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새롬, 박재용 씨는 지난 6월27일 '지속가능결혼식'을 올렸다. 출처=황예지/팀 마고
서새롬, 박재용 씨는 지난 6월27일 '지속가능결혼식'을 올렸다. 출처=황예지/팀 마고

얼마 전 동네 친구 부부가 결혼을 했습니다. 지난달 27일 결혼식을 올린 서새롬, 박재용 씨 이야기입니다. 

이 결혼식엔 특별한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냥 결혼식이 아닌 '지속가능결혼식0627'이라는 이름 아래, 신부 드레스와 신랑 예복을 비롯한 물품을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구매하는 등 결혼식 하루만을 위해 쓰고 버리는 물품을 최대한 줄였습니다.

꽃장식 대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출력한 등신대로 식장을 장식했고요. 본식 전에는 두 사람이 과거 구매했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물건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는 벼룩시장도 열었습니다.

신랑 신부 의상을 중고로 구입하는 등, 식 당일에만 쓰고 버려지는 물품을 최소화했다. 꽃장식도 일러스트 등신대로 대체했다. 출처=황예지/팀 마고
신랑 신부 의상을 중고로 구입하는 등, 식 당일에만 쓰고 버려지는 물품을 최소화했다. 꽃장식도 일러스트 등신대로 대체했다. 출처=황예지/팀 마고

블록체인 매체 기자여서 그런지, 제겐 이날 결혼식의 또 다른 면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축의금을 현금뿐 아니라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으로도 받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블록체인 산업 종사자가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참고로 신랑 박재용 씨는 예술 산업에 종사하며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고, 신부 서새롬 씨는 요가와 명상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웰니스 서비스 '새롬케어웍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직접 기획한 웹 청첩장 사이트에 메타마스크 이더리움 지갑 주소와 바이낸스 비트코인 지갑 주소를 적어두고, "축의금으로 받은 암호화폐는 2030년까지 '호들(HODL)' 하다가 2030년 6월28일이 되면 수익률을 공개하고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쓰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 각 지갑으로 얼마만큼의 암호화폐가 모금됐는지도 실시간으로 공개했습니다.

서새롬, 박재용 씨는 현금뿐 아니라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으로도 축의금을 받았다. 출처=지속가능결혼식 청첩장 웹사이트 캡처
서새롬, 박재용 씨는 현금뿐 아니라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으로도 축의금을 받았다. 출처=지속가능결혼식 청첩장 웹사이트 캡처
축의금의 용처도 송금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했다. '2030년까지 호들(HODL)' 항목도 마련했다. 출처=지속가능결혼식 청첩장 웹사이트 캡쳐
축의금의 용처도 송금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했다. '2030년까지 호들(HODL)' 항목도 마련했다. 출처=지속가능결혼식 청첩장 웹사이트 캡쳐

저도 결혼식 전날 축의금을 보냈는데, 현금으로 보낼지 이더리움으로 보낼지 고민이 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메타마스크, 바이낸스 지갑엔 암호화폐가 하나도 들어와 있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현금을 보냈습니다. 

2주일이 지나고, 문득 궁금했습니다. 신랑 박재용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래서 암호화폐로 축의금 낸 사람이 정말로 있었나요?" 물었습니다. "그러게요. 있더라고요. 한 0.3이더, 결혼식 당일 가치로 600~700달러 상당이 이더리움으로 들어왔어요. 비트코인을 보낸 분은 한 분도 없었고요."

 

아래는 박 씨와의 일문일답입니다. 

-블록체인 산업 종사자가 아닌데 암호화폐로 축의금을 받은 결혼식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암호화폐에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요?

=비트코인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원래 '와이어드'같은 IT 매체 읽는 걸 즐겨 해요. '비트코인 피자 데이'때도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넘어갔고요. 

당시 아일랜드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런던에 자주 놀러 다녔어요. 테크 긱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가 "여기서 비트코인 결제 된대", "자판기도 있어" 하는 걸 봤어요. 그래서 그 때 비트코인을 사보고 싶었는데 학생이라 돈이 없어 못 샀어요. 

 

-그 때 샀으면... 지금 저와 모르는 사이일 수도 있을텐데...

=그렇죠, 하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최근 한 예술 잡지에 대체불가능토큰(NFT) 관련 기고를 하면서였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이더리움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가상 컴퓨터'라는 개념, 그리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통해 더 나은 쪽으로 개선된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어요. NFT만 해도 아직까지 대부분의 자산이 이더리움 위에서 만들어지잖아요. 그걸 보고 "아, 이건 고속도로같은 거구나" 생각했어요.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2년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한 미국인 예술계 종사자와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의 남편 분이 어도비의 초기 멤버 중 한 명이었는데, 취미로 도예를 하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이게 미래야"라면서 뭔가를 주섬주섬 주셨는데... 

2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 '암호화폐 신봉자'에게 받은 비트코인 도자기(?). 출처=박재용
2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 '암호화폐 신봉자'에게 받은 비트코인 도자기(?). 출처=박재용

그 때라도 비트코인을 샀더라면... (한숨) 

최근에는 또다른 친구가 비트코인을 "강남의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들"로 비유하며 설명해 주기도 했어요. (이더리움에 비해) 비트코인이 효율도 떨어지고 하는 게 맞지만, 갖고 있을 만 하다면서 "집은 낡아 빠졌어도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다 사서 '호들' 하고 싶어 하는 강남 아파트같은 게 비트코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축의금을 이더뿐 아니라 비트코인으로도 받아보기로 한 거였어요.

 

-양가 부모님이 싫어하진 않으시던가요? 모두 현금으로만 보내고, 암호화폐로는 한 명도 안 보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사실 이 결혼식에 부모님 손님이 거의 없었어요. 애초에 '이건 당신들이 뿌린 돈을 수금하는 자리가 아니다'란 걸 명확히 했어요. 축의금을 신랑신부 구분해서 받지도 않았고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부조 문화에 대해 여러 논문을 찾아봤어요. 결혼과 장례를 막론하고, 부조 문화라는게 14, 15세기부터 있었더라고요. 와디즈나 킥스타터같은, 일종의 크라우드펀딩같은 게 부조 문화였던 거죠.

결혼 축의금이라기보다, '우리 두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지지를 표시해 달라'는 의미로 축의금을 받았어요. 이더리움, 비트코인 전송 옵션을 넣은 것도 그 일환이고요. 

사실 저도 암호화폐를 거래소에서 사 본 적은 있지만, 이걸 누군가한테 전송하거나, 다른 누군가로부터 전송받아 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암호화폐를 주고받는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어요. 축의금이라는 게 사실 당장 없으면 죽는 돈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재밌게 실험을 해 보자고 생각한 거죠.  

 

-이더리움 지갑을 메타마스크에 만든 이유는 알겠는데, 비트코인 지갑은 왜 하필 바이낸스에 만들었나요?

=저는 원래 네이버 블로그도 안 쓸 정도로, 국내에 서버를 둔 서비스들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낸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카카오톡도 원래 완전히 탈퇴했다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려면 '카톡을 통한 연결'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많아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가입해서 쓰고 있어요. 비트코인 지갑을 해외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만든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에요.

박재용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박재용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이건 여담인데, 처음 암호화폐에 투자할 땐 빗썸 거래소를 썼는데, 너무 웃기더라고요. 이름은 '가상화폐'인데, 이걸 하려면 현금을 (거래소에) 보내야 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고 느껴졌어요. 

 

-비트코인은 아무도 안 보냈고, 이더리움 0.3개 정도가 들어왔다고 했는데. 처음 암호화폐가 입금된 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청첩장 웹사이트에 적어 둔 지갑 주소를 한 번 업데이트 했어요. 결혼식 전날까지 아무도 코인을 안 보냈길래, '혹시 내가 주소를 잘못 적었나' 싶었거든요. 

메타마스크와 바이낸스 모두 막상 이용해 보니까 카카오페이처럼 확인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입금이 됐다고 해서 알림이 오는 것도 아니고요. 

결혼식 당일에는 정신 없이 잊고 있다가, 한 3일이 지나고서야 '아 맞다' 하고 확인해 봤어요. "어, 들어왔네! 그냥 들어온 것도 아니고 0.3이더나!" 했어요.

출처=홍지영/팀 마고
출처=홍지영/팀 마고

-축의금을 암호화폐로 낸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던가요? 

=코인을 보내겠다고 미리 암시를 준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그들에게 전화를 해서 '네가 보냈지?' 하고 물었는데 제 촉이 맞더라고요.

두 명이 이더리움으로 보냈는데, 한 명은 암호화폐 투자자, 다른 한 명은 블록체인 기업에서 일하는 분이에요.

한 친구는 4~5년 전까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자신이 가진 한국 돈의 반 정도를 암호화폐로 바꾸고 이후로 계속 데이 트레이딩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또 다른 한 명은 크립토 트레이딩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외에도 현금을 보내면서 "이 돈으로 암호화폐 사서 '호들'해"라고 한 분도 있고, 또 56666원을 보내면서 "이게 오늘 기준 금 1그램 가격이니까 금 사서 갖고 있어"라고 한 분도 있어요. 

사람들이 화폐란 걸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각자 어떤 화폐나 자산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지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아직 일반인(?)들이 암호화폐를 일상생활에 쓰진 않는다는 거네요.

=그렇죠. 아직 대중화에는 꽤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식이 끝날 무렵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학연 나오세요", "지연 나오세요", "혈연 나오세요", "온라인 친구인데 오늘 초면인 사람 나오세요", "페미니스트 나오세요" 같이 하객들을 다양한 그룹으로 나눠 호명했어요. 이 때 "암호화폐 투자자 나오세요"라고도 했는데, 한 열 명 정도 나오더라고요.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놀랐어요. 

 

-2030년까지 호들 할거라고 했는데, 왜 하필 2030년이죠?

=우선 숫자가 딱 떨어지잖아요. 그리고 NFT를 공부하며 내린 결론이, 결국 제도화가 불가피하다는 거였어요. 그러려면 지금처럼 가격 변동성이 커선 안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스테이블코인처럼 특정 자산 가치에 명확히 페깅되는 게 아니더라도, 암호화폐 가치에 대한 대충의 합의점이 만들어져야 제도화가 가능할텐데, 그 합의점이 언제, 얼마에 형성될지 궁금했어요. 

 

-2030년 '셀프 락업' 기간이 끝나면 뭘 할 건가요?

=우선 지금 메타마스크에 있는 암호화폐와, 법정화폐 축의금 중 코인을 사라고 한 것들을 다 콜드월릿에 넣었다가, 2030년이 오면 공개 이벤트를 할 거예요. "10년 전 가치는 이랬는데 지금은 얼마다" 하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준 코인과 동등한 만큼의 코인을 제가 직접 사서 함께 '호들'할 거예요. 일종의 매칭펀드처럼요. 

 

-제가 알기로 두 사람은 이미 한 집에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기 위해서 결혼과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암호화폐 축의금도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쓰겠다고 했고요. 만약 내년에 아이가 태어난다고 가정하면 2030년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될텐데, 언제 아이 몫의 지갑에 암호화폐를 보내 줄 계획인가요?

=블록체인이 '사이버 펑크'가 아닌 '사이퍼 펑크'들에 의해 만들어졌잖아요. 적어도 아이가 이걸 이해할 때까진 저희가 대신 갖고 있을 생각이에요. 단순히 아이에게 어떤 자산을 물려준다는 개념만으로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어주진 않을 거예요. 삼성 주식 10주를 아이 명의로 해줄 수는 있어도, 암호화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주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이야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투자와 투기 대상으로만 보지만, 사실 굉장히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라고 생각해요. 상호 교차 검증을 제도화, 자동화 하겠다는 철학의 산물이잖아요. 아이가 이걸 이해하려면 2030년보다는 시간이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암호화폐가 '지속가능결혼식'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나요?

=네. "2030년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암호화폐로 축의금을 보내보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직 알아만 보고 있는데, 이번 '지속가능한 결혼식'을 조만간 NFT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런데 결혼식을 NFT화 하겠다는 건, NFT가 지금 핫하고 잘 팔리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기념할 만한 일이 있었다는 걸 블록체인 상에 비가역적으로 남겨 두고 싶어서예요. 

단순히 0.01이더 정도를 어딘가로 전송하면서 거기에 메시지를 새길 수도 있겠지만, NFT를 만들면 더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봐요. 

암호화폐가 지속가능하다 안 하다는 건 저로서도 아직 판단 불가예요. 비트코인도 누군가는 전기를 많이 먹는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채굴 전력의 상당 부분이 친환경 에너지에서 나온다고 하는 등 의견이 엇갈리잖아요.

실제로 암호화폐가 지속가능한지를 알려면, 한 10년은 지나봐야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때 가서 "이건 전기 먹는 괴물이야" 할 수도 있고, 정말 많이 업그레이드가 돼서 '사물 인터넷 등의 근간 기술'로 작동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 미래가 궁금해요. 다른 사람들도 궁금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에, 저와 새롬의 가치에 공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축의금을 보내 주셔도 좋아요. (웃음) 제 지갑 주소는 아래와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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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입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여간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블록체인, 가상자산, NFT를 취재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날엔 달리기와 요가를 합니다. 소량의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클레이(KLAY), 솔라나(SOL), 샌드(SAND), 페이코인(PCI)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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