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이 모여서 솔루션을 개발하는 모습. 출처=수호
팀원들이 모여서 솔루션을 개발하는 모습. 출처=수호

"우리는 스스로를 블록체인 기업이나 보안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정체성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경비회사'입니다. 고객의 자산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달 29일 잠실역 부근 사무실에서 만난 박지수 수호 대표는 대뜸 "외부에서 보기에는 블록체인 기업인 것 같지만 우린 블록체인 기업이 아니에요"라며 국내 대표 블록체인 스타트업이라는 업계 평가에 손사래를 쳤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인터뷰를 왔는데 이게 웬…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그럼 수호는 무슨 기업인가요?

"블록체인 기업이라고 하면 블록체인 기술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죠. 근데 우리는 블록체인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블록체인에 필요한 부분을 긁어주는 것들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광부들을 위한 곡괭이 같은 거죠.

그럼 수호가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에는 뭐가 있더라?

"대표적으로 '오딘'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오딘은 우리가 모든 역량을 쏟아낸 보안 솔루션입니다. 쉽게 말하면, 블록체인 소프트웨어(SW)를 위한 시큐어코딩 플랫폼이죠."

오딘의 시큐어코딩 동작 모습. 출처=수호
오딘의 시큐어코딩 동작 모습. 출처=수호

 시큐어코딩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버그(Bug)나 취약점 등을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용으로는 국내외에 시큐어코딩 솔루션이 다수 있지만, 블록체인 개발을 위한 시큐어코딩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블록체인 산업 초기에 스마트계약 프로그래밍 '검사(audit)' 업체가 성행했다.

"오딘을 활용하면, 블록체인의 SW 취약점을 실시간으로 탐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도 발행할 수 있죠. 현재 이더리움에 대해서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이나 넥스레저, 그 밖에 고객이 요청하는 모든 블록체인을 지원합니다. 현재 삼성SDS, 금융보안원 등이 우리의 대표적인 고객이죠."

오딘 외에 또 어떤 제품이 있나요?

"티엑스레이(Txray)도 있습니다. 이건 암호화폐 지갑을 보호하는 솔루션입니다. 은행에서 목돈을 계좌이체하면, 이체 오류나 범죄에 활용되는 것을 막고자 일정 시간 동안 거래 지연을 시킵니다. 이 과정을 암호화폐 지갑에도 적용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지갑이든 티엑스레이에 등록해두면, 이상 거래 발생 시 암호화폐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티엑스레이에 등록된 지갑에는 미리 '보험용 거래 내역'을 생성해두고, 이상 거래 발생 시 보험용 거래 내역이 원장에 먼저 기록되도록 하여 이상 거래가 최종적으로 완료되지 못하게 한다. 블록체인은 블록(원장)에 기록이 돼야만, 그 거래가 확정된다는 점을 이용한 셈이다.

"잠시만요" 박 대표는 아직 자신들의 솔루션이 하나 더 남았다고 다급히 말했다.

"헤임달도 있습니다. 헤임달은 아직 개발 중인데, 고객신원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솔루션이죠. 헤임달을 사용하면, 연결된 지갑의 거래 정보를 확인해서 의심 거래 분석 보고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딘, 디엑스레이, 헤임달...' 설명을 듣다 보니, 이건 모두 전통적인 보안 기업들이 주로 개발하는 솔루션인데요?

"그래서 우리는 블록체인 기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개발한 솔루션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블록체인의 부족한 점이나 취약점을 보완해주기 위한 것이죠. 사실 비밀인데요, 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솔루션을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에요. 블록체인을 가지고 놀다가 주변에서 도와달라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솔루션을 우리가 만들고 있더군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필요에 의해서 탄생한 셈이죠."

비밀이라며 다 얘기한다. 고객사들이 삼성SDS, SK C&C, LG CNS, 람다256, 금융보안원 등 탄탄한데, 회사 매출은 어느 정도 나오나요?

"음...음... 말씀드려야 하나. 잠시 고민 좀 해보고요.
최근 블록체인 시장 자체가 나쁘다 보니, 우리 솔루션을 찾는 수요가 줄기는 했습니다. 근데 매출은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대충 이거 할 수 있나요?' 라고 찾아오는 고객이 많았다면, 지금은 확실한 목적을 갖고 찾아옵니다. 특히 SW 취약점을 노린 보안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시큐어코딩을 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습니다.
올해 매출은 15억원 정도가 목표입니다."

시‥십오억이라니! 이런 수호도 크립토겨울을 지나면서 빠르게 번진 '탈블'을 비껴가진 못했다. 인원 수는 지난해 12명이었는데 올해 7명으로 줄었다. 수호는 탈블을 어떻게 보시나요?

"블록체인 업계 분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이런 인사말을 나눕니다. '아직 여기 계세요?' 정말이지 '웃픈'말이죠. 탈블 하는 분들에게 "배신했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블록체인은 '세상을 바꾼다'는 사명감 만으로는 안됩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고객이나 사용자에게 가치를 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당연히 '탈블'도 고민해야 합니다. 올 연말까지 탈블은 계속될 껍니다. 제가 보기에 가치를 찾지 못한 기업들이 너무 많거든요."

박지수 수호 대표. 출처=박근모/코인데스크코리아
박지수 수호 대표. 출처=박근모/코인데스크코리아

그렇다고, 수호가 업계 상황을 어둡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박 대표는 올해 진정한 블록체인 서비스, 실생활에 블록체인이 결합한 사례가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매력은 '오픈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오픈서비스는 SW를 공유하는 오픈소스와 비슷합니다. 블록체인 서비스를 공유하는 시장이 열리는 거죠. 대표적으로 디파이(Defi)가 있습니다. 게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메이커다오가 다이(DAI)라는 자산으로 이더리움의 가치를 보장하죠. 근데 컴파운드는 암호화폐를 담보로 다이나 컴파운드(COMP)를 빌려줍니다. 다이라는 암호화폐를 공유하는 셈이죠. 이런 형태의 오픈서비스가 더 많아져야만 블록체인 산업이 살아날 수 있을 겁니다."

편집자 주. 1년 전만 해도 국내에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꽤 있었습니다. 크립토겨울이 길어지고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이 더뎌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자의반타의반 '탈블'을 선택했습니다. 이긴 자가 살아남는 걸까요, 살아남는 자가 이긴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남아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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