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 로고. 출처=한국간편결제진흥원
제로페이 로고. 출처=한국간편결제진흥원

강남에 직장을 둔 이승민(33)씨는 최근 자신의 휴대폰에 새 알람을 지정했다. 일시는 7월 27일 오전 10시. 서울시에서 발행하는 서울사랑상품권의 강남구 물량이 풀리는 시기다. 이씨는 이 상품권이 나올 때마다 20~30만원 어치씩 사서 직장 부근에서 점심 먹을 때 제로페이로 결제한다. 

상품권 자체를 액면가보다 10% 할인된 가격에 팔기 때문에 어디서 밥을 먹든 점심값이 10% 싸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알람까지 맞춰서 사야 하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라서 괜찮았는데 요즘은 상품권을 판매하는 제로페이 앱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도 있어서 빨리 사야한다"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2018년 서울시 주도로 출범했으나 실적이 저조해 관치금융 실패 사례라는 비판을 받았던 제로페이가 올해 들어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올해 초 30만곳 수준이던 가맹점은 5개월만에 50만곳을 돌파했고, 지난 4월에는 한 달 동안 1021억원 가량이 제로페이로 결제됐다. 전년 동기 대비 40배 증가한 수치다. 

성장의 배경에는 코로나19 특수 효과가 있다. 지자체들은 올해 3월부터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제로페이와 연계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확대하고 최대 20%에 달하는 높은 할인율을 적용했다. 현금 80만원이 있으면 제로페이 가맹점에서 100만원어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 시민에게 지급하는 재난긴급생활비를 서울사랑상품권으로 수령하면, 아예 10% 덤을 얹어줬다.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에서는 현재 추세대로면 올해 말까지 가맹점은 70만곳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맹점 확보는 결제업에서 가장 넘기 힘든 대표적인 진입장벽으로 꼽힌다. 제로페이는 뜻하지 않은 국가적 재난 상황 덕분에 이 장벽을 빠르게 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이용 규모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 물음에 대한 견해를 얻기 위해 지난 7일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을 만났다. 윤 이사장은 "제로페이는 지금의 플라스틱 카드 기반 결제망을 앱결제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히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철학없는 결제수단이 아니다"라며 "이제 가맹점 50만곳을 넘었으니 무조건 통할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 출처=한국간편결제진흥원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 출처=한국간편결제진흥원

―지난해 말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2020년 1분기 내에 제로페이 가맹점 50만곳을 달성하겠다고 여러차례 이야기했다. 그런데 5월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50만을 공언한 이유는?
=코로나를 예상하지는 못했다.(웃음) 작년 3분기까지만 해도 제로페이에 대한 여론이 매우 좋지 않았다. 전자금융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미친짓이라고 했다. 언론에서도 관치페이, 관치금융, 결국 세금만 왕창 쓰고 망할 거다 등등 악담이 많았다. 그런데 금융 쪽에서 평생을 보낸 내가 보기에는 이건 무조건 가야하는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만 그렇게 본 이유가 궁금하다. 
=금융의 본질은 돈을 주고 받는 것, 즉 결제다. 결제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정해진다. 과거에는 주된 결제 매체가 지폐였고, 지금은 플라스틱 카드다. 미래의 결제 매체는 실물이 아닌, 소프트웨어 앱(App)이 될 것이다. 이런 흐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고 또 동의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앱 결제가 보편화됐다. 10년 정도만 지나도 나이든 사람 빼고는 아무도 플라스틱 신용카드는 안 가지고 다닐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앱 결제가 보편화됐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앱결제 이용량이 상당히 저조한데. 
=맞다. 지금은 오프라인 결제를 앱으로 하기가 불편하다. 플라스틱 카드 단말기나 포스(POS)기 처럼 결제를 받아줄 인터페이스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이 과도기라 시간이 좀 걸릴 뿐, 앞으로 무조건 진행될 일이다. 어차피 앱 결제가 미래이기 때문이다. 중국같은 나라는 거지들도 동냥을 앱으로 받고 있지않나. 이미 미래로 한 발 앞서서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가맹점 50만곳이 될 거라 했던 건 이런 미래에 대한 확신이자 위축되지 말자는 일종의 주문이었다. 가맹점 50만곳만 모으면 그때부터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는 작업이 훨씬 쉬워지니까.

―'50만 가맹점'은 결제시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제로페이는 은행직불망을 이용한 결제체계다. 원래 인프라라는 게, 많이 깔릴수록 그걸 활용하려는 기업들이 모이면서 시대의 흐름이 된다. 은행직불망 결제가 가능한 가맹점 50만곳이 생기면 국내 간편결제업체들이 달라붙을 거라는 게 나의 계산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언택트'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을 할인해서 팔고, 재난지원금 등을 제로페이로 지급해 몇달 만에 가맹점 20만곳이 늘어나면서 지난 5월 이 목표가 달성되어 버렸다. 이제 무조건 통할 거라고 본다. 

―제로페이 사용이 늘어날 것을 예상한 자영업자들이 가맹신청을 한 건가.
=반대다. 얘기를 들어보면 지역상품권을 할인 구매한 손님이 물건사러 와서 이 가게는 제로페이 왜 안되냐고 항의하는 바람에 가입한 경우가 많다. 수요가 있어서 늘어난 가맹점들이라는 얘기다. 신용카드 단말기 같은 건 사려면 10만원 이상 비용이 드는데, 제로페이는 가맹점 가입해도 비용이 하나도 안 든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손님이 뭐라고 하면 그냥 가입하는거다. 

이걸 또 오프라인 신청으로만 소화했으면 이렇게 빨리 늘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가맹점 가입할 수 있는 페이지를 미리 만들어뒀던 게 주효했다. 한참 많을 때는 서울 지역에만 하루에 가맹점 신청이 1만건 가량 들어오기도 했다. 가맹점으로 가입한 자영업자들이 QR코드로 결제하는 법을 몰라서 민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바로 아르바이트 직원 300명을 고용해서 가맹점마다 찾아다니면서 QR결제판 설치해주고 결제방법 교육을 제공했다. 가맹점 폭증은 단순히 운이었다기보다는,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가맹점이 늘어나니 정말 간편결제업체들이 붙었나.
=지금(7월초)은 가맹점이 60만곳 정도 된다. 요즘 간편결제업체들의 화두 중 하나가 오프라인 결제인데, 제로페이는 이게 되니까 서서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가령 이베이에서 만든 간편결제 '스마일페이'를 보면, 스마일페이를 통해 제로페이 결제를 하면 2% 정도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있다. 제로페이로 오프라인 결제를 할 때, 자기들을 거치도록 자기네 예산을 태워 홍보·이벤트를 하는 것이다.

―3월에 있었던 서울사랑상품권 행사도 큰 영향을 미쳤던것 같다. 
=맞다. 지역상품권이 보통 5~7% 정도 할인해주는데, 지난 3월 서울시가 전체 연간 발행액인 2000억원 중 500억원 어치를 시중에 2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했다. 지금은 할인율을 10%로 줄였는데도 며칠만에 '완판'된다. 

지난 23일부터 서울시 각 자치구를 통해 판매된 서울사랑상품권. 이 상품권을 구매해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많게는 20%까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출처=강북구청 블로그
지난 23일부터 서울시 각 자치구를 통해 판매된 서울사랑상품권. 이 상품권을 구매해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많게는 20%까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출처=강북구청 블로그

―그럼 제로페이 확산 가능성도 한계가 명확하지 않나. 정부 세금을 써서 지역상품권을 할인판매 하는 데 대해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 지역사랑상품권은 콘셉트 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에 있다. 실제로 사용처가 지자체 범위로 한정되고, 일단 상품권을 사면 그만큼은 무조건 지역에서 사용하게 되니까 지역경제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확실하다. 평소같으면 안 쓸 돈을 할인 때문에 추가로 소비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이 상품권을 10% 할인해서 판다고 생각해보자. 정부 입장에서 보면 그냥 상품권 구매자에게 부가세를 안 받는 대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셈이다. 이 돈을 소상공인에게 직접 주는 대신 시장경제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무슨 심각한 세금 낭비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할인액의 7~8%를 중앙정부에서 지원해준다. 그래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이 사업을 많이 하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이런 상품권 지원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신용카드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요즘 한국에서 하루에 결제되는 금액이 2조5000억원 정도 된다. 이중 신용카드가 1조9000억원, 체크카드가 5000억원, 나머지 1000억원이 기타 결제수단이다. 우리는 이 결제 시장의 대세가 앱결제 방식으로 바뀐다고 본다. 앱을 이용한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하기 때문에 비중은 유사하게 유지될것이다. 우리의 단기적인 목표는 직불망을 이용하는 체크카드 비중을 제로페이로 대체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제로페이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관에서 주도한 금융이라는 측면 때문에 여전히 시장에서는 반감이 심한 것 같다. 은행의 팔을 비트는 '관치페이'라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사실과 다르다. 제로페이는 단순히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철학없는 결제수단이 아니다. 은행에게도 이익을 제공하면 제공했지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제로페이 결제는 사실상 은행 고객이 해당 은행 현급지급기에서 돈을 찾아서 물건을 사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원래대로라면 은행엔 아무런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일반 가맹점에서 제로페이 결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결제액의 0.24%가 은행으로 간다. 솔직히 말해 제로페이는 은행이 오프라인 곳곳에 현금지급기를 설치하는 비용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결국 이득이다.

―은행도 그런 시각에 동의할까.
=앞서 얘기했지만 미래의 결제는 앱으로 이뤄질 것이다. 은행도 잘 알고있다. 그래서 과거 은행들끼리 모여서 직불카드 공동망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량 부족으로 인프라 구축에는 결국 실패했다. 그걸 정부가 나서서 공짜로 깔아주고 있는데 관치 운운하며 비판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관치라면 관치인데 은행과 결제기업들에게 혜택을 주는 관치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간편결제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정부에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만 간편결제를 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분위기¹다. 제로페이 가맹점이 꾸준히 증가한다면 한국은 50개 간편결제기업들이 제로페이가 깔아놓은 직불결제망을 공짜나 다름없는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토양 속에서 머지않아 중국보다 더 다채로운 핀테크 서비스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의 경쟁으로 소비자도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₁. 편집자 주. 중국 국가정보센터(国家信息中心) 등이 2019년 10월 간행한 '중국 모바일 지불 발전 보고서'(中国移动支付发展报告)를 보면, 중국 내 결제 서드파티 앱 시장에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결제량은 92.53%(2018년 3분기)에 이른다. 이 보고서는 2013년 알리바바의 '위어바오'와 2014년 위챗의 '훙바오'를 필두로 중국 결제앱 시장이 태동했으며, 2016년 애플페이, 삼성페이, 미페이(샤오미), 화웨이페이 등이 등장했다고 전한다.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 출처=한국간편결제진흥원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 출처=한국간편결제진흥원

―간편결제서비스 중 삼성페이는 마그네틱 보안전송(MST) 방식이라 기존 신용카드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실제로 전국 270만개 가맹점에서 오프라인 앱결제가 가능하다. 오프라인 앱결제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제로페이가 삼성페이보다 유리한 건 뭐가 있을까?
=신용카드망은 기본적으로 포스기나 카드단말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른 결제방식을 응용하기 어렵고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반면 제로페이의 QR코드 결제방식은 앱결제를 위해 최적화된 인식코드다. 직접 점포에 가지 않아도 결제가 가능하다. 식당 예약문자 메시지에 QR코드를 넣어 결제를 받을수도 있고, 학원에서 학원비 청구서에 큐알코드를 넣는 방식으로 학원비를 받을 수도 있다. 음식점 열면서 신용카드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는 점포들이 10년 안에 나올 거라고 예상한다. 그때는 삼성페이도 오프라인 결제 때 제로페이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 제로페이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곳이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일 것 같다. 제로페이 특화 앱을 만들 생각은 없나.
=공공배달 같은 이슈들이 나올 때 진흥원 역할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저희가 앱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제가 이사장으로 오면서 몇가지 원칙을 만들었는데, 첫번째가 우리는 도로만 닦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불결제망, 제로페이라는 플랫폼만 만들고 부가가치 사업은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기업들이 하게 해야한다. 인프라를 잘 만들어서 수천개 기업들이 경쟁하게 만들고, 그중에 가장 우수한 소비자 효용을 제공하는 사업체를 태어나게 하는 정도가 제로페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자 주. 종이에 갇혀있던 돈이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싸이월드 도토리로 미니홈피를 꾸미던 사람들이 이제는 암호화폐로 물건을 삽니다. 다음 20년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새로운 돈과 함께 하는 우리의 일상을 '내 주머니 속 디지털자산'이라는 연재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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