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기준금리 0%대 시대’를 열었다. 한국은행은 16일 오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연 1.25%에서 0.75%로 0.5%포인트 내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5일(현지시각) 또다시 긴급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정책금리를 1%포인트 전격 인하하는 등 세계 각국의 통화완화 행렬이 이어지자 한은도 뒤늦게 동참한 것이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린 것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0.50%포인트)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0.75%포인트)에 이어 세번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임시 금통위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고 금융시장 불안이 국내 실물경제로 파급될 우려가 커졌다”고 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고 있어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기존 전망치(2.1%)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금통위는 의결문에서 “국내외 금융·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만큼 앞으로도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통위는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를 연 0.50~0.75%에서 0.25%로 인하하고 공개시장운영 대상 증권에 은행채까지 포함하는 등 유동성 확대 방안도 함께 내놨다.

 이날도 국내 금융시장은 급락세가 멈추지 않았다. 글로벌 달러 유동성 경색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피 시장에서 68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 팔았다. 이에 코스피는 3.19%(56.58) 급락한 1714.86에 장을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1226원까지 치솟아 2016년 3월2일(1227.5원)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피가 16일 3% 넘게 떨어져 1710대까지 후퇴했다. 사진은 16일 오후 장 마감된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출처=연합뉴스
코스피가 16일 3% 넘게 떨어져 1710대까지 후퇴했다. 사진은 16일 오후 장 마감된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출처=연합뉴스

 미 연준은 지난 3일 정책금리를 전격 인하(0.5%포인트)한 데 이어 일요일인 15일 1%포인트나 더 낮추는 ‘빅컷’과 7천억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조처를 긴급 단행했다. 연준 정책금리는 기존 1.00~1.25%에서 11일 만에 ‘제로금리’(0.00~0.25%) 수준으로 내려갔다. 정책금리 인하는 17일부터 이틀간 열릴 예정이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당겨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연준 정책금리가 0%(금리 하단 기준)로 떨어진 건 2008년 12월(2015년 12월까지 지속) 이후 처음이다.

 연준은 성명서에서 “코로나19 충격은 알 수 없는(unknowable) 상황이다. 경제 데이터는 미국 경제가 도전적 시기에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경제가 최근의 사태를 견뎌내고 최대 고용 및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궤도에 올랐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인하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마이너스 정책금리가 미국에서 적절한 정책 대응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이어 한은도…금리 0.5%p 낮춘 건 금융위기 이후 처음

한국은행이 16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사상 첫 0%대로 낮춘 것은 그만큼 대내외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미국·유럽 등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가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가 아닌 0.5%포인트 내린 것은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2월 이후 11년여 만에 처음이다.

 한은의 ‘빅 컷’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5일(현지시각)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기다리지 않고 정책금리를 1%포인트 내린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 연준이 연방기금금리를 제로 수준(0.00~0.25%)까지 떨어뜨려 1.25%였던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통위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단기간에 1.5%포인트를 인하해 우리도 적극적인 대응을 할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연준은 코로나19가 종식되고 경제활동이 정상화될 때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출처=AFP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출처=AFP 연합뉴스

 지난 12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급락도 한은의 결단을 재촉했다.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는 주식시장에 견줘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했던 채권시장에서도 이상 기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외국인의 대규모 선물 매도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했다. 이날도 국내 금융시장은 글로벌 달러 유동성 경색으로 코스피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총재는 “기관투자자들의 단기 외화자금 수요가 증가하고 우리나라의 (대외지급 위험수준을 가리키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가 상승하는 등 달러 차입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며 “국내은행의 외화자금 사정은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지만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또 국채금리가 기준금리를 일정 수준 이상 웃돌 경우 국채를 매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17일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경정예산안과 정책조합을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차원에서도 ‘빅 컷’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았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연쇄적인 통화완화 정책에 쫓기듯 금리를 인하하는 상황에서 0.25%포인트만 내릴 경우 되레 시장에 실망감을 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경기 하강이 예상됨에 따라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는 “2월 거시지표가 나오는 이달 말이 되면 금리 추가 인하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한은의 통화완화 환경은 녹록지 않다. 우선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원화가치 하락)가 멈추지 않고 있다. 통상 금리 인하는 통화가치 약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와 주택가격 상승세도 한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총재는 “환율은 내외 금리차 외에도 국제금융시장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주로 영향을 받는다”며 미 연준의 ‘빅 컷’으로 원화 가치 하락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부동산 가격은 글로벌 경기 위축과 정부의 일관된 안정대책 영향으로 단기적으로는 상승이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출처=한겨레
출처=한겨레

 금리가 연 0.75%로 내려오면서 통화정책 여력 측면에서 쓸 수 있는 ’실탄’이 사실상 거의 바닥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기준금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출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 등 부작용이 더 커지는 ’실효하한’이 존재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 총재는 “실효하한은 고정된 게 아니라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과 주요국의 정책금리 변화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추가로 금리를 낮출 여력이 있음을 시사했다. 한은은 지난 4일 보도자료에서도 실효하한은 자본유출만이 아니라, 실물경제 파급효과와 금융안정 등 여러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금통위는 이번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 인하로 은행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유인을 높여 차입 기업의 이자부담 경감과 자금사정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아울러 공개시장운영 대상 증권에 은행채까지 포함해 코로나19 피해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효과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경제 충격과 금융시장 혼란이 이어질 경우 긴급 유동성 확대 등 전향적인 금융완화 수단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처럼 채권을 대거 사들이고 대출을 크게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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