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탈중앙화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완전무결한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블록체인 생태계에 균열이 가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기반의 크로스체인 스마트 계약 플랫폼인 주노에서는 지난 3월 탈중앙 거버넌스 체제에 의문부호를 달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주노의 한 고래 투자자가 지갑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JUNO(주노) 코인 전체 유통량의 7%에 달하는 에어드롭 물량을 받자, 커뮤니티가 이 고래 투자자의 지갑에 있는 JUNO 물량을 몰수하자는 안건을 올린 것이다. 

당시 몰수 안건 내용이 담긴 16번 제안에는 125개의 검증인(Validator)과 주노 커뮤니티 구성원이 합심해 6만 건 이상의 투표 건수를 올렸다. 충분히 탈중앙화된 투표 절차였지만, 이후 고래 투자자의 자금 몰수가 결정됐다.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고래 투자자가 주노의 룰 안에서 에어드롭 물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횡포'로 인해 자금을 몰수당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했다.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생각하는 완전무결한 탈중앙화에 대한 이상향에 주노 커뮤니티가 흠집을 낸 셈이다. 

최근 잇달아 일어난 해킹 사건에도 탈중앙화 문제가 거론됐다. 액시 인피니티의 개발사 스카이 마비스가 만든 사이드체인 로닌에서 지난 3월 6억달러 규모의 가상자산이 탈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해킹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 검증인 개수였다. 9개의 검증인 가운데 5개 검증인의 승인만 받으면 트랜잭션이 처리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주노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문제와는 다르게 단순 개수의 측면에서 탈중앙성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완전무결한 탈중앙화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출처=Unsplash/Shubham Dhage
출처=Unsplash/Shubham Dhage

그렇다면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완전무결하지 않은 탈중앙화는 실패한 거버넌스일까. 

2017년 무렵을 기준으로 보면 실패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시장이 전략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큰 시장에는 없는 차별점을 내세워야 한다. 블록체인의 특성 가운데 탈중앙화는 분명 기존 시장에는 없는 장점이었고, 무엇보다 생태계 구성원들에게 없어선 안 될 정신적·사상적 토대였다. 과거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중앙화를 함부로 입에 담으면 몰매를 맞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완전무결한 탈중앙화를 고집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지경에 이르렀다. 기존 시장도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블록체인 생태계도 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존 시장의 인프라를 체화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탈중앙화에 대한 변절이 아니라, 확장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순서에 가깝다. 

생태계 구성원 측면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사이퍼펑크(Cypherpunk)가 주류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이용자가 다양해졌다. 과거라면 탈중앙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비교적 조용히 묻혔을 수 있는 JUNO 물량 몰수 사건에 적극적인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도 이러한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 보안 업계 관계자로부터 이용자 해킹 방지 차원에서 어떤 부분을 중앙화해야 좋고, 어떤 부분을 탈중앙화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블록체인 보안 분야는 특히 이용자의 자산을 보호해야 하는 게 1순위이기 때문에 때로는 중앙화를 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나는 탈중앙화가 여전히 전통 업계에 없는 기틀을 마련하는 원초적 그릇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탈중앙화 만큼이나 중앙화를 비롯한 다양한 수단에 대한 고민도 가감 없이 공유돼야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믿는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블록체인 생태계가 비단 보안 분야에서만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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