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세계 2대 증권거래소인 나스닥(NASDAQ)은 인공지능 기반 암호화폐 지수인 'CIX100'을 상장했다. CIX100은 글로벌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9곳의 자료와 메타 데이터를 취합해, 상위 암호화폐 100종의 가격을 압축한 지수다. 거래량을 조작하는 코인이 지수 안에 포함되지 않도록 신경망 알고리듬을 이용해 관리하는 게 특징이다. 기존 금융의 관점에서 암호화폐를 볼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부정적인 시선을 방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행보가 대중성 높은 암호화폐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기 위한 밑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나스닥은 올 2월 비트코인 가격지수(Bitcoin Liquid Index, BLX) 출시를 시작으로 시장에 암호화폐 지수를 계속 던지고 있다. 이더리움 가격지수(ELX), 리플 가격지수(XRPLX), CMC크립토 200인덱스(CMC200)에 이어, 올 9월에는 디파이(Defi) 프로젝트들의 토큰 가격 현황을 반영한 디픽스(Decentralized Finance Index, Defix)도 내놨다.

ETF는 일정 비중으로 여러 개의 자산이나 지수를 모아 만든 금융상품을 말한다. 투자절차가 간략하고, 개별 자산에 투자하는 것보다 위험과 비용이 낮다. 반면 투명성은 높다. 극심한 가격 변동성 때문에 암호화폐 투자를 꺼리는 사람도 암호화폐 ETF가 나오면 상대적으로 부담감없이 투자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제도권 자금이 디지털 자산 분야로 들어오기도 쉬워진다. 윙클보스 형제 등 암호화폐 '큰손'으로 꼽히는 디지털 자산 투자사들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ETF의 승인을 거듭 신청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암호화폐 파생상품 매매를 도박행위로 취급하는 국가다. 자연 파생상품의 일종인 암호화폐 ETF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지난 8월, 유사 암호화폐 ETF 상품 다섯 개가 별안간 국내 거래소에 상장됐다. 고팍스의 '헷지토큰'이다.


비트코인 1% 내리면 1% 오르는 토큰? 실제 투자해보니


헷지토큰은 기초가 되는 암호화폐의 24시간 가격 변동성을 역으로 추적하는 ERC-20 토큰이다. 어떤 암호화폐 가격이 1% 오르면 해당 코인의 헷지토큰 가격은 1% 내리는 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주식 투자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KODEX 인버스'와 비슷한 콘셉트다. 고팍스는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리플(XRP), 비트코인캐시(BCH), 이오스(EOS)를 각각 기초자산으로 두는 헷지토큰 5종을 원화마켓에 상장했다.

고팍스 측은 헷지토큰 상장 배경에 대해 "일종의 고객 서비스용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선물 등 암호화폐 파생상품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할 경우 투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헷지토큰을 이용하면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고팍스 관계자는 "여타의 파생상품처럼 레버리지가 크지 않으면서도(약 -1배) 투자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기회가 될까. 기자는 체험을 위해 10월30일 '비트코인 HEDGE' 토큰을 구입했다. 그리고 만 하루를 보유한 후 다음날 판매했다. 기자가 토큰을 보유하고 있던 기간 동안 기초자산인 비트코인 가격은 글로벌 대형 거래소 기준, 평균 3% 가량 하락했다. 그러나 기자의 헷지 토큰은 0.2% 가량 오르는데 그쳤다. 결국 적절한 매도 시점을 잡지 못한 탓에 원금 손실을 봐야 했다.


10월30일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의 헷지토큰과 기초자산 코인의 가격 비교. 출처=김동환/코인데스크코리아


고팍스 비트코인 헷지토큰의 가격은 고팍스에 상장된 비트코인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지지는 않는다. 바이낸스, 비트스탬프, 비트렉스, 코인베이스, 크라켄, 오케이이엑스 등 글로벌 대형 거래소들의 비트코인 시장가격 평균으로 산정된다. 고팍스는 이 평균 시장가격을 매매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구입한 헷지토큰이 과연 애초 설정된대로 위험 회피 효과를 내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이같은 구조는 국내 거래소로서는 과감하게 파생상품을 도입했지만 정작 거래량이 늘지 않는 이유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고팍스의 비트코인 거래량은 약 60억 원. 그러나 비트코인 헤지토큰의 거래량은 4000만원을 채 넘기지 못했다. ETF 거래량은 해당 상품의 인기도를 말해주는 지표다. 8월 19일 이후 고팍스에 접속하는 투자자들은 매일 적어도 한 번의 헷지토큰 홍보 팝업창이나 홍보 배너에 노출됐다. 대대적인 홍보 속에 출시 두 달이 지났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헷지토큰에 대해 비교적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금융연구실 MBY_lab의 정순용씨는 "헷지토큰은 유사 ETF 상품으로 자산분배 및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유용한 상품이지만 거래량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쪽에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거래소의 거래량 유치와 비정상적 거래에 대한 필터링 강화 노력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암호화폐 트레이더는 "고팍스가 (헷지토큰) 운용 측면에서 너무 허점이 많다"며 "주변에 시험삼아 한두번 해본 사람들도 (아직 이용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ETF를 상장했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유동성 공급 등 시장조성행위도 부족하고,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상품 정보도 매우 간단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ETF를 상장한 거래소는 투자자에게 해당 상품의 괴리율, 추격오차율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이 항목들은 ETF 가격에 기초자산의 변동성이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들이다. 고팍스는 상품 가치와 관련해서는 원 발행처인 FTX 거래소의 링크를 이용해서 오직 순자산가치(NAV)와 수수료 관련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 트레이더는 "투자자에게 '헷지토큰은 투자 위험이 있는 파생상품'이라는 고지를 하는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거래소가 하는 게 없다"며 "투자자 보호 등 거래소가 져야 할 책임은 제대로 안 지고 거래 수수료만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헷지코인 매매했다가 도박죄 적용될 수도"


고팍스가 투자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위험고지가 불완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법인 한별의 권단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2012도9660)에 따르면 이 토큰에 대한 거래를 제공할 경우 도박개장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형법에서 도박죄를 판단할 때는 우연성을 중요한 성립 요건으로 본다. 같은 투자라 할지라도 우연에 의해 승패가 나뉘는 대상에 돈을 넣으면 도박 행위가 된다. 권 변호사는 "이 토큰은 외양이 파생상품과 비슷하지만 24시간 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수익률 추적을 한다는 점에서 투자보다는 도박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거래소가 도박개장죄가 되면 이용자들은 도박죄 적용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해 6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의 마진거래 서비스를 도박으로 규정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시킨 바 있다. 고팍스는 거래소 공지사항을 통해 이 토큰에 투자할 경우 겪을 수 있는 15개 항목의 위험 사항들을 고지하고 있다. △레버리지 위험 △자산가치 변동 위험 △유동성에 따른 위험 △자산보유 거래소의 위험 △거래시각에 따른 위험 △환율 변동의 위험 등이다. 그러나 이중 토큰 매매시 도박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도박 혐의를 피한다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우선 행정부에서 이 분야 규제 감독을 맡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마찰을 빚어야 한다. 앞서 지난 2017년 암호화폐를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송사가 벌어져 법원이 헷지토큰을 파생상품으로 판단한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거래소가 파생상품 매매를 중개하기 위해서는 투자중개업 인가를 받아야 한다. 파생상품이 금융투자상품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중 투자중개업 인가를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 국내법에 따르면 금융 투자 분야에서 무인가 영업행위를 하다 적발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8년 10월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의 암호화폐 펀드 공모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무인가 영업행위)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당시 거래량 기준 국내 중상위권을 유지하던 지닉스는 펀드 출시를 즉각 취소하고 투자금을 반환했다. 그후 한달 만에 아예 거래소 운영 종료를 공지했다.

거래소가 제대로 하려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 변호사는 "지금 금융위원회 등 당국 입장상 암호화폐 거래소가 투자중개업 자격을 취득하기는 사실상 어렵지만 자본금과 시설을 갖추고 인가를 신청하는 업체를 마냥 거절할 수도 없다"면서 "행정소송으로 다투면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경우, 거래소는 현재 헷지토큰을 상장해놓은 고팍스보다 훨신 강도높은 관리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고팍스 홈페이지. 출처=고팍스


크립토 파생상품에 엄격한 미국, 관련 법규와 길잡이 만들어가는 중


국내 암호화폐 업계에서도 시장 다음 흐름이 파생상품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헷지토큰은 국내 암호화폐 업계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마중물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업계 반응은 부정적이다. 관련 법규 미비가 가장 큰 이유다. 최지혜 헥슬란트 리서치팀장은 "최근 암호화폐 하락장이 지속돼 파생상품 토큰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국내 거래량 상위 거래소들이 제재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헷지토큰 같은 상품을 선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기본적인 암호화폐에 대한 법제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거래소 등 기업들이 시장 흐름에 대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던 지난 2017년 말, 몇몇 국내 증권사들이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암호화폐 선물 세미나를 기획한 적이 있다. 당시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상장될 예정이었던 비트코인 선물 상품에 투자할 투자자들을 모으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암호화폐는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자, 모든 증권사가 당일에 세미나 행사를 취소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암호화폐 파생상품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미국 규제당국은 비트코인 ETF에 연이어 퇴짜를 놓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꾸준히 관련 법제를 보완하며 제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거래소가 적격을 갖춘 딜러나 브로커가 없는 상태에서 디지털 자산의 2차 판매를 하면 안된다는 내용의 길잡이를 내놨다. 암호화폐 파생상품 역시 기존 금융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존 금융 수준의 기준 요건이 갖춰지면 암호화폐 ETF도 승인이 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암호화폐 투자업 종사자는 "헷지토큰은 정부와 국내 거래소의 한계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어떤 산업에서 세계적 흐름을 주도한다는 게 정말 잡기 어려운 기회인데, 한국 블록체인 업계는 2017년 즈음에 왔던 기회를 이미 놓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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