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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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최대 암호화폐·블록체인 행사의 문을 여는 발언치고는 도발적이었다.

지난주 열린 ‘컨센서스 2020’의 개막 세션에서 공동 MC 나오미 브록웰은 로런스 서머스에게 화폐의 디지털화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서머스는 “현행 화폐제도는 익명성이 너무 강해서 문제”라고 답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하고, 현재는 하버드대 명예 총장인 서머스는 ‘빈 라덴’이란 별명을 가진 500유로짜리 지폐를 언급하며, 현금의 쓰임을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부유한 범죄자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백만달러의 자금을 익명으로 거래할 수 있는 자유는 자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지 않은 자유에 속한다”고도 했다. 말미엔 “내 발언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진 분들이 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머스는 자신의 말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일주일에 걸쳐 가상의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된 행사에 등록한 2만명 넘는 참가자 대부분은 국가 주도로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행위를 재산권 침해 위협으로 보는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세계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연사에겐 외람된 말이지만, 개인정보 보호는 일부 부유한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 특히 빈곤층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각국에서 국민의 생명과 시민의 자유를 동시에 지키며 공중보건 정보를 수집, 배포할 방안을 고심 중인 가운데 개인정보 보호 원칙의 중요성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지난주 미국 상원에서는 9.11 테러 이후 제정된 애국자법을 확대하는 방안이 가결됐다. 연방수사국(FBI)이 영장 없이 온라인 검색 기록을 감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의 개정안이 부결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상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개인정보를 활용해 첨단의 예측 행동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부 인터넷 플랫폼의 권한이 확대됐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인정보를 통제하는 일은 드라마 “웨스트월드” 같은 가상의 미래가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화폐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가뜩이나 곳곳에서 강화되는 감시 인프라에 디지털화폐까지 더해지면, 서구 문명을 지탱하는 시민의 자유는 말 그대로 끝장날 수도 있다.

 

자유의 중요성

필자가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채 과세에 덮어놓고 반대하려고, 또는 “내 돈은 내 것이니 정부는 손을 떼라”는 식의 이기적인 요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돈은 수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하는 거래, 재화나 서비스의 교환, 그리고 경제 사회적 가치의 출처를 정부와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를 소유한 기업에서 감시하거나 조작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게 바로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또 하나의 ‘파놉티콘(panopticon, 효율적 감시를 위해 설계된 원형 감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이자, 페이스북이 리브라(Libra) 백서를 공개하자 초기에 상당한 반발이 나왔던 이유다. 페이스북은 앞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이른바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방기했거나 막지 못한 전력이 있다.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란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 가입자 수백만명의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해 특정 정당 후보를 지원하는 데 사용한 사건이다.

쇼사나 주보프나 제러드 래니어 같은 작가들은 필자가 ‘GoogAzonBook’이라고 부르는 기업들의 비공개 알고리듬에 따르는 행위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제한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이런 알고리듬에 저항하는 일은 자신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시장은 참여자들의 자유의지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시장은 자원 배분을 최적화하기 위해 이를 시장 구성원의 자율에 맡긴다. 자유의지는 본인이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이타적인 행위는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방식에 따라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필자는 본다. 이런 자유의지야말로 시장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주지 않는 시장민주주의는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디지털 시대에서는 붕괴 속도가 매우 빠를 것이다.

출처=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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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앞선 칼럼에서 주장했듯이 개인정보가 보호받지 못할 때 화폐의 대체가능성은 떨어진다. 디지털달러는 서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거래이력 때문에 규제 당국에서 범죄나 불법 활동에 연루됐다면서 특정 화폐나 토큰을 몰수할 수 있다면 해당 달러는 다른 달러들보다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소외 계층

금융에서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한 폐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 세계 빈곤층을 살펴봐야 한다.

전 세계 성인 가운데 17억명이 은행 계좌가 없는 것으로 추산된다. 계좌를 개설하려면 은행의 자금세탁방지(AML) 책임자들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정보들이 있다. 그런데 정부가 관리하는 국민들의 신원 정보가 믿을 만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수탈적인 독재 정권이 집권한 탓에 신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천만한 곳도 있다. 은행은 이들의 개인정보를 관리할 수 없게 되고, 이들 금융소외 계층은 자연히 세계 경제의 주요 결제·예금 시스템에서 소외된다. 결국, 이들은 개인정보 보호보다 감시를 우선시하는 현행 금융 시스템의 피해자인 셈이다.

지난 10년간 투자 유입이 줄어들고 금융 비용은 꾸준히 오른 카리브해 연안국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처럼, 잘못된 우선순위가 디리스킹(derisking, 위험회피)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대리 은행들은 과거 HSBC가 자금세탁 연루 의혹으로 벌금을 냈던 것처럼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되는 게 두려워 지역의 시중은행에 현지 고객의 개인정보를 더 철저히 확인하고 대조해 관리하도록 요구했다.

그래서 얻은 게 뭘까?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 Office on Drugs and Crime)에 따르면 이런 감시체계에도 불구하고 매년 전 세계 GDP의 2~5%에 달하는 8000억~2조달러의 자금이 세탁되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Panama Papers)를 보면 권력을 지닌 부유층이 페이퍼 컴퍼니와 조세피난처, 그리고 변호사를 이용해 얼마나 쉽게 거래 내역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감시망을 빠져나가는지 상세히 나온다. 현행 시스템은 자금세탁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면서 빈곤층만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법집행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일례로 자기주권신원(SSI) 기술이나 영지식 증명은 데이터를 생성한 주체가 데이터를 통제하기 때문에 민감한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도 깨끗한 기록 증거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혁신 기술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부족하다.

선진국의 규제기관 관계자 가운데 전 세계에서 17억명이나 되는 빈곤층을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하는 데 따르는 대가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빈곤을 양산하고 그들이 그토록 근절하고 싶어 하는 테러와 마약 밀거래 같은 범죄가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셈인데도 그렇다. 자금 세탁이 여전히 만연하다는 증거가 나올 때마다 은행비밀법은 더 까다로워지고, 요구하는 개인정보의 수준도 훨씬 엄격하고 높아진다. 유럽의 5차 자금세탁방지지침(AMLD5)이 그 대표적인 예다.

컨센서스 2020에서 서머스의 인터뷰 직후 미국 정부 관료 출신인 또 다른 연사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더 우호적인 견해를 밝혔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크리스토퍼 장칼로 전 위원장은 개인정보 보호의 올바른 균형을 맞추는 일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디지털달러의 개념을 설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들이 이 설계를 따르게 하려면 정부나 GoogAzonBook에 시민의 자유를 넘겨주는 일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는 ‘깨어있는 대중’이 필요하다.

이제 대중들이 논의를 시작할 때다.

 

부연 설명: 모든 변수의 통제

결국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는, 미국이 엄연히 세계 경제의 리더임에도 다른 나라가 미국의 지도력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는지에 달렸다. 과거엔 군사를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소련의 팽창주의나 테러리즘 등 민간이나 정부에 의한 위협을 미국이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그 척도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엔 팬데믹과의 싸움을 얼마나 잘 선도하는지가 중요한 척도가 됐다.

아래 도표들을 이미 접했거나 돈의 미래를 둘러싼 전쟁을 다루는 뉴스레터에 왜 이 도표들이 나왔는지 의아해하는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설명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 1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 뒤로 미국의 지도력을 직접 언급한 거대한 배너가 걸려있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배너에는 ‘(코로나19) 검사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America Leads the World in Testing)’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부연 설명이 필요한 문장이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이자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검사가 가장 많이 시행됐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내세울 만한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절대 검사 횟수가 아니라 인구당 검사 횟수로 환산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그래프는 절대적인 검사 횟수를, 두 번째는 인구 백만명당 검사 횟수를 나타내고 있다.

아래 표를 보고도 미국이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선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검사 횟수(2020년 5월 14일 기준). 총 검사 횟수.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검사 횟수(2020년 5월 14일 기준). 총 검사 횟수.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검사 횟수(2020년 5월 14일 기준). 인구 100만명 당 검사 횟수.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검사 횟수(2020년 5월 14일 기준). 인구 100만명 당 검사 횟수.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들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Michael J Casey Michael J. Casey is CoinDesk's chief content officer. Previously, Casey was the CEO of Streambed Media, a company he cofounded to develop provenance data for digital content. He was also a senior advisor at MIT Media Labs's Digital Currency Initiative and a senior lecturer at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Prior to joining MIT, Casey spent 18 years at The Wall Street Journal, where his last position was as a senior columnist covering global economic affairs. Casey has authored five books, including "The Age of Cryptocurrency: How Bitcoin and Digital Money are Challenging the Global Economic Order" and "The Truth Machine: The Blockchain and the Future of Everything," both co-authored with Paul Vigna. Upon joining CoinDesk full time, Casey resigned from a variety of paid advisory positions. He maintains unpaid posts as an advisor to not-for-profit organizations, including MIT Media Lab's Digital Currency Initiative and The Deep Trust Alliance. He is a shareholder and non-executive chairman of Streambed Media. Casey owns a small amount of bit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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