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연 암호화폐 회의에 참가한 업계 관계자들은 명확한 과세 지침이 없다는 데 대한 걱정을 포함해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출처=코인데스크
국세청이 연 암호화폐 회의에 참가한 업계 관계자들은 명확한 과세 지침이 없다는 데 대한 걱정을 포함해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출처=코인데스크

미국 국세청(IRS)이 지난 2일 암호화폐 회의(crypto summit)를 열고 암호화폐 관련 기술과 거래소, 세금신고 절차, 규제 지침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국세청은 “암호화폐를 보유한 개인이나 기업이 세금 신고와 관련해 가진 의문과 우려 사항을 주제별로 분류해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총 4명의 패널과 함께 암호화폐 업계 이해관계자 규제 담당자, 세법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국세청은 가상화폐 관련 과세 지침을 마련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과세 지침에 관한 명확한 답변이나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이날 행사는 국세청이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10년간 국세청이 암호화폐 과세 제도와 관련해 신설한 의무 규정은 단 2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까지 합해도 몇 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업계와 규제 당국 모두 국세청이 왜 이렇게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온 건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싶어 한다.” - 찬단 로다, 코인트래커(CoinTracker) 공동설립자

코인베이스(Coinbase)의 부사장은 세금신고 형식을 좀 더 명확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언스트앤영(EY) 소속 회계사 마이클 미슬러도 “회계감사 전문업체 등 금융 자문역은 굳이 불필요한 항목을 세금신고서에 기재하지 않아도 될 때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행사에는 암호화폐 업계의 다양한 인사가 참석해 저마다의 고민과 질문을 쏟아냈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역할은 무엇인지,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코인은 비트코인(BTC) 같은 암호화폐와 어떻게 다른지, 납세 절차를 단순화하려면 암호화폐 업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 질문의 종류와 형태도 다양했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국세청의 기존 지침은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날 행사도 새로운 지침이 공개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찬단 로다 코인트래커 대표는 이번 행사를 꽤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이날 행사는 사회자가 질문하고 패널이 대답하는 일반적인 토론 형식에서 벗어나 회의 참석자는 물론 패널까지도 국세청 담당자에게 직접 질문하고 이들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암호화폐 관련 세제에 관한 질문이 쉼 없이 이어졌다.

 

세금 계산 및 신고

구체적으로는 암호화폐 관련 세금을 계산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서로 다른 거래소에서 구매하거나 거래소 간 이체한 코인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소액 거래는 세금이 면제되는지, 암호화폐와 관련해 국세청에서 마련한 지침과 기존의 세법 중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등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암호화폐 관련 세법과 관련해 공식적인 지침이 있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공식 규정이 없는 탓에 늘 이렇게 질문과 답변이 반복된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국세청이 조세 당국으로서 제 역할을 못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마이클 미슬러, 언스트앤영 회계사

이는 비단 미슬러 만의 생각이 아니다. 업계 곳곳에서 이런 불만이 나왔다. 크라켄(Kraken)의 종합소득세과장 리사 아슈케나지 펠릭스, 코인베이스의 납세팀장 카일 잔더, 미국 공인회계사협회 수석팀장 에이미 이충 왕 등 이날 참석한 패널과 인사들은 하나같이 “암호화폐 과세 규정과 관련한 여러 가지 혼란은 오늘날 대부분 암호화폐가 기존 세법의 테두리 안에 온전히 포함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암호화폐와 관련해) 세금 신고를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다.” - 리사 아슈케나지 펠릭스, 크라켄

미슬러는 그러나 “암호화폐 산업과 관련한 세제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는 존 카돈 국세청 부청장보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번 행사를 통해 문제 해결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 국세청의 노력만큼은 높이 평가했다.

“세금 계산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자든, 암호화폐 거래소 종사자든 회의 참석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암호화폐 관련 세제에 집중됐다. 질문들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 마이클 미슬러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대표적인 항목으로는 납세자가 디지털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계산 기준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각기 다른 시기에 매수, 또는 매도한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선입선출법(first-in-first-out)’을 적용하라”고 답변했다. 예를 들어, 각각 1월, 3월, 4월에 비트코인을 구입해 7월, 8월, 9월에 판 경우 가장 처음 비트코인을 구매한 1월 당시의 매수금액과 7월 매도금액의 차액을 계산하고 이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방법은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세법 규정은 암호화폐 사용자가 특정 ID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곧 비트코인 거래 시 발생하는 각종 비용도 계산돼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특정 ID 외의 것을 사용하도록 허가할 수 있는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 기관이 없다. 국세청은 암호화폐 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좀 더 명확한 기준과 지침을 서둘러 제공해야 한다.” - 에이미 이충 왕, 미국 공인회계사협회 수석팀장

 

이해도의 차이

세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도 오간 반면, 이날 출석한 국세청 직원들은 API의 정의를 비롯해 차익거래, 암호화폐 거래 방법 등 암호화폐와 관련한 다소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암호화폐를 이해하는 참석자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느꼈다.” - 아놀드 스펜서, 코인소스(Coinsource)

“암호화폐 산업이나 기술에 대한 참석자들의 이해도가 제각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하나의 주제로 한곳에서 회의를 진행한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암호화폐에 어떻게 세금을 매기나?,’ 혹은 ‘하드포크된 암호화폐나 에어드롭으로 지급된 암호화폐에는 어떻게 세금을 부과할까?’라고 묻기 전에 암호화폐 거래의 원리부터 이해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 마이클 미슬러

이른 시일 내에 국세청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그러나 기존의 지침을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지금 바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중 하나는 국세청 내부적으로 마련해두고 있는 FAQ(자주 묻는 질문) 항목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공개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몇몇 참석자가 공통으로 언급했다.

FAQ 항목은 현재 게시판에 공개돼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설명한 규정을 준수하라고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특정 항목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 국세청이 자의적으로 이를 수정할 수 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항목은 국세청이 처음 내놓은 답변과 전혀 다르게 바뀐 것도 있다.

하지만 이들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국세청의 답변에 규정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하면, 납세자는 물론 회계사 등 금융 자문가들도 적절한 법적 기준을 찾은 데 안도할 것이다. 또 최소한 관련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해 법을 위반하는 사례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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