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출처=Carlos E. Ramirez/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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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상장비와 시세조종. 아무런 룰도 없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소와 사기꾼이 손을 잡고, 개인 투자자의 돈을 등쳐먹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상장 규제가 없으니 각종 브로커가 판을 친다.

상장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거래소 내부자와 코인 발행사는 마구 찍어낸 코인을 팔아 수십억원을 챙긴다. 관련 법이 없으니 불법도 아니고, 내부고발이 아닌 이상 드러나기도 어렵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코인 컨설팅을 받으려는 사업자로 위장해 상장 브로커를 만나 내밀한 이야기를 들었다.

"빗썸, 코인원, 고팍스에 코인 상장 원하시면 해드릴게요. 백서나 팀원이 없으면 그것도 저희가 만들어드릴게요. 추가 비용을 내시면 MM(Market Making, 암호화폐 업계에선 시세조종을 MM이라 부른다.)도 해드립니다."

지난 6월 초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암호화폐 상장 브로커 사무실을 찾았을 때 들은 제안이다.

자칭 암호화폐 컨설팅 전문가는 논현역 근처 자신의 사무실로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찾아간 업체 사무실은 화려했다. 사방이 가로막힌 작은 미팅룸이 여럿 있다는 점만 빼면, 잘 나가는 스타트업 사무실을 찾아간 느낌이었다.

잠시 후 만난 암호화폐 상장 브로커, 아니 컨설팅 전문가는 자신의 회사에 대한 설명을 짧게 하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는 암호화폐 전문 상장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내, 해외 모두 다 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거래소에 암호화폐 상장시켜주겠다는 업체 꽤 많습니다. 근데 그 업체들도 우리한테 찾아와서 상장을 맡아달라고 합니다."

자칭 상장 전문가는 절대 불법적이나 문제 될만한 것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돈 내고 상장 작업을 했는데, 실패하면 고객한테 다 물어줘야 하는 만큼 상장은 한번 잘못되면 책임질 게 많다"며 믿을 만한 업체에 맡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믿을만한 상장 업체는 자신들밖에 없다고 으스댔다.

코인 발행부터 상장, 마케팅, 시세조종까지 다 해준다고 설명하는 업체 소개서. 출처=코인데스크 코리아
코인 발행부터 상장, 마케팅, 시세조종까지 다 해준다고 설명하는 업체 소개서. 출처=코인데스크 코리아

백서, 팀원, 어드바이저, 홈페이지 심지어 코인 없어도 상장 OK

본격적인 자랑은 이제 시작이었다.

"저희 말고 다른 업체에 상장을 맡겼다가 실패한 분들이 결국 저희를 찾아옵니다. 저희는 상장부터 MM(시세조종)까지 다 해드립니다."

보통 상장, 시세조종,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업체가 따로 있지만, 자신들은 내부에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팀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저희가 상장 작업을 하는 코인이 한 달에 4개 정도 됩니다. 거래소에 코인 상장만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상장했으면, 그걸로 수익을 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장 전후에 마케팅도 필요하고, 상장 후에는 MM도 필수예요. 우린 그걸 한 번에 다 해드립니다."

즉, 코인 상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거래소와 협의를 하고, 상장 직전까지 암호화폐 커뮤니티에 마케팅해서 기대감을 상승시킨 후 상장 직후 시세조종팀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물 흐르듯이 진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상장 브로커는 나에게 이해가 쉽도록 설명하겠다고 나섰다. 자신들이 빗썸에 M 코인을 지난 2월 상장시켰으며, 이를 위해 파워블로그와 카카오톡방, 텔레그램방 등을 통해 작업했었다고 말했다.

코인 발행부터 상장, 마케팅, 시세조종까지 다 해준다고 설명하는 업체 소개서.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코인 발행부터 상장, 마케팅, 시세조종까지 다 해준다고 설명하는 업체 소개서.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상장 전 마케팅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은 바로 상장 직전.

상장 브로커는 M 코인 상장 30분 전 빗썸에서 상장 알림이 온 순간부터 코인판, 코박, 비트코인 갤러리 등에 일제히 이슈몰이 작업을 시작했다며, 커뮤니티 인기글 10위권 안에 자신들이 작업한 결과물이 4개나 상위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줬다. 심지어 커뮤니티에 아이디를 만들고 관리하는 노하우도 있다고 떠들어댔다.

"커뮤니티가 다가 아니에요. 텔레그램을 보면 정보 분석방이나 픽방, 시그널방이 있죠. 이런 방마다 유저가 3000여 명이 있어요.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방도 있고, 방장에게 제안해서 우리한테 필요한 내용을 그 방에 뿌리는 거죠. 이런 식으로 한 번에 이용자 10만여 명한테 상장 정보를 흘리죠."

재밌는 점은 이렇게 코인 상장과 마케팅, 시세조종을 하는데 자신들만의 원칙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국내외 거래소를 등급으로 나눠서 관리하고 있었다. 거래소를 등급으로 나눈 기준은 코인 상장 직후 코인을 사는 유저의 규모다.

예를 들어 빗썸, 코인원은 보통 상장 직후 최소 10억원에서 50억원 정도의 매수세가 붙기 때문에 1등급 거래소다. 고팍스는 이보다 매수세 규모가 작은 3억원 수준, 그다음 등급인 플랫타, 캐셔레스트 1억원 안팎이라는 게 상장 브로커의 설명이다.

1등급: 빗썸, 코인원
2등급: 고팍스
3등급: 플랫타, 지닥, 캐셔레스트, 포블게이트
4등급: 프로비트, 오아시스 등

이 중 업비트와 코빗은 거래소 내부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 취급하지 않는 만큼 이들 거래소 상장을 약속하는 건 사기라며, 우리는 양심적으로 작업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까지 열심히 떠들어댄 브로커는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어느 거래소에 상장하길 원하냐고 물었다. 일단 아무 곳이나 상관없다고 답하자, 이제야 코인은 발행해 둔 상태냐고 물었다.

"저희한테 코인이 없는 상태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 고객들 상황을 보면 백서도 없고, 어드바이저도 없고, 홈페이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죠. 저희는 이것까지도 다 해드립니다.

지금 국내서 백서 만들어주는 곳은 저희 말고 거의 없어요. 상장할 거래소에 맞춤형 백서를 만들어 드리고, 코인 개발과 코드 오딧(감사)도 해드려요."

상장 전문가에게는 코인의 종류 따위는 상관없었다. 상장할 거래소를 정하고 거기에 맞춤형 코인이나 백서, 어드바이저를 돈만 주면 세팅해주는 식이었다. 여기에 추가금만 내면 마케팅과 시세조종도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거래소 상장비를 묻자 "규모에 따라 비트코인 2~3개 정도가 상장비로 필요하다. 2억원인 곳도 있다"는 답이 왔다. 여기에 부가 서비스 비용이 더해지는 구조다. 초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다독이기까지 한다. 어차피 상장만 하면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시세조종을 위한 국내 주요 커뮤니티 이슈 작업 현황.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시세조종을 위한 국내 주요 커뮤니티 이슈 작업 현황.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시세조종 방법: 캐시아웃, 유동성 공급

"빗썸에 상장한 M 코인은 처음에 10억원 정도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근데 마케팅과 시세조종을 해서 50억원 정도 벌었어요. 이걸 저희는 캐시아웃(cash out)이라고 부릅니다."

캐시아웃은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현금으로 바꾸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런 단어가 암호화폐 브로커 입에서 나올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해도 안 됐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캐시아웃을 한다는 게 뭔가요?

"MM(시세조종) 방법은 몇 가지가 있어요. 그 중 대표적인 게 캐시아웃이죠. 구조는 간단해요. 코인을 상장해서, 가격을 올려서 가진 물량을 다 털고 나오는 거죠. 가장 쉬워요. 캐시아웃하면 그 코인 가격이 10분의 1, 20분의 1로 폭락하죠. 근데 어차피 버리는 코인이니 상관없어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세조종 방법을 이쪽에서는 '캐시아웃'이라고 부르는 거였다. 추가로 코인 발행사와 시세조종 팀이 7:3 혹은 6:4로 수익 배분을 약정하고 진행하는 캐시아웃과 10억원, 20억원 등 코인 발행사가 가져갈 금액을 정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시세조종 팀이 갖는 방식도 있다.

내가 코인을 예치해서 보상으로 또 다른 코인을 만들어서 줄 생각이라고 하자, 그는 캐시아웃보다는 유동성 관리 방법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인을 예치해서 순환을 돌리는 모델이면, 캐시아웃보다는 유동성을 관리해서 천천히 우상향 그래프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해요. 월 400만원 정도면 이 작업을 해줄 팀이 있긴 합니다.

근데 이런 작업은 길게 가야 하는 거라 팀을 고용하기보다는 직접 프로그램을 대여해서 돌리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저희가 코인 유동성을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해 드립니다."

상장 브로커는 팁이라며, "이런 작업은 메이저 거래소보다는 매수세가 많지 않은 소소한 거래소에 상장해서 작업하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상장 브로커가 말하는 또 다른 시세조종 방식인 유동성 공급 관리는 장기전이다. 예컨대 코인을 100원에 상장했으면, 200원까지 천천히 올린 다음 내가 가진 물량을 팔아서 150원으로 낮춘 후 다시 250원으로 천천히 올린다. 이런 식으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우상향을 시키는 게 핵심이다. 꾸준히 상승시키면서 내가 가진 물량을 손실 없이 파는 게 중요하다.

상장 브로커는 캐시아웃이나 유동성 관리 같은 시세조종에 시드머니(Seed money)는 필요 없으니 무조건 하는 게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내가 발행한 코인을 파는 꼴이니, 거래소에 상장만 시키면 '대동강 물 파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와 상장 미팅 도중 특정 코인 상장에 관한 전화를 받던 상장 브로커는 다음 고객과 약속이 예약돼 있다며, 믿고 맡겨주라고 당부했다.

"지금 저희가 진행 중인 코인이 빗썸, 코인원에 5개 정도 상장이 예약돼 있어요. 지금 계약하시면 올해 원하시는 코인을 상장할 수 있게 한자리 빼 드릴게요. 생각해보시고 알려주세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올해 코인 상장은 어렵습니다."

상장 브로커가 언급한 거래소들은 상장을 하는 대가로 받는 상장비는 없다고 밝혔다.

빗썸 관계자는 "빗썸은 여러 차례 공지를 통해 상장 브로커 및 상장 컨설팅 명목의 대가 요구 등 시장 교란행위에 대해 엄중히 대처하고 있다"며 "항시 모니터링을 통해 브로커들의 시장 교란과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법적 수단 동원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코인원 관계자는 "상장피를 받은 적이 절대 없다"면서 "(상장 브로커가 아닌) 코인원 상장 공식 이메일로만 상장 지원서를 받는다"고 말했다.

고팍스 관계자는 "고팍스는 상장의 대가로 상장피를 요구하지 않으며, 상장 문의 및 진행은 브로커가 아닌 고팍스 공식 상장 안내 채널을 통해서만 진행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고객들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거래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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