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 처음 생겨난 지 10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 암호화폐란 무엇이며, 어디에 쓸모가 있고 왜 필요한지는 어느 정도 보편적인 인식이 생겼고 이를 지지하는 주장도 정리가 됐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되풀이하는 그 주장과 인식을 데이터가 튼튼히 뒷받침해준다고 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예를 들어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린 도표를 보면, 투자자들 사이에서 비트코인은 조금씩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격이 상승할 때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트코인과 금 등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다른 지표를 보면 대부분 투자자는 여전히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digital gold)’으로 보지 않는다.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 금융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실제 데이터와 사용자 수의 급감을 고려하면 아직 ‘웹 3.0’ 내러티브는 걸음마 단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3일 발간된 코인데스크 2019년 4분기 보고서는 45장의 슬라이드에 핵심 데이터, 트렌드, 암호화폐 시장을 좌우하는 사건들을 정리하고 25쌍 이상의 데이터 묶음을 토대로 세 건의 이용사례를 평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내러티브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보고서는 투자자의 관심과 글로벌 암호화폐 사용의 변화 추이를 추적하는 핵심 지표를 소개하고 있다. 핵심 지표로는 비트코인 ‘고래’ 투자자 수, 미사용 거래출력값(UTXO) 분포, 거래량 등이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은 시사점 세 가지를 정리했다.

 

  1. 모두가 비트코인을 팔아치운 것은 아니다

미사용 거래출력값(UTXO)이란 말 그대로 마지막 거래가 일어난 뒤 지금까지 흐른 시간을 뜻한다. 비트코인을 1년 전에 산 뒤 지갑에 보관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해당 비트코인의 UTXO는 1년이 된다. 2017년 하반기 이후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던 비트코인의 상당량이 2019년에 거래됐다. 그러나 여전히 거래하지 않고 계속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도 있다. 지갑에 잠깐씩 머물다 이내 거래되는 비트코인의 양이 계속해서 줄어든 것은 코인베이스가 2018년 12월에 출시한 콜드스토리지 수탁 서비스로 많은 비트코인이 이전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트코인 UTXO
비트코인 UTXO

2017년 하반기에 비트코인을 사서 2019년 말까지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 보유자들은 이득을 보고 비트코인을 팔았을 수 있다. 이는 비트코인을 투기 자산보다 가치 저장 수단으로 여기는 투자자 심리가 있음을 시사한다. 2018년 말에 비트코인 보유자 수가 증가한 것은 투자자들이 2018년 12월에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를 통해 더 안전한 형태로 자산을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미국 달러(USD), 영국 파운드(GBP), 유로화(EUR) 등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코인베이스의 비트코인-법정화폐 시장은 2018년 이후로 성장이 정체됐다. 노믹스(Nomics)의 데이터에 따르면 비트코인-법정화폐 거래량은 2018년 4654만 달러에서 2019년 4492만 달러로 줄었다. 비트코인을 전통적인 화폐를 대신하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주로 이 시장을 이용했다. 이 시장은 비트코인을 사서 보유하는 투자 심리의 지표로 볼 수 있다.

 

  1. 비트코인 ‘고래’ 투자자는 건재

비트코인이 1천 개 이상 든 지갑의 숫자는 2018년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다. 2013년 ASIC 채굴기가 등장하고, 비트코인 개당 가격이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큰손 투자자를 일컫는 ‘고래’의 증가세는 정체됐었다. 다만 많은 비트코인을 보유한 고래들이 단지 여러 지갑에 비트코인을 나누어 담거나 반대로 한곳에 모아놓는 등 단순히 관리 목적으로 자금을 이전한 것일 수도 있다.

비트코인이 1천 개 이상 든 비트코인 지갑 수 & 비트코인 가격 변동 추이
비트코인이 1천 개 이상 든 비트코인 지갑 수 & 비트코인 가격 변동 추이

2019년 말 기준으로 850만 달러어치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관하고 있는 비트코인 지갑 주소는 2100개가 넘었다. 2018년부터 비트코인 ‘고래’ 투자자의 숫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비트코인이 현재 가격의 1/85~1/90인 개당 100달러에 거래되던 2010년대 초반 이후 오랜만에 고래의 숫자가 뚜렷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규제 당국의 감독하에 있는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대규모 투자자의 참여가 증가하지 않았다. 암호화폐 데이터 제공사 스큐(Skew)는 2019년에 CME와 백트(Bakkt)의 비트코인 선물 미결제약정(open interest) 거래량이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비트코인 선물시장은 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Binance) 같은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와 달리 기관투자자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비트코인에 노출된 상품을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은 거래소에서 운영하는 시장이다. 거래소 간 자산 유동성 불균형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 기관투자자의 암호화폐 시장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1. 탈중앙 금융(DeFi)은 암호화폐 겨울에 꽃핀다

탈중앙 금융의 선두주자 메이커다오(MakerDAO)는 다중담보대출 방식을 적용한 새로운 DAI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컴파운드(Compound), dYdX, 인스타댑(InstaDApp) 등 탈중앙 금융 서비스들은 대체로 이용자가 늘어났다. 2019년 말 기준 이더(ETH) 전체 발행량 3%가 탈중앙 금융에 담보로 보관돼 있다. 여기에는 이더리움 가격이 내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탈중앙 금융 대출 플랫폼상의 이더리움
탈중앙 금융 대출 플랫폼상의 이더리움

탈중앙 금융 애플리케이션은 2019년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암호화폐 데이터 제공사 디파이펄스(DeFi Pulse)에 따르면, 탈중앙 금융 앱은 2019년 4분기까지 6억 8천만 달러 거래량을 기록했다. 탈중앙 금융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하부 카테고리인 암호화폐 대출에서는 이더 시장 가격이 내릴 때마저 이더리움 사용자가 계속 늘었다.

게임과 도박 등 다른 탈중앙 애플리케이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암호화폐 데이터 제공사 댑레이더(DappRadar)는 2019년 1분기보다 4분기에 애플리케이션의 수와 사용자가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전반적으로 탈중앙 금융 애플리케이션의 질은 높아지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줄어들었지만, 적은 수의 애플리케이션이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 존 조던, 댑레이더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한편, 이더리움 외의 다른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 애플리케이션 플랫폼과 이용 사례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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