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냐고요? 코인 사기요. 아시잖아요. 코인 만들어서 홍보하고, 판매량 부풀리고, 다단계식으로....그랬다가 펑!"

마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민이 보기에 그녀는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멤버가 된다면 당신이 망친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집어치워요. 이런 장난."



 

김태권 그림

 

다시 한국, 한 병원


 

응급실 소파에서 밤을 샌 민은 자신이 아직도 청년이 쥐어 준 종이쪽지를 쥐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한강에 투신하려고 했던 다섯 명 중에 투신자살에 성공한 것은 그 청년 뿐이었다.

종이를 다시 펼쳐 보았지만 아무것도 써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밤 취기 때문에 잘못 본 모양이었다. 응급실 쪽으로 가서 둘러보았다. 몸집이 작은 소녀의 이름은 마리였다. 지난 밤, 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은 목숨이었을 거였다.
살아남은 세 명은 모두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하나씩 병원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민은 대신해서 병원 수속을 마쳐야 했다.

-핸드폰 연락처에 있는 부모와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밤새 답이 없었어요. 전화는 안되고요.

접수처 직원이 민에게 말했다.
다행히도 마리의 경과는 좋았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의식을 되찾았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쾌활할 정도로 가벼운 말투였는데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습관이 된 듯했다.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커튼을 닫았다. 그 안에서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렸다. 곧 그녀는 젖은 옷을 입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왔다.

-입원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이대로 나가시겠어요? 보호자가 아직 연락이 안되는데.

간호사가 말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이리로 오고 계신 지도 모르는데.

민이 말했다.

-아무하고도 연락이 안될 거에요. 되면 제가 한강에 빠졌겠어요?

마리가 천장을 멍하니 보면서 말했다.

-부모님들은 저번 달에 돌아가셨고요. 자기들 때문에 제가 더 나쁜 사람되기 전에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마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요? 코인 사기요. 아시잖아요. 코인 만들어서 홍보하고, 판매량 부풀리고, 다단계식으로....그랬다가 펑!
마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민이 보기에 그녀는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만 말해. 우선 몸을 추스린 다음에 다 들어줄게.

-네, 고마워요. 이 슬픈 세상에서 하루 더 살게 해주셔서. 하지만 추스른 다음 다시 죽을 거에요. 대표님이 절 따라 다니시면서 막으시게요? 불가능할테니 아예 생각도 하지 마세요.

-넌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 경찰을 불러서 너를 보호소에 넣어야 되겠니? 그럼 하루가 아니라 한 달 동안은 더 괴로울 걸. 우선 밥이나 먹자.

민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서 밖으로 나갔다.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면서 그녀는 한 번도 고개를 들어 그를 보지 않았다.

-천천히 먹어.

-류가 준 쪽지 읽으셨어요?

-아무 내용도 없었어.

-류도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도대체 아무 내용도 없는 쪽지를 왜 전하라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류가 이미 죽었다는 기억이 났던지 갑자기 마리는 목이 메어오는 듯 보였다.

-그 쪽지는 누가 보낸 건데?

-몰라요. 다섯이 같이 묵은 모텔에서도 계속 무슨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었어요.

-너, 갈 데는 있니? 구치소 얘기는 잊어.

민이야 말로 밥맛이 없어서 한 숟갈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구치소는 제가 아니라 대표님이 계셔야 하는 곳이잖아요. 결국은 대표님도 코인에 손대셨다면서요. 그것도 사기 코인에.

-내가 한 일이 아니야.

민은 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

-서류상으로는 그렇겠죠.

-서류상으로는 맞아. 하지만 내 양심으로는 아니야.

-일이 복잡하게 되셨군요.

그제야 마리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대표님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너도 코인 사기를 할 사람이 아닌 거 알아.

-대표님이 그러셨죠. 암호화폐의 가치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환산한 거라고.

-기억하고 있네.

-그렇게 어렵게 말씀하셨는데 기억한 게 대단하지 않아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라도 다 외웠거든요.

-미안해.

-뭐가요?

마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모든 게.

-거짓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이 그녀를 올려다보자 그녀가 웃었다.

-앞으로 절대 사과같은 거 하지 마세요. 대표님은 사과하는 게 안 어울려서 거짓말처럼 들리거든요. 아...걱정하지 마세요. 살아남은 건 제 의지에요. 전 죽기 싫었거든요. 살려줘서 고마워요. 밥값은 제가 낼게요.

마리는 카운터로 가서 젖은 옷 속에서 젖은 돈을 꺼내 지불했다. 민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음식점을 나와서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섰다. 푸른 등이 켜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건너기 시작했다. 민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광판을 문득 올려다보는데 이상한 글자가 화면에 떠 있는 게 보였다.

더 파이브의 멤버로 초대합니다. -더 퍼스트-

안경을 잠시 벗고 눈을 비볐다. 뭔가 잘못 보이는 거겠지. 민은 다시 전광판을 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전광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떴다.

멤버가 된다면 당신이 망친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흔들고 다시 올려다보니 전광판에는 흔한 패션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머리가 잘못된 게 분명해.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민은 횡단보도를 건너서 다른 쪽으로 뛰어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미터기에 글자가 떠 있었다.

멤버가 된다면 당신이 망친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기사 아저씨 미터기가 좀 이상하네요.

민은 혹시나 싶어서 기사에게 물었다.

-미터기의 가격이 정상이에요. 기본요금이 천 원 올라서 그래요. 한 달이나 됐는데. 모르셨어요?

-아닙니다.

민이 다시 눈을 깜박이고 보자 미터기는 정상적으로 보였다.

핸드폰을 켰다. 그러자 글이 떴다.

'지금 보는 글은 당신의 안경을 통해 뇌로 보는 영상입니다. 쪽지를 전해줄 때 당신의 증강현실 안경을 해킹하는 칩을 당신 옷에 붙였습니다. 쪽지를 전해줄 때 당신에게 전파 칩이 이식되었습니다.’

-내가 쓴 글이 보여요?

민은 핸드폰 메모에 글을 입력했다.

-보입니다.

-당신은 누구에요?

-멤버가 된다면 당신이 망친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집어치워요. 이런 장난.

-응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이 이년 전까지 보유하고 있던 암호 화폐 전부를 곧바로 넣어드리죠.

-요구조건은?

-당신이 만들던 플랫폼을 재건하면 됩니다.

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은 헐값에 넘어가서 글로벌 기업의 사내 프로젝트 플랫폼으로 쓰이고 있었다.

-작업을 시작하면 곧바로 반을 넣어드리겠습니다. 작업 중간에 처음에 드렸던 두 배를 넣어드리죠. 그럼 배터리가 다할 시간이라서. 그만.

두 배라면 미화 수천 억 정도의 규모였다.

 


 

본격 블록체인 SF <더 파이브>는 소설만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과 용어들에 대한 설명을 기술 에세이 형식으로 제공합니다. 생소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동시에 교육적인 목적도 달성하고자 합니다. 1~3화의 배경이 된 지식과 사건 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단속평형 (Punctuated Equilibrium)


소설 1화에 세상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단속평형의 예'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속평형은 진화생물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진화적 변이가 오랜기간동안 커다란 변화가 없다가 어느 순간 빠르고 폭발적으로 나타나 새로운 종을 형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단 큰 변화가 있은 이후에 다시 안정을 찾는 상황이 오고, 또 어느 순간 폭발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개념입니다.
진화생물학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사회학과 경영학, 경제학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용어입니다. 혁신과 변화를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은 증기기관이나 전기, 또는 전화와 같이 폭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산업을 파괴적으로 변신시키는 힘으로 동작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인프라가 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관된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서 여기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균형을 찾게 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커다란 혁신이 일어날 때 또다시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이지요. 소설에서는 유크로니아의 탄생과 성장의 방식이 점진적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끌어오는 폭발적인 변화의 방식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고 ‘단속평형의 예'를 언급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딜로이트의 John Hagel III 등이 주장한 지속적 파괴(constant disruption) 모델 등도 언급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파괴적 혁신의 주기가 과거에 비해 훨씬 빨라져서 더 이상 안정주기라는 것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급격한 발전을 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특정 기술에 집착해서 안정을 취하려 한다면 그 다음 혁신기술에 의해서 바로 파괴를 당하는 상황이 반복되므로 자연스럽게 지속적 파괴와 공공체계의 정책이나 규제 등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그 간극이 넓어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근본적인 프로세스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디지털 혁명이 가져오는 변화도 이런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떠다니는 섬이 독립 국가가 된 유크로니아 호


유크로니아는 영해를 떠다니는 거대한 배 또는 움직이는 섬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 개념은 SF에서 자주 등장한 것이지만, 근 미래를 배경으로 실제로 이런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페이팔 마피아의 주요 멤버이고, 페이스북의 투자자, 제로투원(Zero to One)의 저자인 피터 티엘이 참여하고 있는 시스테딩인스티튜트(Seasteading Institute, 이하 SI) 입니다. SI에서는 세계 최초의 떠다니는 나라의 프로토타입을 남태평양 타이티 인근에 2020년 출범시킨다는 목표로 “정치인에게서 휴머니티를 자유롭게 한다 Liberate humanity from politician” 이라는 모토를 걸고 몇 개의 호텔과 집, 레스토랑 등으로 구성된 미니 신도시 형태의 떠다니는 도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후 2050년 까지 전 세계의 바다에 수천 개의 떠다니는 도시 국가를 만들고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인 체계를 갖춘 커뮤니티를 구상하고 있는데, 이들의 구상이 실체화가 될 것인지 아니면 꿈에 그칠 것인지는 더 두고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이들의 구상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유크로니아와 같은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경제시스템이 같이 결합되지 않고서는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유크로니아 전자시민권의 모델이 된 에스토니아 e-Residency


유크로니아의 전자시민권의 모델은 에스토니아의 e-Residency 입니다. 이 소설의 공동작가인 저도 받은 일종의 디지털 시민권인데요. 새로운 디지털 국가를 만들겠다는 발트해 연안국 에스토니아의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 2014년 처음 소개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150개가 넘는 국가에서 이미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자시민권을 획득했고, 이들을 통해 설립된 회사가 5천 개를 넘어섰습니다. 이 시민권을 받은 사람은 유럽연합 국가의 일원으로서 원격지에서 회사설립과 운영 및 세금납부 등의 경제활동이 원격으로 가능해집니다. 은행계좌 개설 등이나 지불결제도 페이팔(PayPal) 등의 서비스를 통해 가능하며, 현지인의 관여가 전혀 없어도 됩니다.

다양한 필요 문서도 모두 디지털 기반으로 암호화 기술을 통해 처리되며, 스캐닝 조차 필요없으니 정말 대단한 편의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의 상당 수 기술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운영되며, 인증카드와 보안성 부분에서도 매우 높은 편의성과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작가인 제가 2016년 핀란드의 슬러쉬(Slush) 행사에서 만난 에스토니아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통해 전 세계의 뛰어난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이들의 경제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의 적은 인구와 영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면서 “디지털 세계에는 영토의 크기와 시간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조심해야 할 블록체인 프로젝트 다단계


더파이브의 한국 멤버인 한민과 관련한 에피소드에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큰 다단계 코인에 대한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습니다. 특히 거품이 많을 때에는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말만 믿고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문제가 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다단계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코인들의 경우 유명한 기업 브랜드(예를 들어 카카오)를 사칭해서 판매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수법은 결국 돈을 모아서 잠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아져서 중국 정부도 사정의 칼날을 빼 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사기에 당하지 않는 지식을 갖추는 것입니다. 앞으로 전 세계에서 이와 관련한 공조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나 파격적인 혁신이 나타날 때에는 이에 편승한 사기도 늘어나기 마련이므로, 더더욱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화 보기>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다음 주에 계속>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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