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 이제 해외 필자로 이어갑니다. 미국 <코인데스크>는 비트코인 백서 출시 10주년을 맞아 “비트코인 10년: 사토시 백서(Bitcoin at 10: The Satoshi White Paper)” 라는 제목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업계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을 전망하는 다양한 인사들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 가운데 흥미로운 글을 엄선해 번역, 소개합니다. 이번 글의 저자 샘슨 모우(Samson Mow)는 블록스트림(Blockstream)의 최고전략책임자(CSO)입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가 세상에 나온 지 꼭 10년이 되었다. 세계는 10년 동안 비트코인의 심오한 영향을 이해하는 동시에 비트코인의 유용성과 확장성을 개선해왔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데 10년을 쏟았는데도 비트코인 백서를 마치 성경처럼 받아들이는 광신자들이 생겨난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비트코인 백서는 성경이 아닐뿐더러, 사토시는 처음부터 최종적이고 완벽한 문서를 지향하지도 않았다.

비트코인 백서는 소스코드 버전 1.0이 공개되기 수개월 전인 2008년 10월 발표되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자체는 백서 발표 1년 반 전에 이미 개발이 시작되었고, 백서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은 기능과 주요 합의 규칙을 담고 있었다. 이 사실만 보아도 비트코인 백서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기능적인 세부 사항이 백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소스 코드는 곧 개발이 완료될 것이다.” - 사토시 나카모토, 2008년 11월

사실 비트코인 백서는 컴퓨터광들을 위한 입문서 정도로 작성되었다. 심지어 사토시는 백서를 발표하고 나서 개발자인 할 핀니(Hal Finney)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은 글재주가 없어서 코딩이 더 적성에 맞는다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비트코인 코드에 정통한 이들은 백서에 누락된 내용이 많고 심지어 오류도 제법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비트코인  발행량(2100 ): 사토시는 ‘미리 정해진 숫자’라고만 백서에 언급했고, 발행 상한과 일정은 코드를 공개한 시점에 이르러서야 밝혔다.

  • 가장 체인: 과반수가 인정한 거래 이력을 가진 체인을 “가장 긴 체인”이라고 백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2010년 7월 사토시가 코드를 변경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가장 작업량이 많은 체인”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내용은 백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 ASIC 채굴: CPU 채굴이 백서에 자주 언급되어 있다. 사토시는 백서가 발간된 이후 “컴퓨터 클러스터가 결국 생성되는 코인을 모두 집어삼킬 것이다. 나는 그날을 앞당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CPU 채굴은 비트코인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 난이도 알고리듬: 백서에는 난이도 알고리듬에 이동 평균이 사용된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 코드에는 2016개 블록 주기가 사용되었다. 이는 변화에 저항하도록 하는 인센티브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 비트코인 스크립트 혹은 스마트계약 시스템: 사토시는 백서 발간 후에 비트코인 스크립트가 “위탁 거래, 채권 계약, 제삼자 중재, 다자 서명” 등에 쓰일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정작 백서에는 스크립트 기능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백서보다 코드가 먼저였다


비트코인 백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데도 사토시는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다. 심지어 코드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자 백서를 고치려 들지도 않았다. 예상컨대 실제 작동하고 있는 코드에 집중하느라 이미 현실과는 맞지 않은 백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터이다. 실제로는 네트워크의 디자인이 대폭 수정되었는데도, 일부에서 비트코인 코드가 오픈소스의 진화과정에서 수정되는 것을 ‘불경’하다고 여기면서까지 비트코인 백서를 종교적 숭배 대상으로 삼는 현상은 참으로 당황스럽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코드가 공개되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후속 개발 작업에 참여했다. 그 시기에 이르러서야 사토시는 비로소 주변 사람들과 비트코인의 진화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사토시의 아이디어가 항상 옳았던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항상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았지만, 창의성만은 항상 남달랐다. 사토시가 “고빈도 거래(high frequency trades)”라고 부른 결제 채널(payment channel)은 특히 다른 이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이용하면 사용자가 아직 최종 확인되지 않은 거래의 상태를 네트워크에 전파하기 전에 반복해서 업데이트할 수 있다. 이 기술은 비트코인 백서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지만, 비트코인 코드에는 이미 구현된 기능을 사용했다.

백서가 발표된 후에 나온 이 아이디어는 크리스티안 데커 박사가 쓴 “양방향 소액결제 채널(Duplex Micropayment Channels)”이란 논문과 함께 현재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토대가 되었다. 개발자들이 이 개념을 이어받아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등 발전시켜서 오늘날 신속한 P2P 결제를 가능케 하는 비트코인 소액결제 네트워크가 탄생했다.

필자가 비트코인 백서에 누락되어 있거나 실제 코드와 다른 사례를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는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백서는 전혀 수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이다. 백서는 코드를 개발하는 데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사토시가 개념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에 지나지 않는다. 백서에 비트코인이 거둔 지금까지의 성공에 필수적이었던 기능들이 누락되어 있는데도, 일부에서 백서를 성경 수준으로 떠받드는 현상은 소수 인사의 디자인 결정 사항을 강제하기 위한 잘못된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

 

진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사례는 소프트웨어 자체가 비트코인의 참모습이며, 원하는 규칙을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네트워크에 구현하려는 수년간에 걸친 수많은 집단 비전 덕분에 비트코인이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글이란 개인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코드의 실행은 해석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합의가 생명인 시스템에서 코드로 구현된 규칙을 준수하는 데는 코드 말고는 달리 고려할 사항이 없다. 필자가 짐작건대, 사토시가 처음 비트코인 소스 코드를 공개했을 때 자신이 대중을 위해 거대한 사회적 가치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테지만, 비트코인이 단지 10년 만에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격 등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현상은 차치하고, 비트코인의 현재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사람들이 쏟아부은 노력, 특히 자발적인 지원자들의 노고는 무척 고무적이다. 최근의 버전 업그레이드(0.17)만 해도 무려 135명의 개발자가 기여했고, “내 변경 사항을 가져가세요”라고 요청하는 풀 리퀘스트(pull request)는 무려 700건이 넘었다.

블록체인이 계속 확장되는데도 동기화 시간은 개선되고 있다. 이더리움에 비해서는 느리지만, 아직도 2시간 반 이내에 제너시스 블록부터 체인의 끝까지 비트코인 블록체인 전체를 동기화할 수 있다.

지루트(G’Root), 방탄기능(Bulletproofs), 비밀 거래(Confidential Transaction), 비밀 자산(Confidential Assets), 슈노르(Schnorr) 서명 등 기본 레이어를 위한 신기술이 등장했고,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ning Network) 덕분에 개발자들이 기본 프로토콜의 컨센서스 변경 없이도 자유롭게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제2 레이어 프로토콜인 리퀴드 네트워크(Liquid Network)가 출시되면서 지금까지 논의만 되어왔던 사이드체인(sidechain)을 거래소 간 정산을 개선하는 데 처음 적용하게 되었다. 이런 모든 새로운 기술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속도로 비트코인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 것이다.

 

새로운 방향


사토시가 비트코인 소스코드를 공개해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토시는 컴퓨터 공학자들이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경제적, 사회적 인센티브를 이용한 창의적인 해법으로 해결했다.

사토시의 천재성은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떠나기로 한 결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토시는 자신이 비트코인 프로젝트의 성공에 저해가 될 것을 우려해서 과감하게 프로토콜의 지배 권한을 대중에게 양도하고 홀연히 떠났다. 사토시는 대다수에 의한 합의 메커니즘 보상을 코드로 구현했고, 이를 통해서 대중이 비트코인의 진화를 이끌도록 했다. 

“스티브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라.” –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에 팀 쿡에게 남긴 유언이다. 애플 직원들이 잡스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한다면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그의 유언은 일리가 있다. 미래는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지혜에만 의존해서는 절대로 발전을 위한 옳은 결정을 할 수 없다.

필자는 사토시 역시 사람들이 자신의 백서를 가지고 미래를 재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특히 백서가 발표되고 난 후 사토시와 다른 개발자들이 비트코인 코드를 대폭 수정했기 때문에 더욱 확신이 든다. 독자적인 선택을 하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탈중앙화한 네트워크에서 10년 묵은 문서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코드에 귀를 기울일 때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3_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4_문영훈 논스 대표: 미래의 혁명가들이여, 논스로 오라!

#5_김종승 SKT 블록체인사업개발Unit Token X Hub TF장: 화폐 르네상스,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6_이송이 37coins 창업자: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세계평화’의 꿈은 현재진행형

#7_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사토시, 비탈릭, 그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자세

#8_이준행 고팍스 대표: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투명한 자본조달 구조 바꿔보자

#9_김휘상 해시드 CIO: 블록체인이 우리의 노동과 데이터 주권을 뒤바꿀 것이다

#10_찰리 슈렘 비트인스턴트 창업자: 베네수엘라, 터키 경제위기를 ‘남의 일’로 여기는 당신께

#11_아담 크렐렌스타인 심비온트 공동창업자: 사토시의 비전은 암호화폐보다 분산원장 기술에 녹아있다

#12_브루스 펜턴 애틀란틱 파이낸셜 CEO: 비트코인 백서는 헌법이다

#13_데이비드 슈와르츠 리플 CTO: 포드자동차 모델T 110주년,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