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2일 내놓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놓고 암호화폐 산업 관계자들이 각자 상황에 따라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들은 말을 아꼈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우려섞인 반응을 내놨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된 내용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기준이다. 금융위는 신고 수리의 핵심 요건인 은행 실명입출금 계정 발급 기준을 은행의 최종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은행의 자금세탁 위험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암호화폐 거래소는 내년 9월 이후 사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명입출금 계정을 이미 보유한 암호화폐 거래소와 그렇지 못한 거래소는 상당한 온도차를 보였다. 

현재 실명입출금 계정을 보유하고 있는 한 대형 거래소 관계자는 "필요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갈 뿐, (시행령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아직 시중 은행으로부터 실명입출금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중소형 거래소들은 결국 은행의 주관적 판단이 거래소의 생사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한 중소형 거래소 관계자는 "법이 시행령에 (실명입출금계좌 발급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위임했는데, 시행령이 또다시 은행의 주관적 판단에 이를 위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이 (거래소의) 자금세탁 위험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해지지 않는다면, (개정 특금법이) 새로운 기준으로 새로운 길을 여는 계기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형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자금세탁 위험성 평가 기준을 중소형 거래소에 똑같이 적용해주기만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만 되면 시행령에 불만이 없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자금세탁 위험성 평가만 놓고 보면 충족시킬 자신이 있지만 여기에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으로 하여금 사실상 거래소 존폐를 결정하게 설정해놓은 시행령 조항을 두고 "결국 (금융 당국이) 간접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자금세탁 위험성 기준을 은행이 판단하게 하면, 실제로 자금세탁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금융 당국은 은행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국내 금융업계 분위기상 은행이 이 부담을 안고 거래소에 실명입출금 계정을 내주기가 사실상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금융위가 시행령을 내놓은지 하루도 채 안 돼 대형 은행 가운데 '이러면 우린 (실명입출금 계정 발급을) 못 한다'는 반응을 보인 곳이 있었다"면서, "대형 은행 한 곳이 거부하면 다른 은행들도 섣불리 계정을 열어주겠다고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거래소의 자금세탁 위험을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은행 입장을 금융위가 시행령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지적도 있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선 거래소에 실명입출금 계정을 열어주면 이상거래보고(STR) 건수가 급증해 영업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ISMS을 발급받고 AML 관련 인력과 내부 절차 등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이 중소형 거래소들에겐 부담이 되더라도 고객의 돈을 다루는 사업인만큼 일정 조건을 갖추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암호화폐에 대한 여행규칙이 당장은 의무화 되지 않을 가능성이 금융 당국 관계자로부터 제기됐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출처=연합뉴스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출처=연합뉴스

 

자금이동규칙 1년 유예에 거래소는 '다행', 솔루션 기업은 '난감'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의 또 다른 핵심은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 자금이동규칙 적용이다. 금융위는 자금세탁 방지 목적으로 도입되는 이 규제의 적용을 내후년으로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규제 적용 당사자인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대부분 "불가피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업비트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아직 자금이동규칙을 어떻게 적용할지 참고할만한 사례가 나온 나라가 없고 이제 막 관련 솔루션들이 나오기 시작해 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3월에 바로 트래블룰을 적용하면 기업들에게 부담이 없을 수 없다"면서 "기업들 희망사항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들 간에는 지금도 서로 협의만 이뤄진다면 자금이동규칙을 준수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지갑 등 서비스 제공 기업들까지 관련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며, "솔루션 도입뿐 아니라 내부 인력 보강 등을 통해 필요한 준비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사무국장도 "가상자산의 특성과 현실적 이행 가능성을 고려해, 국제 표준이 정해질 때까지 시행을 유보해 달라는 입장을 협회가 재차 표명해 왔다"면서 "이같은 업계 의견이 반영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잠재 고객으로 삼은 자금이동규칙 솔루션 관련 기업들은 거래소들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는 반응을 보였다. 애초 업계에서는 정부가 내년 9월까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와 자금이동규칙 솔루션 도입을 함께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자금이동규칙 준수가 사실상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의 묵시적인 조건 중 하나로 작용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자금이동규칙 규제가 1년 유예되면서 자금이동규칙 문제 해결이 완전히 후순위로 밀려버린 셈이다. 이렇게 되면 암호화폐 거래소 입장에서는 신고 수리 여부가 결정난 뒤에 자금이동규칙 준수를 고민해도 된다. 자금이동규칙 솔루션 기업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고객들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한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기업 관계자는 "자금이동규칙 적용 유예 기간을 6개월 정도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늦춰졌다"면서 "결국 실명입출금 계정 발급 요건을 충족하는 거래소들만 살아남게 된다면, 자금세탁방지 솔루션을 개발 중인 기업들도 그 때 가서 사업 전략을 새로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블록체인지원센터에서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의견을 수렴하는 간담회가 열린다. 이기호 에이치닥테크놀로지 CCO와 엄지용 블록체인랩스 대표이사 등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가 특금법 대비 상황을 공유한다.

정인선 기자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입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여간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블록체인, 가상자산, NFT를 취재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날엔 달리기와 요가를 합니다. 소량의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클레이(KLAY), 솔라나(SOL), 샌드(SAND), 페이코인(PCI)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