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센서스 2020’에서 발언하는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컨센서스 2020’에서 발언하는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전 미국 재무장관이 12일 코인데스크가 주최한 컨센서스 2020에서 “현행 화폐제도는 익명성이 너무 강해서 문제”라고 말했다. 서머스는 “사생활이 너무 보호되는 바람에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탈세가 이루어지고 부정부패, 마약 밀매와 연관된 수조달러 규모의 자금이 세탁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대규모 금융 거래의 익명성을 장려하는 건 정부 정책이 가장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를 포함한 지역사회에서는 화폐가 디지털화되고 지폐와 동전이 사라지면 화폐에 대한 국가의 전체주의적 감시가 강화될 거라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서머스는 화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을 디지털화폐의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큰 장점으로 꼽았다.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면,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될 것이다. 이용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화폐 이용자가 공평하게 거래할 수 있고, 익명의 금융 거래가 예전처럼 왕성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수백만달러의 자금을 익명으로 거래할 수 있는 자유는 자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지 않은 자유에 속한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반면 유럽 중앙은행의 입스 메르시(Yves Mersch) 이사는 서머스 전 장관과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메르시는 컨센서스 기조연설에서 법정화폐의 디지털화에 대한 일부의 우려에 공감했다.

“토큰 기반 디지털화폐가 익명성을 완전히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면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비롯한 법적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 입스 메르시, 유럽 중앙은행 이사

하지만 서머스는 익명성을 지닌 디지털화폐가 정부의 허가를 받게 되면 1970년대부터 금융 범죄와 싸워온 정부의 노력이 빛이 바랜다고 반박했다.

“자금세탁방지 등 은행 보안규정과 관련한 여러 이슈에서 이뤄낸 진전은 금융 부문이 이룩한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이 수익을 늘리려고 그동안의 금융범죄 퇴치 노력을 무너뜨리고 익명으로 화폐 가치를 저장할 수 있도록 경쟁적으로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 경쟁의 끝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로렌스 서머스

 

인플레이션? 크게 걱정할 일 아냐

서머스 전 장관은 또 각국 중앙은행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 공급하게 될 수조달러 규모의 코로나19 재난 지원금이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거란 우려를 “합리적이지 않다”고 일축했다.

서머스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경제학자들이 연방 정부의 자금 투입이 큰 물가 인상을 불러올 거라고 경고했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방정부의 통화 유동성 공급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낳는다는 가정은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지난주 연방정부 자산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정부 자산은 2월 말 대비 62% 증가해 67조달러를 기록했다.

일부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인한 물가 상승에 대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소비자 수요 저하와 실업자 증가로 인해 가격과 임금의 상승 여력을 억제하는 디플레이션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조언한다.

서머스는 “코로나19 의 어마어마한 여파를 생각했을 때, 물가 상승 위험이 3개월 전보다 크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며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또한, 재무부와 연방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와 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두 기관의 역할이 겹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역할이 겹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공고했던 시기는 저물었다고 봐야 한다.” –로렌스 서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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