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플러그 어준선 대표가 이렇게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아저씨였나?

지난 25일 판교역 부근 코인플러그 사무실에서 근 2년 만에 만난 어준선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코인플러그의 역사(?!)를 보여주겠다며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 2013년 10월 코인플러그 설립
  • 2013년 12월 코인플러그 거래소 출시
  • 2014년 3월 비트코인 ATM 출시
  • 2015년 3월 편의점 선불형 비트코인 카드 서비스 출시
  • 2015년 12월 블록체인 기반 동영상 저작권 관리 서비스 출시
  • 2016년 2월 KB국민카드 블록체인 인증 서비스 출시
  • 2017년 1월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서비스 코스머니(Cosmoney) 개발
  • 2017년 2월 신용카드 포인트-비트코인 교환 서비스 출시
  • 2018년 2월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및 문서인증 오픈 플랫폼 구축
  • 2019년 3월 블록체인 플랫폼 '메타디움'(Metadium) 메인넷 출시
  • 2019년 4월 블록체인 공공선도 시범사업 참여
  • 2019년 7월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사업자 선정
  • 2020년 4월 DID 플랫폼 '마이키핀'(MYKEEPiN) 출시
  • 2020년 10월 블록체인 DID 서비스 '비패스'(B-PASS) 출시
  • 2020년 12월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설문조사 서비스 '더폴'(ThePole) 출시

휴... 정말 길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약 40여분 간 어준선 대표가 열심히 설명한 코인플러그의 역사 중 일부만 추린 게 이만큼이다.

그동안 답답했던 것들을 토해내듯이 내게 설명해주는 어준선 대표에게 차마 인터뷰 사전 준비 과정에서 이미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어 대표의 이런 모습이 반갑기도 했다. 2018년 크립토겨울이 몰아치기 전에는 바쁘게 뛰어다니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알리기 위한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두문불출하여 그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던 탓이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이런 어준선 대표가 코인플러그를 창업하기 불과 1년 전인 2012년에도 비트코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점은 신기하면서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코인플러그를 설립한 2013년 10월은 국내 최초의 암호화폐 거래소로 알려진 코빗(2013년 7월 설립)보다 3개월 늦는 것에 불과하다.

보통 블록체인 인터뷰를 도중 언제 처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접하게 됐냐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2009년 비트코인 첫 등장 시점부터" 혹은 "2012년쯤 해외에서 비트코인을 알게 되면서"라는 답변을 한다. 근데 어준선 대표는 달랐다.

"저는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이에요. 국내 통신사와 시스코시스템즈 같은 네트워크 기업에 개발자로 일했죠. 2012년까지만 해도 암호화폐라는 것은 알지 못했어요.

근데 2013년 초에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비트코인 백서를 처음 접하면서 중앙 기관 없이 네트워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 끌리더군요. 그래서 시스코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와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코인플러그를 만들었어요."

시스코라는 글로벌 IT 기업에 다니다가 비트코인에 빠져서 창업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어준선 대표는 기억을 회상하다 웃음을 빵 터트렸다.

"저는 일단 비트코인 백서밖에 안 봤으니, 주변에 슬쩍 물어봤어요. 전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주변에 다들 개발자다 보니 비트코인을 알고 있더군요.

근데 주변의 첫 반응이 이거였어요. '그거 마약쟁이나 쓰는 건대 그걸 왜 하려고 해, 하지 마' 저는 백서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블록체인이 인터넷 이상의 혁신적인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설득했죠."

비트코인 백서의 매력에 빠져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는 어 대표는 곧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 당시 블록체인 기술 개발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막상 코인플러그를 만들었는데, 블록체인 기술만 갖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주변을 보니 코빗이 막 거래소를 시작하더군요. 우리도 곧바로 거래소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다들 개발자다 보니 12월에는 거래소 시스템 개발이 끝났고, 2014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코인플러그 거래소'를 시작했어요."

코인플러그 거래소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주력으로 본격적인 암호화폐 사업에도 나섰다. 대표적으로 비트코인 자동입출금기(ATM) 개발이었다. 코인플러그는 ATM 전문 개발사 효성티앤에스(구, 노틸러스효성)와 손잡고 2014년 3월 아시아 최초로 비트코인 ATM을 서울 코엑스에 설치했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어요. 그래서 비트코인 ATM을 개발해서 코엑스에 설치도 했죠. 코인플러그 거래소와 연동해서 지갑에 들어 있는 비트코인을 화폐로 출금하거나 반대로 입금하는 게 가능했죠. 또 코엑스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사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서비스도 제공했어요. 국내서는 우리가 처음이었죠."

현재도 암호화폐를 활용한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는 걸음마 단계인데, 코인플러그는 이미 2014년에 비트코인으로 오프라인 결제 도전을 한 셈이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코인플러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비탈릭 부테린, 로저 버 같은 블록체인 업계의 유명인들이 우리나라에 방문하면, 코엑스에 가서 우리가 만든 비트코인 ATM을 사용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암호화폐로 카페에서 결제도 했죠.

근데 어느 날 어디선가 더는 비트코인 ATM을 운영하지 말라는 압력이 내려왔어요. 결국 비트코인 ATM은 철수했죠. 지금도 그 ATM은 저희가 보관하고 있어요."

비트코인 ATM 사업을 접고 나서도 코인플러그는 암호화폐 생태계 확산과 사용자 경험 제공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했다. 대표적으로 전자결제대행사(PG) 갤럭시아머니트리(구, 갤럭시아머니트리)와 편의점에서 비트코인을 살 수 있는 선불카드 상품을 출시했다. 심지어 2017년에는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신용카드 포인트를 비트코인으로 교환하는 서비스까지 출시했다.

"암호화폐가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이 많이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편의점에서 비트코인을 사거나, 신한카드, KB국민카드와 함께 포인트를 비트코인으로 교환하는 서비스도 선보였죠. 사람들의 반응도 꽤 좋았어요. 근데 이 역시도 모두 접어야 했죠.

당시 신용카드 포인트를 비트코인으로 교환하신 분 중에서 지금까지 갖고 계셨다면 꽤 목돈이 되셨을 거에요. 당시 1비트코인(BTC)은 1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3000만원이 훌쩍 넘었으니깐요."

비트코인 ATM, 포인트-비트코인 교환 등 다양한 실생활 경험 서비스를 선보였던 코인플러그가 지금의 블록체인 기술 개발 기업으로 도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어준선 대표는 2015년 5월 JB금융그룹이 진행한 핀테크 공모전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고 회상했다.

"JB금융의 공모전에서 블록체인 기반 인증서로 대상을 받았어요. 이걸 바탕으로 블록체인 특허도 여러 건 냈죠. 힘든 시절에 상금도 5000만원이나 주더군요.

이 기술은 2018년에 KB국민카드의 인증 서비스로 자리매김했어요. KB국민카드 앱을 쓰는 분들은 이미 우리가 개발한 블록체인 기반 인증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요. 사용자는 블록체인 기술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때부터 코인플러그의 발걸음은 더욱더 빨라졌다. 금융사와의 협력도 늘었다. KB국민은행과 블록체인 기반 전자문서 발급 시스템과 해외 송금 플랫폼 개념증명(PoC) 작업을 시작으로, 현대카드와 블록체인 통합인증(SSO) 시스템 구축, 신한은행과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 PoC 등을 진행했다. 조폐공사와 지역화폐 발행 시스템, 블록체인 공공선도 사업 등 정부 과제도 맡았다.

그 과정에서 보유한 블록체인 관련 특허만 현재 320여건으로 전세계 기업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기술 기업으로 코인플러그는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8년 전세계를 휩쓸었던 크립토겨울은 코인플러그도 힘든 시기였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코인플러그의 유일한 수익원인 코인플러그 거래소는 2017년 9월 CPDAX로 이름을 바꾸며 확장에 나섰지만,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정)' 발급에 실패하면서 거래량이 급격히 줄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CPDAX는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CPDAX를 접은 이유는 더이상 기관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에요. 거래소가 워낙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다 보니, 거래소를 갖고 있으면 우리한테 더이상 투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결국 선택의 문제였어요. 주변에서 어렵게 키운 CPDAX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 아쉽다고는 하지만, 거래소를 하면서 우리가 얻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어요.

우리의 강점은 블록체인 기술 개발 능력에 있으니깐요. 코인플러그는 블록체인 기술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에요."

조심스러운 질문 차례다. 7년 가량 운영한 거래소를 닫을 정도면, 혹시 지난해 적자였나요?

"당연하죠. 거래소를 접을 정도였으니 매출이 많이 줄었죠. 대신 정부 과제를 맡다 보니 정부 보조금은 늘었지만요.

올해 정부의 블록체인 관련 사업 규모가 더 커졌어요. 일단 거기에 집중할 예정이에요. 장기적으로는 IPO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매출도 늘려나갈 겁니다.

지난해 선보인 메타디움 기반의 인증 서비스 마이키핀, 설문조사 서비스 더폴 등을 중심으로 올해는 본격적인 수익 모델화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올해 최종 목표는 손익분기점(BEP)을 맞추는 거에요."

블록체인 DID 서비스 '비패스'를 보여주고 있는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블록체인 DID 서비스 '비패스'를 보여주고 있는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마이키핀은 코인플러그가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 메타디움을 기반으로 탈중앙화 신원(DID) 서비스이다. 더폴은 메타디움의 DID 인증 기술을 활용해 만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설문조사 서비스다. 즉, 코인플러그의 핵심은 메타디움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비효율적이라고 다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블록체인은 인프라거든요. 예를 들어 마이키핀은 메타디움 위에서 동작하는 DID 서비스에요. 더폴은 메타디움 위에서 동작하는 DID를 설문조사 시스템과 연동한 거죠. 또 전자문서 인증 서비스는 메타디움에서 인증 정보를 연결해서 활용하죠.

결국 블록체인 서비스는 제대로 만든 플랫폼만 있다면, 거기에 API 기술로 연동만 하면 개발이 끝나요. 심지어 해외 서비스를 한다고 하면, 언어 지원만 하면 되죠. 만약 기존 레거시(legacy) 시스템이었다면, 서비스마다 따로 개발을 해야 해요."

끝으로 어준선 대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 전망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5년' 동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2013년 코인플러그 만든 이후로 정부 기관, 금융권 등 많은 곳에 강의를 다니면서 '앞으로 정신 안 차리면 은행은 없어질 거고, 그 자리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전통 금융권에서 지난 10년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오히려 더 성장했잖아요. 또 현재 CBDC, 디지털화폐, 가상자산 등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어요.

2018년에 유시민,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등이 부정적인 발언을 했잖아요. 아마 지금은 그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쉽게 못할 거에요. 앞으로 5년, 10년 후에는 지금 비트코인을 접하고, 사용하던 이들이 세상의 주역이 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너무나 당연한 무언가가 돼 있을 거예요.

코인플러그는 그때를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고,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인터뷰 말미에 코인플러그라는 회사명을 어떻게 짓게 됐다는 질문에 어준선 대표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별거 아닌데'라며 "당시 전세계 블록체인을 한다는 업체를 쭉 살펴보니 다들 코인베이스(coinbase)처럼 '코인(coin)'이라는 단어를 넣는 게 유행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코인에 '연결'을 뜻하는 플러그(plug)를 붙여서 코인을 연결한다는 의미로 '코인플러그'를 만들게 됐어요"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옆에 서 있는 윤호성 코인플러그 이사에게 슬쩍 물었다. "어준선 대표님 원래 저렇게 말이 많은 분이었어요?" 윤호성 이사는 "다들 잘 모르던데, 원래 어준선 대표 말 많아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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