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 6월 암호화폐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국제기준을 발표했다. 회원국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이 기준에 따라 국내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달 페이스북은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세계 17억명을 위한 암호화폐를 만들겠다며 리브라 프로젝트의 백서를 발표했다.

2009년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0년 만에 암호화폐 산업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글로벌 아이티(IT) 공룡이 뛰어들었고, 세계 각국의 정부와 의회가 본격적인 규제 마련에 나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지만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이 중요한 분기점에 놓인 건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규제기구와 블록체인 업계가 모여 암호화폐 규제와 생태계의 미래를 모색하는 콘퍼런스가 부산에서 열린다.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와 부산광역시는 9월3일 해운대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디지털 자산 거래소 박람회 ‘댁스포(DAXPO) 2019'를 연다.

 

FATF 자금세탁방지 기준


자금세탁방지기구는 마약조직의 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을 막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는 국제기구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을 포함한 3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 기구의 자금세탁방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금융기관은 당국의 제재를 받고, 해당 국가는 에스앤피(S&P),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로부터 낮은 국가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다.

이 기구가 자금세탁방지 대상에 암호화폐를 추가하면서 “가상자산이 불법거래에 악용되지 않도록 관할당국이 금융회사에 준하는 조치를 (암호화폐 거래소 등에)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각국 정부가 이를 법제화하면, 암호화폐를 발행한 아이시오(ICO) 기업, 암호화폐 매매를 중개하는 거래소, 암호화폐 전문 트레이딩 회사까지 모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상자산 취급업소’ 신고 또는 등록제가 도입된다. 법외 영역에 머물던 암호화폐 업계가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이지만, 각국이 법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많은 거래소가 퇴출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업계가 자금세탁방지기구 기준에 주목하는 이유다.

댁스포에선 자금세탁방지기구의 암호화폐 규제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전임 의장 두 명이 참가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법무장관 출신인 로저 윌킨스 전 의장(2014~2015년)과 우리나라 금융위원장 출신인 신제윤 전 의장(2015~2016년)이다. 이들은 자금세탁방지기구의 권한과 임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또한 기구 사무국에서도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 기준의 취지와 향후 계획을 설명할 예정이다.

 

새로운 돈을 위한 자금세탁방지


기존 금융권의 자금세탁방지가 아닌, 암호화폐에 적합한 새로운 자금세탁방지 방식의 가능성을 선보이는 발표도 예정되어 있다.

송금의 경우 은행들은 고객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고객신원확인(KYC) 방식을 취한다. 이는 송금자, 수신자 모두 은행 계좌가 있다는 걸 전제하며, 고객의 신분에 기반한 접근 방식이다. 자금세탁방지기구는 이 방식을 가상자산 취급업소에도 그대로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취급업소가 암호화폐를 보내는 자사 고객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외부 수신자의 정보까지 수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지갑(계좌) 주소만 공개되는 암호화폐의 특성상, 개인 지갑으로 전송할 때는 수신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는 신분이 아닌 거래 행태를 기반으로 한 자금세탁방지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해당 지갑의 이력과 거래 패턴을 분석해 자금세탁 위험성을 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와 은행마다 거래 데이터가 분절돼 있는 기존 화폐와 달리 거래 기록이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암호화폐의 특성 덕분에 이런 접근법이 가능하다.

댁스포에 참여하는 영국 회사 일립틱(Elliptic)은 암호화폐 전송 행위를 분석해 불법행위를 가려낸다. ‘그래프 나선형 네트워크’ 기법을 적용한다. 일립틱은 댁스포에서 엠아이티-아이비엠(MIT-IBM) 왓슨 인공지능(AI)연구소와 20만여개의 ‘비트코인 노드 트랜잭션’을 분석한 결과와 이 중 불법행위 거래를 어떻게 적발했는지 발표할 예정이다. 일립틱뿐만 아니라 체이널리시스, 센티널프로토콜, 코인펌, 쿨비트엑스(X) 등 세계 여러 나라 수사기관의 암호화폐 범죄수사를 돕고 있는 기업들이 총출동해 새로운 기술을 통한 자금세탁방지 방안을 논의한다. 아울러 거래소 코인원, 데이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 디지넥스는 자금세탁방지기구의 기준을 지키기 위한 업계의 노력을 소개한다.

 

신뢰 구축을 위하여


현재 암호화폐 산업에 부족한 시장 신뢰도를 높이려는 업계의 노력을 소개하는 자리도 있다. 암호화폐 가격과 거래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하는 ‘크립토컴페어'는 자전거래 등 시장 조작 행위를 포착하고, 이를 배제한 믿을 수 있는 암호화폐 데이터를 추출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어 세계 최대 거래소 중 한 곳인 후오비와 국내 거래소 고팍스, 거래 감시 플랫폼 솔리더스랩스, 암호화폐 공시기업 쟁글, 데이터 분석기업 라이즈 등 암호화폐 시장의 데이터 투명성을 높여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토론도 예정돼 있다.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는 정부 당국의 규제에 앞서 암호화폐 업계 스스로 자율규제 시스템을 꾸리려는 시도를 공유하는 시간도 있다. 암호화폐는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아 공동 대응이 필수적이다. 세계 여러 암호화폐 기업들과 함께 업계의 행동지침을 만들고 있는 ‘글로벌디지털금융’(GDF)은 지금까지의 합의 성과를 설명한다.

주요국에 설립된 암호화폐협회로부터 각국의 현황을 들어보는 순서도 마련된다. 싱가포르와 한국 블록체인협회와 미국 디지털상공회의소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연구소(CCAF)는 23개 국가·지역의 암호화폐 규제 현황을 심층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고경태 코인데스크코리아 대표는 “지금까지 무수한 블록체인 콘퍼런스가 열렸지만, 규제에 관한 각국의 전략과 경험을 공유하고 글로벌 협력 가능성을 토론하는 콘퍼런스는 없었다”며 “주요 글로벌 거래소의 컴플라이언스 책임자, 데이터 분석 전문가, 보안 전문가, 애널리스트, 수탁사는 물론 정부 규제 당국자들이 모여 지혜와 아이디어를 모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부산은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블록체인 기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며 “이번 콘퍼런스는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선도하는 분들이 모여 블록체인 기술이 만들어갈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