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쑤성 쑤저우 공무원 일부는 디지털 화폐로 봉급을 받는다.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PBC)이 발행하는 디지털 위안화다. 이 디지털 위안화가 스마트폰의 ‘전자지갑’에 꽂히면, 이것으로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에 가서 음식과 음료를 사 먹고, 공유차량 ‘디디추싱’을 이용할 수 있다. 서점에서 책을 사거나 호텔을 이용할 수도 있다.

 지폐와 동전의 ‘종말’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미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로 지폐나 동전 쓸 일이 현저히 줄었지만 차원이 다른 변화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직접 디지털 화폐를 만들어 유통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개-금·은-종이로 이어지는 가치 전달 수단이 이제 디지털로 한번 더 탈바꿈한다.

 

디지털 위안화, 사용자는 별 차이 못 느낄 수도

 중국이 가장 앞섰다. 중국은 구걸도 정보무늬(QR코드)를 활용한 ‘위챗페이’로 이뤄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모바일 결제가 일상화돼 있다. 중국은 이르면 올해 말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디지털 위안화를 공식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폐·동전을 전면적으로 없애지는 않고, 단계적으로 디지털 위안화 비중을 높여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스마트폰으로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지갑’을 내려받고, 여기에 디지털 위안화를 담아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방식이다. 자식이나 부모에게 용돈을 줄 때도 서로의 지갑으로 이전하면 된다. 계좌 이체로 월급을 받고, 신용카드나 삼성페이 등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주관하는 또 하나의 ‘페이’가 생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서는 큰 변화다. 발행 등 화폐 관리 비용이 현저히 줄고, 쓰임새를 제한해 국가 예산의 흐름을 관리할 수 있다. 결제 절차가 단순화돼 사회 전체적으로 거래가 늘 수 있다. ‘비대면’을 요구하는 코로나19 시대에도 꼭 맞는 방식이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서두르는 이유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추진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더 있다. 판이페이 중국인민은행 부총재는 “화폐 발행은 중앙은행의 독점적 책임이고, 중국의 디지털 화폐는 ‘중앙집권적 관리’ 아래 있을 것”이라고 최근 중국 <파이낸셜 뉴스> 기고에서 밝혔다. 화폐 발행에 대한 국가의 독점력을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전세계 20억명 이상 사용자를 둔 페이스북은 ‘리브라’라는 자체 화폐 발행 계획을 내놨다. 국가의 화폐 발행권이 도전받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기존 화폐와 동등한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화폐 발행과 통화 정책 등에 대한 국가의 힘을 유지하려 한다.

출처=한겨레
출처=한겨레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에 대한 견제구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인민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중국에서 이뤄진 전자결제 621억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07억건(49.4%)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결제로 이뤄졌다. 그리고 이 막대한 모바일 결제 시장을 알리페이(55%)와 위챗페이(39%), 두 회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민간기업의 결제 플랫폼이 모바일 시장을 넘어 중국 금융 시스템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와 사용법이 거의 동일해, 시장에 나올 경우 두 회사에 대한 결제 의존도를 크게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위안화가 중국 정부의 사회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디지털 화폐는 특성상 자금 흐름과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거래 현황과 자산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에 현금처럼 익명성을 보장하고, 탈세나 자금세탁, 테러 등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경우에만 추적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볼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디지털 위안화, 미국 달러 넘을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장기적으로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중국이 미래형 화폐인 디지털 화폐를 선점해, 미국 달러화를 뛰어넘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화폐가 실물 화폐를 디지털화한 것에 불과하고 미국 역시 디지털 화폐를 연구하고 있어, 선점효과만으로 미 달러의 위상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중국 위안화의 신뢰를 키우고 거래량을 늘리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2014년 디지털 화폐 연구에 착수한 중국은 지난 4월 수도 베이징과 광둥성 선전, 쓰촨성 청두, 허베이성 슝안 등 4곳에서 디지털 화폐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는 베이징-톈진-장자커우 등 수도권 지역과 상하이, 쑤저우 등 양쯔강 삼각주 지역, 홍콩, 선전, 마카오 등 남방 지역으로 시범 운영을 확대했다. 사용처가 아직 제한적이긴 하지만 호텔과 편의점, 식당, 제과점, 서점, 체육관, 지하철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은 이르면 올해 말 세계 최초로 디지털 화폐를 공식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선두 다투는 스웨덴…한국도 연구 박차

중국과 디지털 화폐 선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중국만큼 모바일 결제 비중이 높다. 2012년 민간은행들이 공동으로 모바일 송금 서비스 ‘스위시’를 출시한 이래, 지난해 3월 기준 모바일 결제 사용자가 83%에 이른다.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 상점이 2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1661년 유럽 최초로 지폐를 발행한 스웨덴은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CBDC)를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뱅크는 2016년부터 자국 법정화폐 크로나(SEK)를 디지털화한 이-크로나(e-Krona) 연구에 착수했고, 내년 2월까지 내부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한다.

크로나. 출처=스웨덴 중앙은행
크로나. 출처=스웨덴 중앙은행

 스웨덴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서두르는 것은 국가의 화폐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스테판 잉베스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는 “스웨덴의 모든 지불이 민간은행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지불 시스템에 대한 공공 통제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은 최근 현금 소멸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화폐 발행과 이를 통한 통화가치 조정이라는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 약화됐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디지털 화폐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페이스북이 내놓은 자체 화폐 ‘리브라’ 충격에 의해 커졌다. 달러화와 가치를 연동하는 ‘리브라’는 페이스북 이용자 25억명이 각국 중앙은행의 감독을 받지 않고 ‘세계 화폐’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 각국 정부에 큰 충격을 줬다. 결국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물론 많은 중앙은행이 리브라 도입 반대를 분명히 했고, 한편으로는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과 스웨덴의 뒤를 프랑스와 스위스, 터키 등이 쫓고 있고, 한국과 미국, 영국, 일본 등도 디지털 화폐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주요국의 디지털 화폐 발행을 연구하는 수준에서 한발 나아가 기술연구 단계까지 공식화했다. 당장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지는 않지만, 설계 방식이나 조건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발행 환경과 인센티브 등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은 디지털화폐연구팀 윤성관 팀장은 최근 코인데스크코리아가 개최한 ‘댁스포’(DAXPO·디지털자산박람회)에서 “현금 사용 감소세가 커졌을 때, 모든 사람이 민간이 제공하는 지급 수단을 써야 하므로 선택권이 제약되고 재해로 민간 서비스가 작동하지 않을 때 백업 수단이 없어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중앙은행이 공공재로써 지급 수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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