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은 지난 3일 발행한 보고서에서 “전세계 44개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비롯한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CBDC(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서는 금융소외, 안정성, 프라이버시 등 문제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들은 왜 CBDC 도입에 관심을 가질까? 5일 제2회 분산경제포럼(디코노미 2019)에 참석한 프란시스코 라바드네이라 캐나다은행 수석연구원은 캐나다 은행의 사례를 들어, ▲정책 이행의 효율화 ▲결제 시장의 효율성 제고 ▲범죄 근절 등을 위해 CBDC에 관심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에서 전문가들이 CBDC의 현황과 영향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IBM 블록체인 CTO 스탠리 용, 프란시스코 라바드네이라 캐나다은행 수석연구원, 안토니 루이스 R3 연구이사, 지나 피에터스 시카고대학 교수 등이 참석했으며 백종찬 분산경제포럼 공동조직자가 사회를 맡았다. 이미지=김병철 기자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지털 화폐가 기존 화폐를 대체할 경우 새로운 소외 계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나 피에터스 시카고대 교수는 “스웨덴의 경우 ATM과 현금 기반 결제가 점차 줄어들면서 현금 이용자가 소외되고 있고, 케냐에서도 모바일 결제 비중이 늘어나면서 소외계층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바드네이라 연구원은 “기술로 현금을 대체하고 소외계층 금융포용성을 높이겠다는 이야기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캐나다 북부 지역처럼 인터넷 연결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 현금 거래가 통용되지 않는다면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IBM 블록체인 CTO 스탠리 용은 “디지털 화폐 도입 논의는 대중의 온라인 거래 친화성을 높이는 등 인프라 구축에 대한 논의이지 전통 화폐 자체를 건드리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중앙은행의 CBDC 발행이 기존 금융권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토니 루이스 R3 연구 담당 임원은 "중앙은행은 시중의 현금 유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갖고 있다"며 "CBDC를 발행할 경우 금리를 누가 관리할 것인지, 법정 화폐에 연동해 0% 금리를 유지할 것인지 등 여러 결정이 필요하다. 여러 상황을 가정한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피에터스 교수도 "CBDC가 단순히 PG 결제를 비롯한 소매 환경에만 영향을 미칠지, 금리와 같은 더 넓은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라바드네이라 연구원은 "(CBDC) 발행의 목적과 그 영향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며 "CBDC의 금리를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면 정책 수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금리를 신중하게 설정해야 CBDC가 은행 예금의 대체제가 될지 보완재가 될지 판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프란시스코 라바드네이라 캐나다은행 수석연구원. 사진=김병철 기자

 

중앙은행이 CBDC 이용자들의 자금 흐름을 추적할 수 있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라바드네이라 연구원은 "거의 무제한으로 익명성을 보호해 주는 현금의 특성에 익숙한 사람들이 (CBDC를 통한) 거래를 모두 노출하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또한 (은행과 소비자 이외) 제3의 주체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사람들의 거래 패턴이나 목적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려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에터스 교수는 "CBDC는 투명한 회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정부는 국민들이 CBDC를 사용하길 원할 것이다"라면서도 "(페트로 토큰이 실패한) 베네수엘라에서처럼 정부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용 CTO는 "지금은 소비자들의 거래 정보가 노출되는 게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한발 물러나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며 "프라이버시 문제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대안적 시스템이 나오기 전까지는 단정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솔루션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나왔다. 실험이 필요한 문제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CBDC(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 발행이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CBDC가 현실화될 경우 금융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포럼은 “CBDC는 기술적 안정성과 프라이버시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인선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입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여간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블록체인, 가상자산, NFT를 취재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날엔 달리기와 요가를 합니다. 소량의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클레이(KLAY), 솔라나(SOL), 샌드(SAND), 페이코인(PCI)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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