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출처=김동환/코인데스크 코리아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출처=김동환/코인데스크 코리아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개발이나 운영을 맡는 재단은 자신들이 발행한 가상자산 규모나 용도를 공개한다. 초기 가상자산 분배 계획은 백서로 밝히고, 운영상 사용 내역은 틈틈이 공개한다. 권도형 테라폼랩스가 개발한 테라도 그럴까? 

 

정체 불명의 대규모 자금 발견

그동안 권도형 대표는 자신의 SNS나 테라 재단을 통해 LUNA(테라)와 UST(테라USD), BTC(비트코인) 등 사용 내역을 공개해왔다. 예를 들면, UST(테라USD) 디페깅(1달러 가치 불일치 현상)이 발생했을 때 재단이 보유한 자금을 통해 가격을 방어하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온체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테라폼랩스와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 등이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한 지갑에서 출처와 사용 내역이 불분명한 뭉칫돈이 발견됐다.

그렇게 찾은 비자금은 UST(테라USD)와 USDT(테더)를 합쳐 36억달러(약 4조6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이 자금이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와 중앙화 거래소 등에서 옛 LUNA(현 LUNC)의 시세조종 및 자금세탁에 활용됐을 정황도 드러났다.

 

6월14일 특종 이후 두 번째 의혹 제기

블록체인 보안기업 웁살라시큐리티와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지난 5월7일 테라 폭락 사태 이후 온체인 데이터 포렌식 기법을 통해 테라 프로젝트 붕괴 과정을 조사했다. 지난 6월14일 첫 번째 단독기사에서는 세계 여러 분석 업체가 테라 폭락 사태의 시발점으로 지목하고 있는 지갑(0x8d47f08ebc5554504742f547eb721a43d4947d0a)을 둘러싼 코인 흐름을 추적했다.(편의상 이 지갑을 ‘지갑 A’라고 칭한다)

그 결과 74억5985만7681달러(약 9조5020억원) 상당의 USDT, USDC(US달러코인), UST가 두 개의 바이낸스 지갑으로 입금됐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들 지갑은  테라폼랩스와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가 소유하거나 관리한 지갑이었음을 온체인 데이터로 증명했다. 결국 테라 사태는 내부 소행이 아닌지 의심할 만한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웁살라시큐리티와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추가 온체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 중 약 36억달러에 달하는 출처 불명의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테라폼랩스 관련 지갑에서 발견한 4.6조원 규모의 수상한 자금 흐름 구조도. 출처=웁살라시큐리티
테라폼랩스 관련 지갑에서 발견한 4.6조원 규모의 수상한 자금 흐름 구조도.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이 자금은 크게 3가지 경로로 움직였다.

  1. 디파이 서비스 아브라카타브라와 커브(0xa046a8660e66d178ee07ec97c585eeb6aa18c26c) - 편의상 이 지갑을 ‘인터체인지 지갑 A’라고 칭한다.
  2. 바이낸스 거래소 이더리움 지갑(0x21ec2dbb3bfd2210a84bbc924466a70becddd572) - 편의상 이 지갑을 ‘거래소 지갑 A’라고 칭한다.
  3. 바이낸스 거래소 테라 지갑(terra1ncjg4a59x2pgvqy9qjyqprlj8lrwshm0wleht5, 메모: 100055002) - 편의상 이 지갑을 ‘100055002’라고 칭한다.

 

웜홀을 통해 인터체인지 지갑 A로 UST 30억여개가 흘러 들어간 모습.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웜홀을 통해 인터체인지 지갑 A로 UST 30억여개가 흘러 들어간 모습.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웜홀과 아브라카타브라, 커브를 통한 수상한 자금 흐름

온체인 데이터 분석 결과 인터체인지 지갑 A는 2021년 11월17일부터 테라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22년 2월5일까지 9개 지갑으로부터 약 36억달러 상당의 UST를 전달 받았다.

먼저 인터체인지 지갑 A는 2021년 11월17일경 웜홀(Wormhole)을 통해 UST 30억1583만9069개를 이더리움 기반 UST로 받았다. 웜홀은 이더리움, 테라, 솔라나, 폴리곤 등 서로 다른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가상자산을 교환해주는 디파이 서비스다.

인터체인지 지갑 A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자금 흐름을 발견했다. 2020년 12월29일경 3만개에 달하는 UST가 웜홀을 통해 발행과 동시에 빗썸의 사용자 지갑으로 입금된 것. 통상 이런 패턴의 거래는 프로젝트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래다.

일반적으로 거래소 사용자 지갑으로 특정 코인이 바로 발행돼 입금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사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조재우 한성대 교수는 빗썸이 UST 상장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나타난 흐름이라고 추정했다. 특정 코인을 상장하기에 앞서 프로젝트 재단과 거래소가 대개 직접 코인 송수신 테스트를 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거래소가 코인을 상장하기 전 미리 거래소 지갑에 입출금 테스트를 진행한다”며 “UST가 빗썸 사용자 지갑으로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빗썸에서 UST가 상장되지 않자, UST 3만개는 2021년 1월29일경 다시 인터체인지 지갑 A로 되돌아갔다. 결과적으로 빗썸의 사용자 지갑과 웜홀로 연결된 인터체인지 지갑 A는 모두 테라폼랩스가 관리하는 지갑인 셈이다. 

인터체인지 지갑 A를 거쳐간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테라폼랩스의 UST. 빗썸으로 들어간 모습도 보인다.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인터체인지 지갑 A를 거쳐간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테라폼랩스의 UST. 빗썸으로 들어간 모습도 보인다.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인터체인지 지갑 A의 수상한 자금 흐름은 이것만이 아니다. 테라폼랩스의 관련 지갑에서 디파이 서비스 커브를 거쳐 대규모 UST가 또 다른 스테이블 코인으로 바뀌고 있었다.

2021년 11월17일부터 올해 2월5일까지 인터체인지 지갑 A는 커브(0x55a8a39bc9694714e2874c1ce77aa1e599461e18)에서 디파이 대출 플랫폼 아브라카타브라에서 사용하는 스테이블 코인 MIM(매직 인터넷 머니)으로 UST 32억6613만2160개를 MIM 32억7505만8076개와 교환했다. 곧이어 인터체인지 지갑 A는 MIM 30억3010만998개를 USDT 28억7448만610개로 바꿨다. 최종적으로 인터체인지 지갑 A에 있는 USDT는 바이낸스, 후오비, 쿠코인, 오케이엑스 등 거래소뿐만 아니라 점프 크립토로 나뉘어 옮겨졌다.

테라폼랩스가 UST를 MIM으로 바꾼 후 다시 USDT로 교환하는 다소 복잡한 단계를 거친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테라폼랩스가 보유한 UST가 시장에 풀려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등 변동성을 주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만큼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앞서 설명한 아브라카타브라는 대출 서비스로, UST를 담보로 MIM을 빌릴 수 있다. 담보로 맡긴 UST는 아브라카타브라의 유동성 풀에 고이 보관된다. 그리고 MIM을 사용성이 월등한 USDT로 바꾼 것. 결국 테라폼랩스는 시장에서 LUNC와 UST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은 방식으로 UST를 비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지갑 A와 테라폼랩스의 관계

인터체인지 지갑 A에 있던 UST는 돌고 돌아 USDT로 바뀐 후 전 세계 거래소로 뿌려졌다. 그 중 거래소 지갑 A에 10억8939만3518개에 달하는 USDT가 입금됐다.

거래소 지갑 A의 입금 내역을 전수 조사해보니, 테라 생태계 발전과 지원금을 관리하는 비영리조직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에서 6000만개의 USDT가 흘러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LFG가 테라 폭락 당시 UST 가격 유지를 위해 활용한 지갑(0x6b671b51258db0316dd89bc0075d6113488be5e8) 그리고 테라 가상자산공개(ICO) 지갑(0x52032989864bb4cb17c7f9fad4c25b19d36ba7de)과 송금 내역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거래소 지갑 A는 테라폼랩스의 지갑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UST 디페깅 조짐이 나타나며, LUNC가 폭락하기 하루 전인 5월6일 거래소 지갑 A에는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USDT 3억개(약 3800억원)가 입금돼 또 다른 바이낸스 거래소 지갑으로 빠져나간 정황도 발견됐다. 이 자금에 대해서는 거래소 지갑 내에서 옮겨진 만큼 온체인 데이터 분석으로는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테라폼랩스가 거래소 지갑 A로 USDT를 입금할 때를 기점으로 LUNC 가격이 널뛰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테라폼랩스가 거래소에 입금한 USDT로 LUNC 가격을 시세조종했다고 추정할만한 근거가 남아있는 것. 이에 대해 패트릭 김(김형우) 웁살라시큐리티 대표는 “테라폼랩스가 수조원에 달하는 출처가 불분명한 USDT를 테라 사태 직전까지 거래소로 입금한 점에서 시세조종이나 자금세탁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사당국이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후오비, 쿠코인 등 중앙화 거래소의 내부 데이터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체인지 지갑 A를 통해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USDT가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후오비, 쿠코인 등으로 분배되는 모습.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인터체인지 지갑 A를 통해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USDT가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후오비, 쿠코인 등으로 분배되는 모습.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출처를 알 수 없는 UST와 자금세탁 정황

지난 기사를 통해 100055002는 바이낸스의 테라 지갑으로, 테라폼랩스와 관련된 지갑이라는 근거를 공개했다. 이 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00055002는 인터체인지 지갑 A와 정확히 일치하는 5개의 지갑으로부터 UST 총 4억657만3890개를 받았다.

여기에 추가로 100055002는 LFG의 공식 지갑(terra1gr0xesnseevzt3h4nxr64sh5gk4dwrwgszx3nw)으로 1억개의 UST를 보낸 기록이 있는 테라폼랩스 관련 지갑(terra17p4mqd7yl9m0r7cfv0nf9s9zae3d3gm4tmyg2a)으로부터 사건이 발생하기 5일 전인 5월2일까지 UST 26억6557만9215개를 전달받았다.

온체인 데이터 결과를 근거로 결과적으로 테라폼랩스와 관련한 여러 지갑을 통해서 출처 불명의 UST, USDT 등이 비정상적인 거래와 자금 흐름에 활용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웜홀과 커브, 아브라카타브라 등 디파이를 활용해 기존 가상자산을 새로운 가상자산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자금세탁을 의심할만한 정황도 보인다.

물론 여러 디파이 서비스를 거쳐 가는 방식으로 자금이 섞인 이상 그 갈래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최종적으로 해당 자금이 흘러간 바이낸스 등 거래소가 지갑 정보를 공개하기 전에는 남은 가상자산이 얼마인지, 다시 어디로 전송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반대로 말하면, 거래소가 협조한다면 테라폼랩스의 자금세탁의 비밀을 풀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게 인터체인지 지갑 A와 거래소 지갑 A를 중심으로 이뤄진 36억달러 상당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흐름에 대해 다양한 경로로 질의했지만, 답변받지 못했다.

웁살라시큐리티 '테라 관련 지갑 자금 흐름'  추적 보고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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