, 고유한 사람이 우승하는 대회 형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세계대회 우승자에게는 1BTC, 나라별 우승자에게는 상금으로 1ETH를 준다. 코인과 이 작업이 연결되는 지점을 설명해준다면
"'압축하지마'는 간단히 말하면, 인공지능(AI)에 예측당하지 않는 삶. 평균화되지 않는 삶에 대한 얘기를 하는건데. 그런 게 경제적으로는 당연히 블록체인하고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게 2015년부터 했던 작업이다.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그냥 그런가부다 하고 보는 느낌이었다면 최근 코인하고 연결이 되면서부터는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미래적인 프로젝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왜 그런 반응이 나올까. 
"뻔하지 않은, 다양성을 갖춘 고유한 존재들을 찾는 프로젝트라서 그런 것 같다. 가령 최근 이더리움 진영에서 나온 소울바운드 토큰(Soulbound token, SBT) 같은 걸 보면 경제 영역에서도 뭔가 전에 없던 게 나오고 진화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지 않나. 그게 결과적으로 '압축하지마'의 개념과 어울린다. 거기보다 기존 경제 시스템은 뭔가 계속 지키고 있다는 느낌밖에 주지 않는다."

 

-향후 세계대회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아직 구체적인 날짜는 나오지 않았지만, 서울을 시작으로 미국, 아르헨티나, 스페인, 네덜란드, 인도, 영국, 독일, 스위스 등을 순회하며 나라별 우승자 1명을 선정하고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대회 페이지를 통해 기존 대회 영상이나 사진, 향후 대회 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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