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은성수 금융위원장.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암호화폐 기업의 생사를 정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최근 금융당국 특금법 TF의 일부 자문위원들이 만든 시행령 초안을 입수했다. 이와는 별도로 블록체인협회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최종 전달한 제안서의 일부도 확보했다. 양쪽 문서의 내용을 합쳐서 보면, 현 단계에서 논의중인 시행령의 밑그림을 대략 그려볼 수 있다.

 

1. 사업자 범위 (특금법 2조1호, 7조1항)

FIU가 가장 먼저 정해야 하는 건 특금법 규제대상인 가상자산 사업자(VASP)의 범위다. 개정 특금법이 시행되는 2021년 3월(기존 사업자는 9월)부터 VASP는 FIU에 신고 후 사업을 해야 한다. VASP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자금세탁방지 의무와 자격 요건 없이도 지금처럼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협회는 VASP 정의 자체에 대해선 의견을 내지 않았지만, VASP 중 신고대상의 범위는 거래소와 수탁사업자로 좁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 한 자문위원은 암호화폐 발행사도 포함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는 "가상자산 발행을 돕는 사업자를 VASP 범주에 포함시키면 가상자산 발행 시의 자금세탁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면서 가상자산의 모집, 매출과 관련된 인수, 주선, 중개사업자를 신고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아이콘, 테라 등 ICO(암호화폐공개) 기업도 VASP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이 국외 법인을 설립해 우회 ICO한만큼, 역외조항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VASP 범위는 달라진다.

또 다른 자문위원은 가상자산 대여, 담보, 신탁, 지갑 제공, 지갑 관리를 하면 VASP로 봤다. 두나무 DXM, 델리오 등 암호화폐 '디파이(Defi)' 사업자에게도 특금법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2. 실명입출금계정 (특금법 7조3항, 9항)

개정 특금법 시행 후 VASP에게 제일 높은 진입장벽은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아래 실명입출금계정)' 확보다. 현재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거래소 4곳만 은행과 실명가상계좌 계약을 맺었다.

협회는 "명확하고 객관적 실명입출금계정 개시(발급) 기준이 필수"라고 제안했다. 시행령이 명시한 요건을 갖춘 VASP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이 자동적으로 발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자문위원도 당국이 은행을 통해 간접 규제하는 현재 구조와 달리 앞으로는 VASP가 스스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직접 지게 된다면서, "금융사의 자의적 판단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같은 의견을 냈다.

다만, 실명입출금계정의 또 다른 주체인 은행은 판단할 수 있는 재량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은행 쪽은 '객관적 조건 충족했다고 무조건 발급하면 은행이 지는 리스크는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서 "양쪽 모두 합리적인 부분이 있어 고민중"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협회는 실명입출금계정 의무를 국내에서 법정통화를 다루는 거래소에만 부여하자고 했다. 암호화폐만 다루는 거래소나 수탁, 지갑사업자 등에게 실명입출금계정를 강제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다.

또한 협회는 실명입출금계정 발급 주체를 은행으로 한정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이는 증권사 등 다른 금융기관을 활용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두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앞서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는 2018년 '가상통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이 나온 후, 은행의 가상실명계좌가 추가로 열리지 않자 증권사 계좌를 활용하는 방안을 시도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증권사 계좌는 증권 거래 목적용이라고 법령해석하며 이를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원회. 출처=한겨레
금융위원회. 출처=한겨레

3. 신고 불수리 (특금법 7조3항, 9항)

특금법상 FIU는 VASP 대표와 임원이 금융관계법령을 위반해 벌금 이상 선고받으면 신고를 거부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 자문위원은 VASP 주주도 금융 전과가 없어야, 금융기관이 실명입출금계정을 발급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는 "지분 20% 이상의 주주(없을 경우 최대주주)와 이사가 금융관계법령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을 것"을 조건으로 넣었다. 그의 시행령안에 따르면 VASP는 금융기관에 주주명부와 재무제표 등을 제공해야 한다.

그는 또 "사업계획이 실현가능성 있고 위법사항이 없으며 건전할 것", "추적이 어려운 익명가상자산(모네로 등 일명 다크코인)을 취급하지 않을 것" 등을 발급 조건에 추가해 VASP 사업의 합법성을 강조했다. 건전하지 않고 향후 사기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하는 VASP를 걸러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자문위원은 사업에 따라 차등을 두지만 자본금과 순자산 조건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 등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는 금융위원회에 등록하려면 자본금 20억원 이상, 충분한 전문인력과 전산설비 등 물적시설을 갖춰야 한다.

 

4. 트래블룰 (특금법 5조1항, 6조3항)

자금전송규칙(트래블룰)은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에서 뜨거운 감자지만 아직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여건은 되지 않았다. 협회는 시행을 유예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부 자문위원들은 VASP에 의무를 부여해야 자금세탁방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협회는 "국내에 한정한 메시징 표준 마련은 큰 의미가 없다. 국제표준이 마련될 때까지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유보가 어렵다면 VASP에게 수취인 정보를 보관하게 하되, 이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는 검증 의무는 주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한 자문위원은 이런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면 VASP가 송금자의 "전송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자신의 시행령안에 넣었다. 그는 VASP에서 개인지갑으로 암호화폐가 전송될 때 "수취인의 정보가 확인된 경우만 전송할 수 있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또 다른 자문위원은 VASP와 개인지갑 간 전송에도 자금전송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해외송금에 준해 송금인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수취인의 성명, 지갑주소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국외사업자에겐 자금전송규칙 의무를 제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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