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드로잉 한 점이 1BTC를 넘는다면 그건 사기일까?"
[인터뷰]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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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정인선 2022년 2월27일 10:30

많은 이들이 대체불가능토큰(NFT) 세계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블록체인·NFT라는 새로운 기술은 앞으로의 콘텐츠 제작·유통 환경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코인데스크 코리아와 함께하는 NFT 아트 매거진 '디지털리유어스'가 NFT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 코리아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 코리아

1998년 데뷔한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작가는 올해 1월3일 365일짜리 '대장정'을 시작했다. 매일 비트코인과 관련된 드로잉을 한 점씩 그려 대체불가능토큰(NFT) 거래소 슈퍼레어에 올리는 '비트코인 드로잉' 시리즈를 시작했다.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이 생성된 2009년 1월3일을 기념하기 위해 프로젝트 시작일을 1월3일로 잡았다. 2월26일 현재 55번째 작품이 막 민팅됐다.

이강훈 작가는 2022년 1월3일 '이더리움으로 비트코인 싸게 사는 법'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을 슈퍼레어에 올렸다.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이 생성된 날짜인 1월3일에 맞춰 시리즈를 시작했다. 출처=이강훈 제공
이강훈 작가는 2022년 1월3일 '이더리움으로 비트코인 싸게 사는 법'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을 슈퍼레어에 올렸다.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이 생성된 날짜인 1월3일에 맞춰 시리즈를 시작했다. 출처=이강훈 제공

'비트코인 드로잉' 시리즈의 정식 명칭은 '비트코인을 이더리움으로 싸게 사는 법(How to buy cheap Bitcoin with Ethereum)'이다. 이름을 자세히 뜯어 보면 시리즈에 대한 중요한 힌트 몇 가지를 찾을 수 있다. 

  1. 매 작품의 주요 소재가 비트코인이라는 점 
  2. 슈퍼레어의 거래 수단이 이더리움이라는 점 
  3. 각 작품당 최소 경매·판매가가 1이더(ETH)라는 점 등.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강훈 작가를 만났다. 비트코인 드로잉 시리즈의 47번째 작품이 민팅된 날이었다.

"가상자산 투자 자체에 대해서는 지금도 크게 관심은 없다"고 말하는 이 작가가 처음 비트코인 주제 작업을 한 건 2018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개인전을 열기 위해 그 전 해인 2017년부터 준비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뉴스에서 관련 소식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이강훈 작가는 2018년 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연 'Contemporary Giftshop' 개인전에서 비트코인을 소재로 한 드로잉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출처=이강훈 제공
이강훈 작가는 2018년 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연 'Contemporary Giftshop' 개인전에서 비트코인을 소재로 한 드로잉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출처=이강훈 제공

이 작가는 새로운 투자 대상을 둘러싼 대중의 시선이 시시각각 변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 일종의 '가짜 코인'을 작업물로 만들어 팔아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일련의 작품을 만들었다. 대중이 가상자산에 열중하는 만큼 예술작품에도 열광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 작가는 "당시에 나름대로 해외에서 전시를 열려고 열심히 돈을 모아 준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 돈으로 코인을 몇 개 샀다면 더 의미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농담했다.

한 컬렉터가 2018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이강훈 작가의 'Contemporary Giftshop' 개인전에서 비트코인을 소재로 한 드로잉 작품을 들고 서 있다. 출처=이강훈 제공
한 컬렉터가 2018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이강훈 작가의 'Contemporary Giftshop' 개인전에서 비트코인을 소재로 한 드로잉 작품을 들고 서 있다. 출처=이강훈 제공

이후 3년여 뒤인 2021년 3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NFT '매일: 첫 5000일'이 6930만달러(약 785억원)에 팔렸다.

"물론 그 자체로 재밌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처음엔 '질 낮은 쇼' 정도로 바라봤던 게 사실이에요."

제2, 제3의 비플이 전 세계에서 등장하면서 이 작가를 찾는 연락도 부쩍 늘었다. 이때까지도 이 작가는 NFT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NFT 작업 제안이 들어오는 족족 고사했다. 

"그러다가 (NFT 예술이) 조금씩 하나의 분야로 자리잡아가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한 번 해 보면 의미 있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강훈 작가는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동료 작가들과 함께 경찰차벽에 꽃을 주제로 한 드로잉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출처=이강훈 제공
이강훈 작가는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동료 작가들과 함께 경찰차벽에 꽃을 주제로 한 드로잉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출처=이강훈 제공

이 작가는 2021년 10월 국내 플랫폼 트라이엄프에서 첫 NFT 시리즈를 출시했다. 책 '한국 괴물백과'에 수록된 괴물 일러스트 작품 일부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더해 이더리움 기반 NFT로 발행했다.

이어 또다른 국내 플랫폼 엔젤리그에서 '수지니' 제너레이티브 캐릭터 NFT를 판매했다.

"마침 타이베이에서의 개인전 이후 오프라인 전시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NFT가) 작가들이 새롭게 돈을 벌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작업을 발표할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일은 시작이 가장 어렵다. 이 작가는 올해 1월 NFT 대장정을 시작했다. 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하나의 주제로, 매일 하나씩 작품을 내기로 한 건 그의 20년 넘는 이력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작업에만 몰두하는 경험이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적어도 올 한 해는 생활이 매우 단순해지겠다는 기대가 들어요." 

이 작가는 이 1년을 장거리 산 달리기(트레일 러닝)에 비유했다. 그는 지난해 50km 산 달리기 대회를 두 차례 완주했다. 

"트레일 러닝을 할 때에도 어느 시점에선 물론 쉬어 줘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절대 쉬면 안 돼요. 쥐가 났을 때 한 번 쉬면 그걸로 끝장이에요. 천천히 걷더라도 계속 가면서 쥐를 풀어 줘야지, 그 상태로 멈춰 버리면 오히려 원래 페이스로 돌아가는 데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이번 작업도 일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레이스를 해야 하는 일종의 초울트라 마라톤 같아요. 그래서 중간에 비슷한 방식으로 페이스를 계속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또 사람들로부터 반응을 받는 과정에서 멘탈이 계속 변해요. 좋을 때는 상관없지만 확 떨어지는 경우도 생겨요. 그걸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가 이번 작업의 관건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꼭 나가서 달리려고 하고 있어요."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땐 처음부터 속도를 무리해서 내기보다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속도를 찾아 가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그날그날 즉흥적으로 작업하는 게 맞다고 보고 미리 작업을 안 해뒀는데, 그런 식으로는 제가 만족할만한 작업이 나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월28일 발행된 26번째 작품 'Full of Luck'. 경매에서 1이더에 낙찰됐다. 출처=이강훈 제공
1월28일 발행된 26번째 작품 'Full of Luck'. 경매에서 1이더에 낙찰됐다. 출처=이강훈 제공

현재 이 작가는 최소 열흘치 작품을 미리 비축해 두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보름 정도 작업은 미리 쌓아 두는 패턴을 만드는 게 목표다.

"100km 달리기로 치면 지금 한 16km 정도 온 건데, 한 20km 정도까지 가면 한 이틀 정도 쉬면서 숨을 다시 고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이 작가는 최소 1이더(ETH) 이상의 입찰만 수락하고 있다. 365개 작업이 축적돼 시리즈가 완성되면, 작품 한 점당 가격이 1비트코인(BTC)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실험해 보는 게 목표다. 

단순히 작품 가격이 오르길 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질문을 던지는 의미가 더 크다.

"비트코인을 소재로 한 드로잉이 과연 실제 비트코인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을까? 또 비트코인 드로잉이 비트코인 한 개 가격을 넘어서게 된다면, 그건 예술 혹은 수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걸까, 아니면 그럴듯한 '사기'에 불과한 걸까?" -Andy Khun, SuperRare, 'How to buy cheap Bitcoin whit Ethereum 작가의 말 중

"저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이 가상의 화폐가 예술 작품이라면, 사람들이 거기에 얼마나 가치를 느낄지 궁금해요. 

드로잉 속 비트코인은 물론 가짜이지만, 어떻게 보면 진짜와 가짜 사이의 구분이 애매하기도 해요. 가상화폐라는 것 자체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니까요." 

50여개 작업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이 작가의 작업 방향에도 조금씩 변주가 생겼다.

처음에는 2018년 타이베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처럼 비트코인 자체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지금은 비트코인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나 농담을 표현한 경우가 늘었다. 비트코인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있다. 

현재까지 입찰이 들어와 실제 판매가 이뤄진 작품은 55점 중 7점. 공통점이 있을까? 

"지금까진 가상자산의 역사 안에서 의미가 있는 사건을 소재 삼은 작품들이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거기에 너무 얽매이고 싶진 않아요. 

시간이 흘러 비트코인 드로잉 시리즈 전체가 주목을 받게 된다면, 개별 작품 하나하나가 무엇을 소재로 삼고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전체가 하나의 작업이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해요.

또 단순히 그림으로 끝나기보다 재밌는 일들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뭐가 될진 몰라도 그게 이 작업의 결과물이 되지 않을까요."

이 작가는 "NFT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미술 시장의 특정한 관문에 들지 못했던 많은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평가받을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거래 방식이 투명해졌다는 점이에요. 기존 미술 시장에선 작가가 자기 작품을 팔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어요. 

반면 NFT 세계에선 2차, 3차 판매 과정에서 수익의 일정 부분이 계속해서 작가에게 돌아가요. 작가 입장에선 굉장히 혁명적인 일이예요." 

2월12일 발행된 41번째 작품 'BARTB'. 출처=이강훈 제공
2월12일 발행된 41번째 작품 'BARTB'. 출처=이강훈 제공

새 기술은 컬렉터(수집가)의 지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판단하긴 이르지만, 어쨌든 (예술품을) 훨씬 쉽게 사고 팔 수 있게 됐다는 점은 확실히 이전과 크게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 슈퍼레어만 놓고 보더라도 그 안에 굉장히 다양한 작가가 있고, 그 다양한 작가를 내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형태가 됐어요. 멀리 있는 갤러리에 가서 작품을 실물로 보지 않더라도 구입 결정을 할 수 있는 거죠. 

또 기존에는 갤러리나 예술품 딜러를 통해서만 2차 판매가 가능했는데, 이젠 컬렉터가 원하면 얼마든지 클릭 한 번으로 그림을 팔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컬렉터 입장에서 보면 아주 큰 변화예요." 

이 작가는 다만 NFT의 등장으로 작가들이 유행에 더 민감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어떤 식의 작품이 요즘 (NFT로) 잘 팔린다고 하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것 같아요. 

저부터도 처음 비트코인 드로잉 시리즈를 하면서 겁이 났던 게, 제 작업이 NFT 세계에서 소위 '잘 팔리는' 작업들과 너무 거리가 있어 보였거든요. 그래도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적어도 이 작업에선 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제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갔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죠. 

NFT 열풍이 지금 과잉된 면은 있지만, (NFT가) 아예 사라질 것 같진 않아요. 앞으로 (NFT로) 그림만 팔겠어요? 온갖 걸 다 팔겠죠. 거품은 시간이 지나면 전체적으로 조금 가라앉겠죠. 오히려 시작이라고 봐요." 

*이 콘텐츠는 '디지털리유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리유어스는 다양한 NFT 아트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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