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Le Caveau à Légumes
'르 카보 아 레귬스'는 온실에 사용할 열을 생산하기 위해 2018년부터 암호화폐 채굴에 나섰다. 출처=Le Caveau à Légumes

캐나다 퀘벡에 있는 누빌(Neuville)이라는 마을에는 한겨울에도 딸기가 자란다. ‘르 카보 아 레귬스(야채 창고, Le Caveau à Légumes)’라는 이름의 작은 농가는 비트코인 채굴기에서 나오는 열을 끌어와 한파 속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농학자 멜리사 지랄드는 코인데스크U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은 매우 춥기 때문에, 딸기를 재배하려면 열이 필요하다”며 “전기를 사용해 열을 만들어야 한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재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이 농가처럼 암호화폐 채굴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부가 수입을 얻으려는 기업과 개인이 늘고 있다. 암호화폐를 채굴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전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이들의 접근 방식은 오히려 탄소 중립에 이바지한다.

토마스 스미스는 암호화폐 채굴기에서 얻은 열을 재활용해 토마토를 재배했다. 출처=Gado Images
토마스 스미스는 암호화폐 채굴기에서 얻은 열을 재활용해 토마토를 재배했다. 출처=Gado Images

비트코인은 애초에 전력 낭비가 큰 구조로 설계됐다. 탈중앙화 방식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중앙기관을 없애는 대신, 합의를 얻는 과정에서 전기를 사용한다. 암호화 방식의 수학 문제를 풀도록 설계된 특수 반도체인 채굴기는 네트워크에서 거래를 검증하고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고 검열이 불가능한 결제 네트워크를 이용하기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비트코인을 채굴하면 많은 양의 열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은 글로벌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소모하는 에너지 양이 우크라이나에서 2019년 전체 사용된 에너지 양보다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동안 이익 실현이 어려웠던 저효율 채굴기의 사용이 늘어 에너지 사용량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열의 생산도 마찬가지다.

출처=영국 케임브리지대 산하 대안금융연구소
출처=영국 케임브리지대 산하 대안금융연구소

비트코인 채굴을 낭비로 보는 기업인들은 그나마 ‘열’이라는 부산물이 발생해 다행이라고 말한다. 개인이 직접 비트코인을 채굴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은 경제성이 떨어지지만, 약간의 노하우와 PVC 재질의 파이프, 강력 접착테이프만 있으면 비트코인 채굴을 통해 수익도 얻고 동시에 전기료도 아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농가는 온실에 사용할 열을 생산하고 전기료를 아끼려는 목적으로 2018년부터 암호화폐 채굴에 나섰다. 당시 이 농가는 취미용 암호화폐 채굴기를 제조하는 히트마인(Heatmine)이라는 스타트업의 시험운영 대상이었다. 안타깝게도 히트마인은 별 성과 없이 사업을 접었다.

조나단 포트가 창립한 히트마인의 설립 취지는 암호화폐 채굴이 환경에 남기는 발자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윤리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가정이나 기업은 암호화폐를 채굴해 고정소득을 얻고,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열은 재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였다.

히트마인 설립자 조나단 포트는 캐나다에서 온실용 암호화폐 채굴기를 생산하고 있다. 출처=Jonathan Forte
히트마인 설립자 조나단 포트는 캐나다에서 온실용 암호화폐 채굴기를 생산하고 있다. 출처=Jonathan Forte

히트마인은 이후 문을 닫았지만 (히트마인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포트는 사업 파트너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히트마인이 추구했던 아이디어는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

비트코인 ATM을 운영하는 위니펙BTC(WinnipegBTC) 창립자 케빈 카시는 2013년부터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채굴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사무실 난방에 사용하고 있다. 그는 또 겨울철 자신의 전기차 난방을 위해서도 이 열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시는 코인데스크US와의 짧은 인터뷰에서 캐나다는 에너지 가격이 저렴하고 날씨가 춥기 때문에 ‘열 채굴’에 최적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8년 비트코인 채굴기를 가동해 매달 70달러의 비용으로 100달러를 벌었다고 밝혔다.

카시는 캐나다 매체인 CTV뉴스에서 “캐나다는 날씨가 춥고 수력발전으로 저렴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열을 생산하기 위해 채굴기를 가동해도 이익이 난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도 소규모 암호화폐 채굴 실험을 통해 비슷한 수익을 내고 있다. 컴퓨터 과학자이자 테크 블로거인 크리스찬 하섹은 얼마 전부터 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에서 혼자 이더를 채굴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집 난방을 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하섹은 자신이 사는 집을 직접 설계했는데, 태양열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하는 친환경 집이다. 집이 완성된 후 그는 암호화폐 채굴 실험에 돌입했다.

하섹은 약 80도의 온도로 가동되는 암호화폐 채굴기 4대를 이용해 중앙 환기 시스템의 공기를 예열한다. 그는 이것이 집 전체 난방으로 이어지는 ‘깔때기’ 역할을 한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가 채굴기 가동을 통해 얻은 이더의 가치는 한달 전기요금의 절반 정도를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난방기 가동에 필요한 전력도 절반으로 줄었다.

“암호화폐 채굴은 전력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내가 생산한 열을 재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낭비를 거의 없앨 수 있다.”

하섹은 이더 가격이 900달러 이상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계속해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이더 가격은 1500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그는 날씨가 추울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 스미스는 한밤중에도 닭장이 따뜻하게 유지되도록 암호화폐 채굴기의 복사열을 이용한다. 출처=Gado Images
토마스 스미스는 한밤중에도 닭장이 따뜻하게 유지되도록 암호화폐 채굴기의 복사열을 이용한다. 출처=Gado Images

캘리포니아에 사는 가도 이미지(Gado Images)의 CEO이자 사진 기술사인 토마스 스미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암호화폐 채굴기에서 방출된 열을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이미 수년 전, 암호화폐 채굴기에서 방출되는 열로 집안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지만, 암호화폐 채굴은 그 특성상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를 취미로 삼으려는 개인들에게 더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온 스미스는 이제 자신이 키우는 닭이 밤새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채굴기에서 얻은 복사열을 이용한다. 그는 집보다는 닭장 난방이 더 쉽다고 말하면서, “닭장은 항상 환기가 잘되도록 해 놓기 때문에, 열을 공급하면 그만큼 순환과 환기가 더 잘 된다”고 설명했다. 닭은 닭장 내부 온도가 21도 정도일 때 가장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다.

스미스는 이제 집과 온실, 닭장의 내부 온도에 따라 채굴기가 자동으로 가동하거나 가동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자신이 키우는 닭이나 작물의 가치를 제외하고, 암호화폐 채굴로 1600달러 정도를 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암호화폐 채굴은 아직까지는 취미생활로 돈을 벌면서 그 돈으로 취미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스미스와 하섹은 암호화폐 네트워크에는 참여하고 싶지만 환경에 대한 영향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기업 암호화폐 채굴 등 더 큰 지정학적 세력이 미치는 영향에 비해서는 굉장히 보잘것 없는 노력일 수 있으나, 일단 시작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기도 그 어느 때보다 이상적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전기 소모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텍사스 서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시설의 잉여 전력을 사용하는 레이어1(Layer 1) 프로젝트나, 미국과 캐나다, 중국 곳곳에서 수력발전으로 생산되는 전력을 사용하는 수많은 채굴장의 모습은 비트코인 이미지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아무리 더 많이 하려고 해도, 나 혼자서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를 받아드리고 적용한다면, 비트코인 채굴로 인한 전기 소모와 탄소 배출 문제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 토마스 스미스

작물을 보살필 때만 채굴기를 가동하는 르 카보 아 레귬스의 멜리사 지랄드도 암호화폐 채굴의 미래를 밝게 본다. 그는 채굴기의 열을 이용해 집 난방을 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참 좋은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영어기사: 임준혁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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