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asan Almasi/Unsplash
출처=Hasan Almasi/Unsplash

무법지대. 암호화폐(가상자산) 시장이 딱 이 모양이다. 가격은 폭등하는데 투자자 보호 장치는 없다.

지난해 상반기 비트코인 가격은 1000만원대에 머물렀다. 10월부터 폭등하기 시작해 최근 최고가인 8000만원을 찍고 내려왔다. 덩달아 수천개의 알트코인도 로켓을 탔다. 가격이 오르자 로켓에 올라타려는 사람과 돈이 몰렸다.

6조5000억원. 올해 1분기 국내 대형 거래소 4곳에 예치된 돈이다. 투자자는 500만명으로, 2018년 1차 암호화폐 열풍 당시(200만명)의 두배를 훌쩍 넘었다. 비트코인이 고작(?) 2600만원이었던 3년 전보다 늘어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블록체인 전문매체의 편집장이라면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걸 마냥 반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기와 투기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내가 종사하는 곳이 사기꾼이 넘쳐나는 도박판이 되기를 바라진 않는다.

지난 20일 빗썸에 일명 ‘한컴토큰’으로 알려진 아로와나 토큰이 상장됐다. 50원으로 시작한 가격은 상장 30분 만에 5만3800원으로 뛰었다. 상승률 10만%. 듣도 보도 못한 수치다. 수백% 상승률에 익숙한 코인 업계에서도 “이건 너무 심했다”는 반응이다. 시세조종 세력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왔다.

같은 날 아로와나 공식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여러 차례 ‘수익률 인증샷’이 올라왔다. 수익률은 무려 약 4만%. 원금 7만원은 3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 사람의 매수가는 상장가인 50원이다.

아로와나 공식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수익률 인증샷
아로와나 공식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수익률 인증샷

상장 시점을 정확히 맞춰 가장 싼 가격에 코인을 구매한 사람은 누굴까. ‘너도 투자하면 이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홍보하듯 채팅방에 꾸준히 이 사진을 올린 건 누굴까? 정확한 신상은 거래소밖에 모른다.

주식시장에 ‘동전주’가 있다면, 암호화폐 시장엔 ‘잡코인’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누구나 1분 만에 자신만의 코인을 만들 수 있다. ERC-20이라는 이더리움 기반의 토큰 발행 규격이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는 덕분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탄탄한 기술력을 가지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보려는 코인 발행 회사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코인을 발행해 쉽게 한몫 챙기려는 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건 상장이다. 코인 업계에는 특정 거래소와 친분이 있다는 ‘상장 브로커’가 활동하고 있다. 상장 대가로 거래소에 수억원어치 코인을 상장비로 줬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를 인정하는 거래소는 한 곳도 없다. 줬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

‘코인 가격 펌핑 브로커’도 있다. 이들은 불법 다단계 조직, 리딩방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시세조종을 해준다. 코인 발행사와 연계하거나, 직접 코인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공시 제도도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지난 3월 업비트는 ‘5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허위공시를 한 고머니2(GOM2)를 상장폐지했다. 이어 업비트는 게시판을 만들어 코인 발행사가 자율공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공시가 나올 때마다 가격이 치솟는 ‘공시 빔(beam)’이 흔한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거래소의 내부자 거래도 큰 리스크다. 거래소별 임직원의 투자 제한 규정이 있지만, 다른 거래소에서 투자하면 막을 방법이 없어 사실상 각자의 양심에 맡기는 수준이다. 게다가 거래소의 이해 상충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도 없다. 거래소가 상장을 하고, 코인에 직접 투자도 한다. 그나마 최근엔 자체 코인을 발행하는 거래소는 줄었다.

지금까지 나열한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제도는 없다. 금융당국은 코인은 법적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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