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셔터스톡

요약:


  • FINRA가 암호화폐 기업 40여 곳이 신청한 브로커딜러 라이선스 발급을 수개월째 보류하고 있다.

  • 혹자는 FINRA의 배후에 SEC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일부 스타트업은 아예 미국 시장을 포기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눈을 돌려 서비스를 출시하려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자율규제기관인 금융산업감독기구(FINRA, The Financial Industry Regulatory Authority)가 암호화폐 기업 40여 곳이 신청한 브로커딜러(broker-dealer, 증권중개인) 라이선스 발급을 수개월째 보류하고 있다. 길게는 1년이 넘도록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스타트업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버렸다. 라이선스 발급은 왜 늦어졌을까?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FINRA의 인허가 절차가 비공식적으로 중단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FINRA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고, SEC가 아예 라이선스 발급을 중단하라고 직접 명령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사태는 암호화폐라는 전례 없이 생소한 자산 특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감독기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누구의 말이 맞건 업체 수십 개가 미국에서 암호화폐 상품을 출시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디지털 자산 취급 기업들이 신청한 라이선스를 심사하려면 생소하고 복잡한 문제에 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FINRA는 지금 이 작업에 매달려 있다.” - 레이 펠레치아, FINRA 홍보팀장

코인데스크는 SEC에도 수차례 진행 상황을 묻고 의견을 요청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SEC는 암호화폐 관리 문제부터 시장조작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커뮤니티에 요구하며 암호화폐 업계를 적절히 규제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코인데스크가 인터뷰한 9명의 업계 관계자는 FINRA 혹은 SEC가 의도적으로 브로커딜러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라이선스를 신청한 스타트업의 법률 대리인도 있었고, SEC와 직접 접촉한 기업들, 자신들은 직접 관련이 없지만 거래처가 관련된 기업 출신 인사도 있었다. 이들은 SEC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여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현재 상황


암호화폐 업계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규제 당국의 승인을 제대로 받고 운영되는 금융 상품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많은 스타트업은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미국 시장에서 암호화된 증권을 판매함으로써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규제 당국의 인허가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너무나 까다롭다.

FINRA는 기업이 신청하는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심사해 허가 여부를 정하는 비영리 단체이며 금융 기관들이 자율적으로 구성한 기구로, SEC의 감독을 받는다. 수탁 기관이나 대체거래시스템(ATS)을 취급하는 업체가 되기 위해서도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므로, FINRA를 거쳐야 한다.

미국에서 브로커딜러는 자신이 직접 혹은 고객을 위해 증권을 사고팔 수 있는 증권 중개인을 가리킨다. 증권 중개인이 증권을 사고팔 때 고객의 자산은 당국의 승인을 받은 수탁 기관만 맡을 수 있다. 대체거래시스템은 정규 거래소 외에 종류가 다른 증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인가받은 거래 플랫폼을 통칭하는 말이다.

원칙적으로 FINRA는 브로커딜러 라이선스 발급을 승인할 뿐, 수탁 기관의 수탁 업무 인허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브로커딜러 라이선스가 없으면 수탁 기관 등록 신청서 자체를 낼 수 없고, FINRA가 별도로 대체거래시스템의 거버넌스도 감독하기 때문에 사실상 수탁 기관과 대체거래시스템 모두 SEC에 인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FINRA로부터 사전 검증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코인베이스(Coinbase) 등 여러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증권형 토큰을 발행하기 위해 대체거래시스템에 커다란 관심을 나타내 왔다. 또한, 기관투자자들의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수탁 기관으로 인증받으려는 암호화폐 거래소도 많다. 코인베이스와 제미니(Gemini), 비트고(BitGo) 등은 미국에서 수탁 기관으로 인증을 받았다. 다만 코인베이스와 제미니는 뉴욕주 금융서비스국에서, 비트고는 사우스다코타 금융 분과에서 허가를 받았다. FINRA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밖에 수탁 기관으로 인증을 받은 뒤 기관투자자의 자산으로 증권형 토큰이나 토큰화된 증권을 대체거래시스템에서 취급하려는 스타트업도 있다. 그러나 그 첫걸음이 되어야 할 브로커딜러 인가 단계부터 막혀있다 보니, 벌써 몇 달째 진전이 없다.

 

일시적 허가 중단?


한 변호사는 자신의 고객이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발급받기 위해 SEC와 FINRA를 몇 번이나 오갔다고 설명하며, 당시 상황을 “절망적”이라고 표현했다. 라이선스 발급이 지연되면서 미국에서 사업 계획 자체가 완전히 틀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변호사는 SEC가 암호화폐 업계를 가리켜 시장조작과 온갖 부정행위가 만연한 곳으로 취급했다고 회상했다.

“SEC는 시장조작과 부정행위가 많다고 툴툴거리기만 할 뿐 정직한 기업이 업계에 진입해 상황을 개선할 기회를 주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SEC가 요구한 모든 서류를 빠짐없이 제출했다. 이제는 더 이상 요구하는 것도 없다. 그냥 암호화폐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승인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의 고객은 이제 미국 시장을 사실상 포기했다.
“우리는 미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규제 당국과 협조했지만, 정말 안타깝게 됐다. 미국 고객과 미국 기업을 배제하고 다른 나라에서 기회를 찾는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하는 스타트업이 최근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컨센시스(ConsenSys)의 조이스 라이는 미국보다 명확한 규제 기준을 갖춘 훨씬 더 매력적인 시장이 많다고 경고한 바 있다.

라이는 대책 없는 규제기관 때문에 스타트업의 손발이 완전히 묶여버렸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명확한 규제 기준이 없다는 것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마음(과 돈주머니)를 무겁게 옭아매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누구 책임인가?


FINRA가 스스로 증권중개인 라이선스 발급을 보류하고 중단했을 수도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SEC가 FINRA를 조종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대형 로펌 듀앤모리스의 저스틴 델리아 변호사는 FINRA가 기본적으로는 자율규제기관이지만, FINRA가 제안하는 규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SEC에 있다고 설명했다.

코인데스크가 인터뷰한 또 다른 변호사는 FINRA가 SEC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배후에 SEC가 있다”고 말했다.

SEC는 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관리의 말과 글을 통해 증권법을 암호화폐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관해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SEC 관계자의 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심지어 서로 모순될 때도 많았다.

한 기업 고위직 임원은 거래회사 여러 곳이 FINRA의 라이선스 발급 보류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며, 역시 SEC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경우 FINRA가 더디게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건과 관련해서는 FINRA도 SEC의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FINRA는 기업들에 무척 협조적인데, SEC의 지침을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기존에는 승인받은 일부 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던 사모발행 증권도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거래할 수 있다. 따라서 SEC나 FINRA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한 대기업 임원의 말대로 예전에는 거래제한 품목으로 묶어서 규제했던 자산과 디지털증권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업계에서 일하는 또 다른 변호사는 증권만 취급하거나 혹은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는 암호화폐만 취급하는 기업들에는 라이선스 심사 절차 자체를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권만 취급하겠다는 ATS 신청서가 왜 허가가 안 나는지 모르겠다. 증권 아닌 자산에 대한 FINRA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과연 기준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대혼란


FINRA가 라이선스 발급 업무에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몇몇 기업은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발급받았다. 그래서 라이선스 업무 자체가 보류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현재의 답보 상태는 디지털자산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증권거래 플랫폼 오픈파이낸스(OpenFinance)의 창업자 CEO 후안 에르난데스는 FINRA의 결정이 느린 것은 사실이지만, SEC가 직접 심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오픈파이낸스는 티제로(tZERO), 셰어스포스트(SharesPost), 템플럼마켓(Templum Markets)과 함께 디지털 자산을 판매할 수 있는 ATS로 지난해 인가를 받았다. 많은 기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 어쨌든 브로커딜러 승인을 받은 기업도 있었던 것이다. 이 기업들은 이미 증권형 토큰 판매를 시작했다.

작년에 암호화폐 스타트업 서클(Circle)이 인수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시드인베스트(SeedInvest)도 (현재는 증권형 토큰을 비롯해 암호화폐 판매하지 않지만) ATS 인가를 받았다.

에르난데스는 FINRA가 한두 군데에서 주저하기는 했지만, 결국 시드인베스트가 서류를 보완해 제출하자 디지털증권을 취급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이 드문 것도 아니었다. 에르난데스는 오픈파이낸스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지난해 동일한 절차를 밟았고, 디지털 증권 거래를 취급하기 위해 당국의 요구 사항에 맞춰 서류를 추가로 제출했다.”

FINRA와 SEC의 운영·감독 절차 아래에서 어떤 기업이 ATS 인가를 받을 때, 특정 증권에 대한 거래를 허가받더라도 그 허가에는 제약이 있다. ATS 인가를 받았다고 모든 종류의 증권을 취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큰화된 증권은 기존의 주식이나 채권처럼 새로운 종류의 자산으로 분류된다.

에르난데스는 ATS나 브로커딜러, 수탁 기관으로 인가받는 과정이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심사 절차가) 지연되는 것이지 중단된 것은 아니다.”

 

바닥을 보이는 인내심


오랫동안 증권 변호사로 일해 온 저스틴 델리아는 블록체인 기업들이 직면한 새로운 이슈들을 고려할 때 인가 기간이 18개월 넘게 늘어진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면… 그것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FINRA가 더 꼼꼼히 보는 게 당연하다.”

FINRA는 신청 기업의 소유주, 자금 출처, 자금 내역, 자본 구성, 고객층, 고객에 대한 접근법, 경영진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거기다 신청 기업이 암호화폐를 취급하며 홍보의 상당 부분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하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생긴다. (전통적 기업보다 고객층이 훨씬 더 광범위할 가능성도 크다.)
“FINRA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도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FINRA의 인허가 과정은 6개월 안에 마무리되게 돼 있지만, 이 기간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고 델리아는 덧붙였다. 신청서에 빠진 부분이 있거나 부정확한 부분이 있으면 기간이 분명한 기준 없이 늘어나는 것이다. 에르난데스도 서류에 미진한 부분이 발견되면 이는 심사 지연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코인데스크가 인터뷰한 어느 기업의 임원은 현 상황이 머지않아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신청 기업이 아니더라도 상장지수펀드(ETF)나 ATS, 블록스택의 A 규정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포함해 업계의 압력이 점점 더 많은 방향에서 거세지고 있다. 결국에는 SEC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되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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