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은 죄다 ‘스타트업 스타일’이에요. 피터 잭슨,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었지만 시작은 스타트업과 비슷해요. 탁상에 앉아서 시나리오 쓰고 자본을 얻어썼다기 보단, 카메라를 직접 들고 무작정 뒷마당에 나갔고 돈이 없으면 직접 재료를 구해 만들어 찍는, 저예산 B급 영화를 만들면서 명성을 얻었죠. 이런 걸 동경했다는 점이 저에겐 창업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염재승(32) 대표가 2011년 시작한 텀블벅은 ‘창작자를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 창업 10년차인 텀블벅은 지난달 온라인 핸드메이드 마켓 아이디어스 운영사 백패커에 인수됐다. 염 대표는 이제 창업자로서 시즌2를 맞고 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 출처=백소아/한겨레
염재승 텀블벅 대표. 출처=백소아/한겨레

 1일 오후 텀블벅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을지로 패스트파이브에서 만난 그는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3개월 동안 부업 수단을 만들고 학교로 돌아가자’며 시작한 일인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웃으며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를 찍는데 필요한 툴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텀블벅을 시작했던 터라, 학교에서 회사로 물리적 공간은 오래 전에 옮겨 왔지만 염 대표의 삶은 영화와 사업의 경계 속에 있었다. 

 

학교를 발칵 뒤집고 영화과에 간
‘강남 8학군 전교 1등 엄친아’,
영화과 카메라 렌털 사업자가 되다

 “치맛바람이 센, 전형적인 강남 8학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성적도 전교 1,2등을 할 정도로 좋았다. 법대처럼 ‘모범생 문과생’ 진로를 생각했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연 방향을 틀었다. “돌아보니 저는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들고, 그 결과물로 사람들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공부만 하길 강요 받았고 좋아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죄책감’을 느꼈어요. 고2 때 한예종에 가면 영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은 즉흥적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전교 1등의 선택은 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입시 실적을 낼 때 한예종은 안 쳐주는 학교였으니까요. 다시 생각해보라는 설득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학교를 결국 졸업을 못했고 지금은 회사에서 가방끈이 가장 짧은 사람이 됐네요.”

 영화를 배우러 간 대학에서 생각지 못하게 ‘카메라 렌탈 사업자’가 됐다. “기술에 관심이 많아서 카메라 장비를 직접 샀어요. 한국에 안 팔면 미국에서 직접 주문했죠. 대학에 들어갔던 2006년은 유튜브가 등장했고 성능 좋은 다양한 카메라들이 나오던 시기였어요. 그 경계의 시대에 신문물을 계속 들여오고 만져봤습니다.” 

 그렇게 사놓은 장비는 친구들과 함께 썼다. 작지만 렌트비도 받았다. “동기들한테 저는 진취적이고 특수효과와 분장을 다 구현해주는 동지였는데, 나중엔 동기들 상대로 카메라 렌탈 사업을 하는 사람이 됐다”며 염 대표는 크게 웃었다. 카메라 렌탈로 버는 돈은 “쏠쏠했다.” “군대에서도 계속 돈이 모이는 구조였으니까요. 그렇게 1천만원을 모아서 텀블벅 창업의 자본금으로 썼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들 3∼4명과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시작한 텀블벅은 “영화를 찍으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자연스럽게 ‘창작 아이디어를 파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형태로 발전했다.

“영화를 만들려면 전화나 카톡(카카오톡)으로 돈을 구하는 게 일이었어요. 이 일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텀블벅이란 이름으로 몇 배로 확장을 한거죠.”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영화나 미술을 공부하는 주변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사정이니 수요도 많을 것 같았다. “스타트업 경영 전략 중에는 ‘고객과 가까워지고, 고객이 원하는 걸 만들라’는 것이 있어요. 이 사업은 시작부터 이미 주변에 고객이 너무나 많았어요. 친구들이 모두 고객이었으니.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는 전략을 하고 있었던 거죠.” 텀블벅 10년 중 염 대표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가까운 사람들이 올려준 초창기의 프로젝트라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서비스 런칭 이후 상황은 가볍지 않았다. “학교로 못 돌아갈 정도로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그게 문제였고 저는 진지해졌습니다.” 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책임감이 생겼고, 가만히 둔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닐테니 신경쓸 점도 많았다. 항의건 애정어린 칭찬이건 고객 목소리가 들리니 텀블벅에 온전히 시간을 쏟게 됐다. 염 대표와 친구들은 학교로 돌아갈지 텀블벅을 이어갈지 선택해야 했다.

“같이 하자는 말이 선뜻 안 나왔어요.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저도 잘 모르니까, 동료들에게 창창한 미래를 제안할 수 없었거든요.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텀블벅을 운영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의 ‘프’ 자도 몰랐다는 염 대표는 개발자를 채용할 돈이 없어서 그때부터 직접 코딩을 배웠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이란 ‘무지에 가까운 용기’ 덕에 배우면서 일했고, 점차 사업을 알아가면서 개발자도 합류하고 투자도 받고 팀이 형성됐습니다.”

 

네이버뮤직 정기결제에서
힌트얻은 ‘간편결제’,
웹툰 작가들이 달아준 ‘날개’

염 대표는 이 사업의 성패는 “얼마나 편하게 결제를 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봤다. “그동안 우후죽순 생겨난 수십개의 크라우드 펀딩 중에서 가장 경험이 없고, 어리고, 미성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만든 텀블벅이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창작자의 프로젝트를 보고 지갑 열면 후원을 마칠 때까지 마찰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 같은 장벽이 있어도 욕하면서도 삽니다. 하지만 텀블벅 소비자들은 동기가 다르다고 봤어요. 프로젝트에 동의하고 ‘선의’를 갖고 지갑을 열었는데 결제가 매끄럽지 않다면 중간에 포기할 테니까요. 텀블벅보다 먼저 시작한 곳도 이런 고민을 안했는데, 저희는 이 문제가 안 풀리면 서비스를 런칭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간편결제와 관련해 2011년 당시 한국은 ‘갈라파고스’였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편리하게 결제하는 방법의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한국은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어요. 아마존 원클릭, 애플 앱스토어처럼 간단하면서도 안전한 방식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어요. 간편하면 간편한대로 불안하다고 봤던 게 그 당시였거든요. ISP, 안심클릭을 거치지 않으면 결제가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텀블벅의 목표는 3번 클릭으로 결제가 되도록 하자였습니다. 하지만 PG사들은 낯선 일을 하는 신생업체와 이런 솔루션을 논의해주지 않았죠.” 

염재승 텀블벅 대표. 출처=백소아/한겨레
염재승 텀블벅 대표. 출처=백소아/한겨레

해법은 ‘네이버뮤직 음원 정기결제’에서 찾았다. “어느 날 네이버뮤직 정기결제 문자를 받았어요. 정기결제가 됐다면 내 결제 정보가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그 정보가 사용된다는 건데, 이 방식을 비틀면 손쉬운 크라우드 펀딩 결제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크라우드 펀딩은 후원자들이 결제한 금액이 ‘펀딩 성사’ 기준까지 모이면, 이 돈이 창작자에게 전해지고 아니면 다시 환불된다. 정기결제 방식을 응용해서 ‘비정기적이면서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결제가 이뤄지게 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네이버뮤직의 정기결제 솔루션을 다루는 업체를 찾아내서 물었더니 가능한 방식이라는 답을 들었어요. 하지만 텀블벅을 안 받아줬습니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라면서.” 비슷한 솔루션 제공하는 PG사를 모두 늘어놓고 연락을 하다가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한 업체에게서 승낙을 받았다. 노력의 결과로 파트너를 찾았지만 운도 따랐다. “알고봤더니 그쪽이 우리 사업모델을 이해 못해서 해준거였어요. 이런 사업인 줄 알았으면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안했을거라고 나중에 말하더라고요.” 사용자는 뭔지 몰라도 간편하고 안전하게 쓸 수 있는 결제 방식은 ‘서로의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냈다.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던 계기는 2012∼2013년께 웹툰작가들이 유입되면서였다. 당시 웹툰 작가들의 수익 문제가 불거졌었고,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작품을 바탕으로 수익모델을 만드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던 시기였다. “팬덤이 있는 웹툰작가들이 텀블벅으로 단행본 만들었어요. 재고 없이 책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잘됐습니다. 인접영역인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게임에서도 가능성을 보고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웹툰 작가들이 텀블벅에 저절로 온 것은 아니었다. “직접 찾아가서 설득하고 모셔온 분들이 많았어요. 작가들의 니즈를 포착하고 찾아가서 만나고, 먼저 메시지를 보내면서 적극적으로 발굴했습니다.” 웹툰 작가들이 유입되면서 트래픽과 거래액은 전보다 3배로 뛰었다. 일시적이 아니라 규모가 달라진 것이었고, 트래픽이 생기니까 다른 제작자들도 참여하면서 텀블벅은 더 커졌다. 

 

이재웅, 먼저 찾아와 첫 투자
'시리즈A 투자' 네이버는 인수 제안도
“창작자들의 AWS가 되고 싶었어요”

 텀블벅의 첫 투자는 이재웅 전 쏘카 대표가 먼저 연락하면서 이뤄졌다. 이 전 대표가 세운 벤처투자사 ‘소풍’에서 2013년 1월 첫 시드(Seed·종잣돈) 투자를 받았다. “우리 서비스가 좋다며 감사하게도 먼저 연락이 와서 투자를 받았어요. 1년 뒤 스트롱벤처스 쪽에서도 먼저 연락이 와서 또 한 번 투자를 받았죠.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서비스를 만들면 투자자가 찾아오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사업에 대해 몰랐죠.”

 시리즈A 투자자로 참여한 네이버는 원래 인수를 제안했었다. “네이버는 창작자와 소상공인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정책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요. 텀블벅과 비슷한 면이 있다보니 교류도 많았고 2014년에 인수 제안도 왔죠. 그땐 팔 생각 보단 직접 키우고 싶은 꿈이 커서 투자를 제안했어요.” 염 대표의 꿈은 텀블벅을 ‘창작자를 위한 아마존웹서비스’(AWS)로 만드는 것이었다. 

 “(클라우드 서버, 인공지능 분석 등) 아마존은 스타트업처럼 바닥부터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잖아요. 저희도 창작자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플랫폼이 되고 싶었어요. CRM(고객관계관리), 마케팅, 펀딩, 자기 고객과 팬덤을 모으고, 스스로의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총체적 인프라, 그걸 만들고 싶다는 비전이 있었죠. 텀블벅을 하면서 나중에 정립한 비전이에요. 이런 내용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투자도 받았던 그 때가 참 재밌게 일했던 때 같아요.”

 

혐오세력 백래시
맨땅에 헤딩
“텀블벅 10년 쉽지만은 않았죠”

 텀블벅이 보다 널리 주목받게 된 것은 젠더, 난민, 장애인 등 각종 소수자 이슈가 부각되면서다. 이런 이슈를 재밌고 신선하게 다루는 프로젝트가 텀블벅에 많이 올라오면서 응원도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혐오세력의 백래시도 심했다.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로 공격이 들어오다보니 내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논의했다. 결론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옳다”였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옳은 일을 해야한다는 입장이고,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저나 동료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예요. 돈 잘 벌고 임팩트 있는 사업이라도 갑갑한 사상이면 싫죠.” 그런 점에서 “나이키가 멋지다”고 했다. “소수자를 옹호하고 지지한다는 가치를 보여주면서 사람들 생각을 바꾸잖아요. 존경스러워요. 하지만 텀블벅이 하기엔 챌린지가 많은게 사실이죠.” 

동성애나 퀴어 소재 프로젝트가 올라오면 일부 이용자들이 댓글이나 전화로 심하게 거부감을 표현하고, 여성 크리에이터들은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치면 흠을 잡으려는 추가적인 공격도 받게 된다고 한다. “내부 담당자들도 고생이 많았지만, (백래시에) 지지 않으려고 했고 입장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멋지고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못해서 아쉬운 점이 남죠.”

 애초에 텀블벅을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염 대표는 ‘실전 경영’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다른 스타트업들처럼 서툰 경영 때문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경영을 몰라도 창업할 수 있고 ‘처음’일수록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경영을 잘 알고 창업한다면 분명 장점이 크지만 처음엔 그게 본질이 아닌 것 같아요. 무에서 유를 만들 땐 제품이 먹히냐 시장이 받아들이냐, 존속 가능한 이익이 만들어지냐가 더 생존에 중요하고 경영은 그 다음 문제이죠. 또 텀블벅은 성숙 산업이 아니라 예전엔 없던 영역에서 시작한 것이라 몰라도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실전 경영’이 절실해지고, 텀블벅에겐 지금이 바로 그 ‘일정 수준 이상’의 시기라고 했다. “새로운 스테이지에 텀블벅에 합류한 사람들은 회사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요. ‘안 돼도 해보자’는 초기의 성장 마인드가 아니었어요.” 사업적으로 유의미한 성장을 하기 위해 각종 ‘숫자’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점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아갔다. “매출이나 영업이익처럼 강한 회사가 되려면 필요한 성장 목표를 만드는데서 많은 허들을 만나죠. 먹히는 제품을 적시에 만들기 위한 자본과 인재가 필요하고, 이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어렵습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 출처=백소아/한겨레
염재승 텀블벅 대표. 출처=백소아/한겨레

밀려드는 주문이 감당이 안될 때도 있다. “이럴 때 해결 방식은 밤새우고 하는 것 말곤 없는 것 같아요. 자본력이 되면 사람을 더 쓰겠지만, 캐파가 안되면 밤새는 것 밖엔 답이 없죠. 자본이 확충이 되면 하나씩 체계를 하나씩 만들고요.” 

스타트업은 구성원들의 ‘자발성’으로 커가는 것도 사실이기에, 염 대표는 조직 내에서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수평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구성원들끼리 반말을 쓰는 문화를 만들었다.

“경영자로서 단점이지만 저는 부탁을 잘 못해요. 그래서 먼저 나서서 일해주는 사람을 지지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편하게 일하는 구조를 고민하다 ‘평어 문화’를 만들었었어요. 텀블벅은 저보다 더 헌신한 동료들 덕분에 성장했는데 그들이 저에게 편하게 반박하고 말할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스타트업이고 나이가 젊어도 대표에겐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존중은 하되 할말은 쉽고 솔직하고 빠르게 하자.’ 또 한국에서 아랫 사람이 존댓말 쓰는 건 당연하고 윗사람이 쓰면 시혜인데, 둘 다 반말을 쓰면 뿌리깊은 문화적 문제를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죠.” 

평어 문화를 만들면서 의도한 효과도 봤지만, 지난 2018년부턴 없앴다. “결국 솔직한 대화라는 것은 더 깊은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반말이냐 존댓말이냐가 본질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새 멤버들도 많이 들어올 때였는데, 다른 조직문화 경험을 가진 사람이 들어왔을 때 낯설수도 있어서 없앴습니다.”

 

“영화는 멀리서 응원만…
사랑받는 서비스 만들고 싶어요”

 지난달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이제는 모회사가 된 아이디어스와는 5년 전 처음 인연을 맺었다. “텀블벅이 홍대에 있던 2015년에 아이디어스에 방문했어요. 이웃에 새로운 스타트업이 생겼다고 해서 인사를 나누러 갔죠. 그 때는 아이디어스에서 ‘인수하러 온 거 아니냐’며 경계의 눈초리도 있었는데, 5년이 지나니 반대가 됐네요”라며 웃었다.

염 대표는 “아이디어스와 텀블벅은 정체성과 방향성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며 “텀블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사업성과 지속성을 검증 받으면 아이디어스에서 지속적으로 판매하며 성장할 수 있는 창작자 생태계를 함께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텀블벅도 지금보다 매끄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향상할 방법들을 더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영화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는 “지금으로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제가 사랑했던 영화는 전문적인 영역이기에 많은 시간 투자가 필요합니다. 10년 동안 IT, 프로덕트 일을 했으니 이제는 영화와는 많이 멀어졌죠. 다시 할 것 같진 않고 멀리서 응원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업가로서 살면서도 영화를 만드는 마음은 잊지 않겠다고 했다. “발뮤다 창업자도 원래는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음악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부분을 발뮤다 비즈니스로 채웠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놀랄만한 일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영화와 사업이 비슷하죠. 텀블벅 안에서도 밖에서도,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을 영리한 방식으로 해결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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