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가 설립한 창업투자회사 해시드벤처스가 1200억원 규모의 첫 펀드 '해시드 벤처투자조합1호(Hashed Venture Fund I)'를 결성했다고 23일 밝혔다.

해시드 벤처투자조합1호는 지난 9월 해시드벤처스 출범 이후 3개월만에 조성된 대형 펀드다. 국내에서 모태펀드 출자 없이 운용사 출자금과 순수 민간자본만으로 1200억원을 모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무엇보다 주력 투자 분야가 이색적이다. 

이들은 블록체인 분야의 기술기업과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프로토콜 경제'를 구현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프로토콜 경제란 디지털 자산을 이용하는 일종의 개방형 경제 플랫폼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플랫폼을 조성한 기업이 해당 생태계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이익을 독식해왔지만, 프로토콜 경제는 플랫폼 이용자도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받아 갈 수 있는 생태계를 추구한다. 디지털 자산을 이용하므로 거래비용과 시간이 크게 감소된다는 것도 프로토콜 경제의 특징 중 하나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지난 21일 해시드 벤처투자조합1호 펀드 운용 총괄을 맡은 김서준 해시드 대표를 만났다. 어떤 기업들에게 1200억원을 투자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궁금했다. 프로토콜 경제의 실체에 대해서도 물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차원에서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미 프로토콜 경제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앞으로는 이용자가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고, 이용자에게 거기서 기여하는 만큼 공평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플랫폼들만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기술 인프라가 자연스럽게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 대표와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해시드 김서준 대표. 출처=해시드
해시드 김서준 대표. 출처=해시드

―1200억원 규모의 대형 펀드를 결성했다. 블록체인 업계에 어떤 의미일까.
= 펀드를 만드는 행위는 기관투자자들을 끌어들여서 시장을 키워나가겠다는 의미다. 그동안 해시드는 자기자본으로만 투자를 해 왔다. 사실 해시드 투자만 해도 이번에 만든 펀드 규모 이상이다. 그럼에도 펀드를 구성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 우선 블록체인 업계가 제도권과 연결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유동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스타트업 키우는 지분 투자는 8년, 10년씩 기다려서 엑싯(Exit)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면 돈이 묶여버리니까 계속적인 투자가 어렵다. 좋은 투자자들은 투자하고 오래 기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은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한다. 

 

―지금까지는 국내에 이런 펀드가 없었다. 
= 지난해까지만 해도 펀드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회 전반에 블록체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강했고, 종합적으로는 비트코인 가격도 영향을 많이 주니까. 지금은 비트코인 전고점도 돌파하고 여러가지로 시장 환경이 괜찮아졌다. 암호화폐 이용한 애플리케이션이 없는 게 문제였는데 올해 디파이 열풍 불면서 그런 인식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내년 정도엔 암호화폐 상장지수펀드(ETF)도 만들어질 것이다.

제도화 속도도 빠르다.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 비트코인이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있고, 페이팔이나 스퀘어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도 비트코인 매매 서비스를 출시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을 이해해주는 기관들이 등장할 것이다. 작년 말쯤 이제 장기적으로 투자를 이어나가고 펀드레이징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올해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다.

 

―이번에 만든 펀드는 어떤 성격의 펀드인가. 어디에 투자하나. 
=이번에 만든 해시드 펀드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의 벤처투자조합이다. 저희가 투자하는 대상은 딱 정해져 있지는 않다. 우선 다양한 블록체인 기반의 인프라 회사들에 지분투자하는 것은 이 펀드로 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업이 아니더라도 프로토콜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지분투자 계획이 있다. 글로벌에서는 이미 체이널리시스나 유니스왑, 컴파운드 같은 프로젝트들에 기관투자자들이 지분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저희 역시 이런 회사들의 성장에 전략적으로 기여하고 업사이드(가치 상승분)를 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토큰이나 코인 투자도 하게 되나.
=아니다. 국내에서는 펀드에서 토큰을 바로 투자하는 것은 할 수 없다. 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자산 등급이 정해져 있는데 그 안에 코인이나 토큰이 없다. 또 투자 펀드를 만들면 수탁을 해야 하는데 토큰을 수탁해줄 수 있는 수탁사가 없다. 현재로서는 어떤 국내 펀드에서도 토큰 투자는 못한다. 

 

―이번 펀드의 투자 대상에도 들어가 있는 표현인데, 요즘 '프로토콜 경제'를 많이 강조하고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어찌 보면 그냥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안 쓰고 블록체인 경제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프로토콜 경제는 규칙 기반으로 돌아가는 개방형 네트워크에서의 경제 생태계를 뜻한다. 블록체인 경제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인 게, 이런 네트워크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결국 블록체인을 사용해야 한다. 네트워크의 규칙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돌아간다는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처음부터 쓰냐 안 쓰냐가 저희 펀드의 투자 조건은 아니다. 저희가 지금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을 보면 당장 블록체인을 쓰고 있지는 않아도 조금 더 개방화된 네트워크를 추구하고 거기서 이뤄지는 활동 자체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운영자들이 모든 것을 운영하고 통제하기보다는, 생태계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플랫폼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그런 회사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회사들이 커지는 과정에서 결국 블록체인 기반의 기술 인프라를 채택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 기업이 아니면서 프로토콜 경제에 해당하는 기업을 예로 들어달라.
=대표적 사례가 보이스루라는 기업이다. 우리나라 유투버들의 스트리밍 자막 90% 정도를 만들고 있는 회사인데, 이 회사에는 번역가가 한명도 없다. 보이스루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외부 번역가들이 번역을 맡는다.

이들이 일하는 방식도 독특한데, 프로토콜화 되어있다. 우선 유튜버가 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그게 잘게 쪼개져서 번역가들에게 간다. 어떤 사람은 한국말로 받아쓰기 하고 그걸 다른 사람이 검수하고, 누군가는 초벌 번역하고, 또 누군가는 검수하고 재벌 번역하고 검수하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업물의 질이 상당히 좋다. 속도도 빨라서 대부분의 작업이 12시간 안에 끝난다. 비용도 전문번역가에 맡기는 것보다 1/3정도 수준이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도 최근 인터뷰에서 프로토콜 경제 사례로 이 기업을 언급한 바 있다. 

물론 이 기업이 완성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로토콜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디지털 자산을 사용해야 한다. 가령 보이스루에서도 세계 각국의 번역가들이 참여하지 않겠나. 이들에게 일일이 현지 돈으로 해외 송금을 해주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전자지갑을 만들고 현지에서 환전할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을 보내줘 버리면 또 일이 쉽게 끝날 수 있다. 송금 수수료도 줄고 기업에서는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이런 부분은 프로토콜 경제가 주는 기술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펀드 포트폴리오에 보이스루 말고 다른 기업들은 또 어떤 곳이 있나.
=보이스루는 최종적으로 출자자들이 참여하기 전에 운용사(해시드)가 선출자한 금액으로 선투자가 진행된 기업이다. 차이코퍼레이션(CHAI), 하프스(넥스트유니콘), PSX(서울거래소) 등에도 같은 방식의 투자가 이뤄진 상태다.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몇몇 디파이 프로젝트와 블록체인 게임 회사들도 포트폴리오에 들어가 있다.

 

―주로 블록체인 기업이 투자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겠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장래에 블록체인을 접목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도 투자한다. 서울거래소를 운영하는 PSX가 대표적인데, 블록체인 원장을 이용한 비상장 주식 거래소가 이 기업의 사업모델이다.

원래 주식 거래소는 한국거래소(KRX) 하나만이 라이선스를 받아 운영될 정도로 극도로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서울거래소는 직원이 10명 밖에 안될 정도로 작은 회사다. 그럼에도 블록체인을 원장으로 쓰면 장부 위변조 위험 없이 거래소업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금융위원회가 인정해서 규제 샌드박스에 넣어주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거래소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나.
=과거에는 비상장 주식거래를 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매우 까다로웠다. 인감증명부터 서류작업이 상당히 복잡하고 거래할 때는 비상장주식을 가진 사람을 직접 만나서 설득해야 했다. 그런데 모든 문서들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놓고,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간단한가. 

이런 플랫폼이 있으면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직원들에게 스톡옵션 주듯이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생태계도 구현이 가능해진다. 가령 우버 같은 경우는 드라이버가 10만명은 될 거다. 이들에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주식을 나눠줄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도 어렵지만 어떻게 공정한 분배를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해당 드라이버가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는지, 고객과의 분쟁 횟수는 적었는지 많았는지, 플랫폼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를 따져서 주식을 차등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나.

이렇게 주려면 결국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해서 디지털 자산의 형태로 지급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드라이버들이 받은 주식을 시장에서 처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게 매우 어렵다. 이런 가능성들이 응축된 모델이 서울거래소 같은 블록체인 기반 비상장 주식 거래소라고 생각한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 출처=해시드 제공
김서준 해시드 대표. 출처=해시드 제공

 

―우버는 상장기업인데. 배달의 민족 같은 케이스가 더 적합하겠다
=상장 기업이라는 측면에서는 배달의민족 라이더들이 더 적합한 예일 수 있겠다. 하지만 우버든 배달의민족이든 디지털 자산의 형태를 도입해야 이런 분배가 가능하다는 점은 동일하다.

어차피 지금 주식은 1주 단위 아래로 못 쪼개고, 신원인증 서류 등 거래비용과 과정이 높기 때문에, 주식이 디지털 자산의 형태로 만들어져야만 한다. 전통자산은 다 토큰화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도 나온다. 

 

―듣다보니 몇 가지 우려가 되는 지점들이 있다. 우선 주식형 토큰을 발행하는 것에 대해 SEC가 증권법 적용을 할 텐데. 규제 문제는 없나.
=주식형 토큰에 대한 분위기가 상당히 좋은 상태다. 미국에서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과 통화감독청(OCC) 청장이 모든 주식은 토큰화될 거라고 얘기했다. 우버나 에어비엔비도 상장할 때 제출한 서류를 보면 토큰화(Tokenization)나 암호화폐 발행 가능성을 집어 넣어놨다.

물론 이미 상장된 회사가 주식과 다른 형태의 증권성 자산을 발행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성이 있는 행위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전통적인 회사들이 발행하는 토큰들은 아마도 USDC나 테더(USDT)같은 예치금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형태거나, 주식을 토큰화한 형태일 것이다. 

 

―기업들이 과연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려고 할까.
=사실 2018년 가을부터 우버랑 에어비앤비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주식을 주고 싶다고 지속적으로 피력해 왔다. 그런데 미국 현행법상 불가능했다. 플랫폼 노동자는 직원이 아니고 법적으로는 제3자에 해당하는데, 제3자에게 주식을 주면 증여가 되고 상당한 증여세를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지난달에 SEC가 허용해줬다. 월 지급액의 15% 까지 주식으로 줄 수 있게 법이 만들어진 상태다. 상장사들도 이걸 할 수 있게 가이드가 나왔다. 

물론 실제로 하는 회사는 아직 없다. 하지만 곧 이런 회사들이 나올 거고, 그들이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형태는 결국 디지털화된 주식형 토큰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이다. 디지털화된 자산이 아니라면 분배 과정 자체가 난장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나.
=국내에서는 아직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줄 수 있는 옵션이 없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이런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이걸 해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꼭 지분을 안 주더라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중립적인 네트워크 위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 말이다. 

 

―프로토콜 경제를 블록체인 업계 쪽 표현으로 고치면 암호화폐 공개(ICO)와 비슷한 면이 있다. 과거 많은 ICO들도 참여자들의 도움으로 생태계가 성장하면, 코인 가격이 오르면서 기여한 만큼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청사진을 보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채굴 참여자들에게 네트워크 유지에 대한 대가를 보상하는 작업증명(PoW) 방식 블록체인의 느낌도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채굴이라는 건 일종의 기여행위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기여하는 방법은 해시파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참여자가 해시파워를 제공하면 보상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디파이는 유동성 제공이 네트워크 기여다. 그래서 이 부분에 네트워크의 보상이 있다. 그런 면에서 프로토콜 경제와 비전이 겹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토콜 경제가 현실 기업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기여에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지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금의 환경은 과거와 달리 이런 적용이 가능해지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ICO 때 기업들이 대부분 실패했던 이유는 기업 가치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비즈니스가 돌아가지 않는 형태에서 토큰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증명되지 않은 상태로 본인들의 비전 만으로 투자를 받아서 갭이 생겨버린 것이다. 네트워크가 성장하더라도 그 성장이 토큰 가격에 반영되는 '로직'이 약했다. 

요즘 시장에서 기업가치가 강력한 토큰 프로젝트들을 보면 대부분 디파이다. 디파이 토큰의 가치평가 방식은 이미 주식과 상당히 비슷해졌다. 네트워크가 성장함에 따라 수수료가 얼마씩 떨어지고, 소각이 어떻게 되면 토큰 가격이 변화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

애널리스트들이나 벤처투자자들이 기업에 투자하기 전에, 해당 기업의 가치를 얼마로 책정하는 게 적정한지 분석하지 않나. 성숙한 형태의 프로토콜 경제는 이런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의 ICO와 큰 차이가 있다.

 

―기업 오너들은 보통 자기가 룰을 짜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프로토콜 경제에서는 이런 경영이 어렵다. 거버넌스와 함께 플랫폼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기업인들이 이걸 좋아할까. 혹은 그런 환경이 명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실제로 유효하게 작동할까.
=이미 기업 마음대로, 플랫폼 마음대로 규칙을 바꿀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얼마 전 네이버가 뉴스 알고리즘 바꾸다가 260억원 과징금 맞지 않았나. 배달의 민족도 수수료 올리려다가 여론의 철퇴를 맞고 다시 철회했다. 

 

―그것은 대부분 감독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닌가. 특히 과징금 등은 공정위가 시장질서를 직접적으로 바로잡는 방식이다.
=감독당국의 제제를 제외하더라도 시장의 분위기는 이미 어느 정도 달라진 상태다. 생태계가 공감할 수 없는 형태로 플랫폼의 규칙을 변경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는 얘기다.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2018년부터 토큰 발행하려고 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아까 기업 오너들이 과연 이 룰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묻지 않았나. 실제로 과거 오너 기업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회사들은 주식을 직원들에게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시대가 되면서 결국 상장하고 다수에게 투자받는 기업이 강력해진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끝난 상태다. 투자를 받고 회사를 상장하면 이미 오너 마음대로 회사를 운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 오너들이 주식회사의 형태를 선택한다. 

소수의 경영진이 모든 것을 결정할 때보다는 회사와 연결된 좋은 이해관계자들을 잘 만들 때 해당 기업에 유용한 네트워크가 커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왕정에서 민주정으로의 변화와도 맥이 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과거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국가보다는 민주정이 현대사회에서는 훨씬 효율적이고, 실제로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민주정을 채택하고 있지 않나. 민주주의 역시 어떻게 보면 헌법이라는 공동 합의에 기반한 프로토콜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들이 탄핵되는 과정을 보면 이 프로토콜을 어기는 행위를 했을 때 권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최근 소비자나 플랫폼 이용자들이 과거보다 생태계에 적극 참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 시장에서 기업 간에 주도권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대기업들은 꼭 혁신적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에게 점유율을 뺏긴다. 대기업의 비효율에 대해 시장 참여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고,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이 불만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짜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 그리고 플랫폼 운영자가 자의적으로 규칙을 바꿀 수 있는 환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험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함께 이 플랫폼의 구성원이 되고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고. 거기서 항상 기여할만큼 공평하게 줄거라는 믿음을 줘야 성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영진들은 스톡옵션을 왜 발행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커뮤니티에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하고 있는 거대한 실험이 잘 진행되면. 전자의 사고방식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 불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하던 조직보다 더욱 강력하고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등장할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미 프로토콜 경제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건 플랫폼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도전인데. 미국 플랫폼 회사들의 가치가 5배 커지면 대략 미국 국내총생산(GDP)과 같아진다. 이 지점에서 묻고 싶다. 애플이나 아마존이 지금보다 다섯배 커질 수 있을까. 애플 같은 경우는 30%의 플랫폼 수수료를 강요하면서 생태계적인 갈등을 만들고 있다.

미국 유력 정치인 중 상당수가 애플 같은 플랫폼 회사들을 분할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 논리의 근본이 뭐냐면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은 시민들의 투표라는 프로토콜 위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이나 페이스북이나 구글의 생태계를 거치지 않고는 미국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 그들의 주식을 돈을 주고 사지 않으면 그 거버넌스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게 정당하냐. 이런 차원에서 시민사회의 불만이 상당히 깔려 있다고 본다. 프로토콜 경제를 원하는 상태다.

 

프로토콜 경제의 요소 중 하나가 스테이블 코인이다. 알다시피 스테이블 코인에는 발권력을 둘러싼 국가와 민간 기업의 긴장감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국가 입장에서는 이 영역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데.
=블록체인을 이용한 스테이블 코인을 쓰면 결제수수료를 거의 0에 가깝게 낮출 수 있다. 양쪽이 지갑 가지고 있고 직접 전송하면 가스 수수료 밖에 안나가니까. 결국은 결제 쪽에 있어서도 수수료 쓰면 VAN사, PG사 안 거쳐도 되니까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명하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국에서는 USDC 같은 스테이블 코인들이 이미 기존 경제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 

통화는 많은 데서 쓰일수록 힘이 세지는 것이다. 한국은행에서도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한은이 스테이블 코인을 만든다 해도 그 코인이 모든 개방형 네트워크에 온보딩되지는 못할 것이다. 원화를 디지털 토큰화시키는 가장 큰 목적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하는 것 아니겠나. 

관련기사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