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취재를 위해 방글라데시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문 적이 있다. 당시 통역과 가이드를 도와준 현지 인권운동가와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는다. 며칠 전 이 친구가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어왔다. 수 년 전부터 로힝야 난민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갓 태어난 난민의 아기가 위독해 치료비가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얘기였다. 미안하지만 아직 돈을 보내주지 못했다. 방글라데시로 송금을 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하고, 수수료도 비싸고, 돈이 전달되는 데에도 며칠이 걸린다. 난민은 당연히 은행계좌도 없다. 내가 송금을 하면 내 친구가 위독한 아기의 가족에게 돈을 전달해야 할 텐데 그 과정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즈음 마침 페이스북이 "사진을 보내는 것처럼 쉽게 송금할 수 있는" 암호화폐 '리브라'를 내년 안에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리브라가 이미 나왔다면 아마 나는 방글라데시 친구의 연락을 받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아픈 아기의 부모에게 곧장 돈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유신재

 

페이스북은 리브라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이 암호화폐가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17억 인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10년 전 등장한 비트코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포용적 금융의 가능성을 주목해 왔는데, 이미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사용자로 확보한 페이스북의 암호화폐라면 이런 목표를 훨씬 빨리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로힝야 난민이 금융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은 쉽게 기부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17억 인구가 세계 경제에 새로 편입되는 것의 경제적 효과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는 빈민들에게 무담보로 소액을 대출해주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리브라가 성공을 거둔다면 마크 저커버그도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대 기업으로 손꼽히는 페이스북이 데이터 독점을 넘어 글로벌 금융까지 지배해 더 큰 돈을 벌려고 한다며 포용적 금융이라는 고상한 명분을 깎아내리고 있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은행들이 이제껏 17억 인구를 버려두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정치인들과 정부, 금융기관들의 우려와 견제가 이미 시작된 가운데 리브라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세계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 진행중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분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은 잊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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