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7일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데이비드 마커스. 출처=하원 중계시스템 캡처

페이스북이 지난달 백서를 발간한 암호화폐 리브라와 관련한 워싱턴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다. 전날 상원 청문회에 이어 17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단호히 개발 중단을 요구했다.

이날 청문회를 주최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의 맥신 워터스 위원장은 리브라 개발의 일시 중단(모라토리엄)을 요구했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민주당 소속의 워터스 위원장은 청문회에 참석한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 책임자 데이비드 마커스를 향해 "답변을 빙빙 피하는 건 그만두고, 이 자리에서 약속해줄 수 있나? 리브라와 칼리브라가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분명히 하도록 의회가 적절한 법을 만들 때까지 일시 중단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앞서 지난 15일 맥신 워터스 의원실이 테크 대기업의 금융서비스 제공을 중단시키는 법안 초안을 회람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캐롤린 멀로니(Carolyn Maloney) 의원도 마커스에게 "당신들은 리브라를 절대 론칭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통화를 만드는 것은 핵심적인 정부의 기능이며, 민주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미국인들에게 책임을 지는 기관들에 맡겨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멀로니 의원은 "당신들은 최소한 연방준비제도(FRB)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 아래 작은 시범운영(파일럿) 프로그램을 하는데 동의해야 한다"면서, 공식 론칭 전에 1백만 이하의 이용자들을 상대로 한 테스트를 제안했다.

마커스는 개발 중단이나 시범운영 등에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은 채 "모든 규제를 만족시키기 전까지는 리브라 서비스를 론칭시키지 않겠다"는 기본적인 입장만 재확인했다.

리브라연합에 중국 기업도 들어갈 수 있을까


의원들은 리브라연합의 구성 방식과 운영 원리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지난해 선거에서 SNS 중심 캠페인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최연소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리브라연합의 페이스북 외 27개 창립회원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선정됐는지 질문했다. 마커스는 리브라연합은 개방돼있으며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리브라연합의 결정에 의해 가입 가능하다고 답했다. 다른 질문에서 개인도 리브라연합의 회원이 될 수 있느냐고 묻자 "안 된다"고 했다.

미 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 출처=하원 중계시스템 캡처

다른 의원은 '중국 기업도 리브라연합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고, 마커스는 즉답하지 않은 채 "리브라 서비스가 이뤄질 수 없는 나라는 불가능하다는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중국에서 차단된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으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질문한 의원은 "'그럴 수도 있다(maybe)'는 답변으로 알겠다"고 정리했다.

리브라의 안정적 가치 유지를 위해 리브라연합이 구성하는 예치금(리저브)과 관련해, 마커스는 "예치금은 주로(mainly) 달러가 될 것"이라고 한 뒤, 나중에 "50%는 달러이며, 다른 통화는 유로, 파운드(영국), 엔(일본)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리브라가 달러 이용을 대체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달러의 지배적 지위가 손상받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리브라는 미국 밖에서도 많이 쓰일텐데, 리저브 구성이 이처럼 이뤄지므로 달러 유입이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적 사례를 들며 리저브가 꾸준히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민주당 소속 케이티 포터 의원은 19세기 초 미국의 '와일드캣 뱅크'와 리브라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야생 고양이들이 발견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설 은행 '와일드캣 뱅크'는 당시 금과 교체 가능한 자체 통화를 발행했지만 결국엔 휴짓조각이 돼버렸다.

마커스는 "와일드캣은 리저브가 부분적(fractional)이어서 문제가 됐지만, 리브라 리저브는 (발행량과 예치량이) 1대1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대1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리브라연합은 감독을 받아야 한다. 올바른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터 의원이 "누구에 의해?"고 묻자, 마커스는 주요7개국(G7)에 워킹그룹이 있다고 답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감독은 받지 않느냐고 묻자, 마커스는 "(우리는) 은행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편, 리브라와 관련해 페이스북이 어떤 수익 모델을 추구하는지를 묻자, 마커스는 2가지 모델을 예로 들어 답했다. 첫째, 그는 페이스북 플랫폼을 이용하는 전자상거래 상인이 9천만명으로 추산된다며, 이들이 리브라 디지털 결제를 도입한다면 페이스북이 여기에 광고를 하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페이스북이 개발하는 리브라 지갑 서비스 칼리브라가 많이 쓰이면 이를 통한 금융기관 등과의 협업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두번째 방식에 대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불신과 기대가 교차하다


전날 상원 청문회에 이어 스위스에 리브라연합 본부를 두기로 한 결정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다. 마커스는 앞서 상원에서는 '국제성'을 가장 큰 이유로 제시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한 의원이 "스위스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 규정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두기로 결정했느냐"는 물음에, "규제 투명성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고 답했다. 그는 다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도, "규제 명확성이 스위스에 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덜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페이스북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일부 의원들은 리브라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숀 더피 의원은 페이스북의 혁신 시도에 대해 마커스를 칭찬하면서도, 리브라가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는 이용자들의 계정을 금지시킬 수 있는지를 물었다. 마커스는 모든 정책은 리브라연합의 결정이 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공화당 소속 톰 에머 의원은 "비트코인 등장 10년 만에 마술처럼 의회가 답하고 있다. 인터넷처럼 관심을 갖게됐다"며 리브라의 등장에 따른 청문회 개최를 환영했다. 그는 "리브라가 암호화폐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브라는 암호화폐의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토론을 증폭시켜줬다"고 말했다. 에머 의원은 "당파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공화당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리브라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김외현 13년 동안 한겨레에서 정치부와 국제부 기자로 일했고, 코인데스크코리아 합류 직전엔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 환경을 경험했으며,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현실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에서는 중국을, 대학원에서는 북한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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