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달러. 출처=NeONBRAND/언스플래시
디지털 달러. 출처=NeONBRAND/언스플래시

코로나19로 미국 의회에서 디지털달러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최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중앙은행의 통화 발행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상·하원 의원들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에 국민이 개별 개인 계좌를 개설해 각종 지원금을 해당 계좌로 바로 지급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지난달 중순 코로나19 경기부양법안(CARES Act)이 통과되자 미국 정부는 납세자들에게 1인당 1200달러(146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일부 국민은 지급이 시작된 직후 지원금을 현금으로 수령했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은 여전히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대부분 은행 계좌가 없거나 국세청에 등록된 계좌가 없는 이들이다. 이민자와 결혼한 미국인 120만여명도 지원금 지급이 늦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달러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대규모 지원금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 디지털 기반의 화폐 시스템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디지털 화폐가 정부의 관리 부담만 지나치게 높인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디지털달러를 둘러싼 논의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이 글에서는 디지털달러가 무엇인지, 코로나19로 CBDC 관련 논쟁이 어떻게 다시 불붙었는지, 또 이런 논의가 화폐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디지털달러는 무엇인가?

우선 미국 의회 법안에 정의된 ‘디지털달러’는 분산형 블록체인 기반 토큰과는 거리가 멀다. 이보다는 연준이 관리하는 중앙집중식 원장에서의 부채 표기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미국의 디지털달러는 CBDC가 될 수 없다. CBDC는 엄밀히 말해 암호화폐가 아니기 때문이다. CBDC는 탈중앙화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연준이 직접 발행한다. 연준은 연준이나 관련 주체가 운영하는 중앙집중식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개인이나 기업의 계좌를 안전하게 추적하고, 사람들은 디지털달러 지갑을 통해 자산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지갑도 연준이 관리한다.

미국인들이 연방준비제도가 관리하는 디지털 지갑(연준 계좌)을 개설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사진은 휴스턴 연준. 출처=언스플래시.
미국인들이 연방준비제도가 관리하는 디지털 지갑(연준 계좌)을 개설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사진은 휴스턴 연준. 출처=언스플래시.

 

디지털달러 논쟁을 다시 불러온 코로나19

앞서 언급했듯, 최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디지털달러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일부 의원들은 당장 2조달러(2441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을 집행할 때 디지털달러를 발행해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기존 시스템에서 국민들은 재난지원금을 받을 때 재무부에서 현금을 입금하거나 수표를 지급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 해당 계좌에 잔고가 마이너스면, 은행이 재난지원금의 인출을 합법적으로 막을 수 있다. 이 부분은 경기부양책에서 별도로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와 함께 디지털달러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팬데믹에서 실물 화폐가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화폐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염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화폐 오염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들어온 화폐를 최소 2주간 금고에서 보관하고 있다. 중국도 자외선과 고온 열처리를 통해 화폐를 소독하고 있다. 온도가 너무 높아 일부 지폐는 망가질 정도다.

이에 지난 3월 몇몇 의원은 연준이 디지털달러와 디지털 지갑을 모두 발행해 개개인이 재난지원금을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불필요한 절차와 복잡한 시스템 탓에 지원금 수령이 시급한 개인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급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아쉽게도 해당 제안은 최종 경기부양책에 포함되진 않았다. 그러나 CBDC를 둘러싼 논의가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코로나19 경기부양 법안(CARES act)의 초안에 담겼던 디지털달러 관련 내용.
코로나19 경기부양 법안(CARES act)의 초안에 담겼던 디지털달러 관련 내용.

이후 일부 의원들은 지원 대상자들이 세금 환급 시 사용한 은행 계좌로 직접 입금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국세청에 등록된 계좌가 없거나 은행 계좌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수표가 지급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급을 준비하는 데만 몇 주가 흘렀는데, 여전히 수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앞으로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더 심각한 건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지급 시점이 제일 뒤로 밀릴 것이라는 점이다. 지원금 수령이 누구보다 절실한 건 이들 금융소외층인데 말이다.

맥신 워터스(민주, 캘리포니아) 하원의원과 셰러드 브라운(민주,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제안한 디지털달러는 이론적으로 재난지원금의 지급 절차를 매우 단순화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문제가 생겨날 소지가 크다. 연준이 발행하는 디지털달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달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려면 이에 앞서 수많은 법적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

 

CBDC의 장단점

이처럼 디지털달러를 둘러싼 논쟁과 함께 중국 등 주변국의 최근 행보는 미국 내 CBDC 관련 논의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CBDC는 사용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CBDC는 금융소외층을 아우르면서 좀 더 효과적인 결제 시스템을 제공한다. 또 화폐 정책을 운용하는 데도 다양한 선택권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정부의 탄탄한 지원으로 CBDC가 원활하게 도입되면 스테이블코인 테더(Tether)처럼 규제가 다소 어려운 민간이 발행하는 화폐는 도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CBDC 도입에는 각종 위험도 따른다고 IMF는 언급한다. 우선 금융 매개체로서 시중은행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축소되고 중앙은행의 역할이 대폭 커진다. 이렇게 되면 특히 경기가 호황으로 접어들 때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CBDC 발행과 관리를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과정에 일일이 개입해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중앙은행의 명성과 평판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자금세탁방지법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주로 관리하던 중앙은행이 갑자기 소비자들의 정서까지 살펴야 하는 책임까지 지게 되는 것이다.

 

CBDC 도입을 추진하는 나라들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을 개발 중이라는 신호를 곳곳에서 보내왔다. 최근에는 4개 도시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DC·EP)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또 국유은행 한곳은 디지털 위안용 인터페이스를 시험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영국, 스위스, 스웨덴, 캐나다, 일본 중앙은행과 유럽 중앙은행이 CBDC에 대한 공동연구를 위해 국제결제은행(BIS)과 실무그룹을 구성했다. 이중 캐나다 중앙은행은 “우리는 현재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영국 중앙은행은 “민간 기업이 화폐 발행과 유통에 점점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CBDC 도입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부터 20개월 동안 CBDC 파일럿 테스트를 시작했다. CBDC 도입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미국의 디지털달러 개발 현황

연준은 이미 1년 전부터 디지털 화폐에 관해 공식적으로 언급해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발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수히 많다.

“소셜미디어나 승차 공유 앱과는 달리 결제 시스템은 개발하고 싶다고 해서 뚝딱 개발되는 게 아니다. 결제 시스템은 소비자의 금융 보안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계좌로 직접 연결되는 CBDC 발행은 법적인 문제를 비롯해 정책, 운영상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좀 더 안전하고 저렴하며 빠른, 효과적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라엘 브레이나드 연준 이사, 2019년 12월 발언

연준은 현재 페드나우(FedNow)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페드나우는 실시간 결제 시스템으로 각종 금융기관이 지금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CBDC나 디지털달러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페드나우 출시는 CBDC를 위한 비전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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