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은 2019년 1월 '가상화폐 열풍 1년 신세계는 과연 있는가'에서 불법 다단계 범죄를 방송했다. 출처=KBS1 '추적 60분' 방송 캡처
'추적 60분'은 2019년 1월 '가상화폐 열풍 1년 신세계는 과연 있는가'에서 불법 다단계 범죄를 방송했다. 출처=KBS1 '추적 60분' 방송 캡처

불법 다단계와 유사수신, 사기는 한국의 금융 사기범들이 선량한 투자자들의 등을 치는 가장 흔한 수법들이다. 암호화폐 업계에도 돈 냄새를 맡은 범죄자들이 몰려든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9년 불법 사금융피해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를 바탕으로 불법 유사수신 업체 186곳을 수사 의뢰했는데 이 중 92곳이 가상자산 관련 업체였다. 

유사수신은 투자 기대 수익을 과장하거나, 원금보장을 약속하는 행위를 말한다. 개념은 간단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사기를 치는 구체적인 방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한탕 성공만 하면 큰돈을 사기 칠 수 있는 다단계 유사수신은 어느 정도 모델이 확립되어 있다. 대표자 - 총책 - 중간모집책 - 하위가입자의 구조다. 

가상자산 투자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이 사용된다. 일단 초대코드를 통해서만 가입·접속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고, 하위가입자들을 모아 '각자 암호화폐 거래소에 가서 ㅇㅇ코인을 사서 ㅇㅇ지갑으로 예치(스테이킹) 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하위가입자들이 이 지령을 수행하면 예치의 대가로 연 20~50% 정도의 이자를 일별로 쪼개서 정해진 날짜에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하위가입자들은 원금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연 50%를 앉아서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한다. 사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사기는 50%를 보장한다는 문구가 쓰여져 있던 홈페이지가 어느 날 사라지면서 완성된다. 하위가입자들이 예치한 암호화폐를 들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하위가입자들이 다단계 지갑에 예치한 암호화폐를 돌려받지 못한다. 

출처=공정거래위원회 '불법 다단계' 예방 영상 캡처
출처=공정거래위원회 '불법 다단계' 예방 영상 캡처

이런 식의 암호화폐 다단계에 쓰이는 코인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국내 거래소에 상장이 되어 있다. 하위가입자가 원화를 주고 토큰을 사서 예치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특별한 호재 없이 갑자기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 후 5일 이내에, 거래소 안에 있는 전자지갑에서 외부에 있는 특정 지갑으로 대량의 토큰이 출금된다는 점이다. 그 후 대량의 토큰이 입금된 지갑에서는 일정한 주기로 한 종류의 토큰을 거래소에 있는 여러 계정으로 송금한다. 이런 패턴이 몇 번 지속되면 해당 토큰의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의 지갑에서 여러 개의 지갑으로 비슷한 규모의 금액들이 동시에 빠져나가는 트랜잭션이 온체인 데이터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이자 지급 때문이다. 다단계 일당들이 하위가입자들에게 예치에 대한 이자를 지급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상장 코인의 다단계 정황

최근 온체인 데이터를 뒤지다가 우연히 국내 정상급 거래소 A에 상장된 토큰 중, 다단계 정황이 있는 토큰 세 개를 찾았다(편의상 B, C, D)라고 하자. 재미있는 점은 이 세 개의 토큰이 하나의 공통 지갑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다단계 세력이 세 개의 토큰을 이용해 다단계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온체인 데이터의 흔적을 따라가기 전에 용어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하위가입자들에게 예치금을 받는 지갑을 '입금 지갑', 정해진 시간에 보상을 내보내는 지갑을 '보상 지갑', 보상 지갑들에 토큰을 배분하는 더 상위의 지갑을 '총괄 지갑'이라고 부르겠다. 

B토큰은 2019년 3월 A거래소에 상장했다. 다단계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는 2020년 9월 4일이다. 거래소에서 갑자기 이유 없이 가격이 급등하더니 지갑 주소가 0xf로 시작하는 '총괄 지갑'에서는 반복적인 출금이 시작됐다.

출금된 토큰들은 3개의 보상 지갑(0xa로 시작, 0x2로 시작, 0xe로 시작)과 나머지 물량을 모아 놓은 지갑(지갑 주소 0x8로 시작)으로 전달됐다. 이 보상주소들은 다단계 참여자로 추측되는 소유자의 거래소 지갑으로 일일 이자를 전송했다. 이날 보상주소 1~3에서 전송된 B코인의 수량은 약 9억 9154만 8126개(토큰 총량의 19.8%)다. 

2020년 2월 26일 A거래소에 상장된 C코인은 8개월 후인 10월 22일부터 다단계 분배가 시작됐다. 흥미로운 점은 C코인의 총괄지갑 및 보상지갑으로 활용된 전자지갑 4개가 B코인 사례에서 같은 용도로 활용된 4개의 지갑 주소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단계용 암호화폐의 전형적인 거래내역을 보이는 토큰 B, C, D의 주요 지갑 관계도. B와 C는 주요 지갑 4개를 완벽히 공유하고 있고 D는 토큰 송금에 사용되는 이더가 이들 지갑을 따라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출처=최지혜
다단계용 암호화폐의 전형적인 거래내역을 보이는 토큰 B, C, D의 주요 지갑 관계도. B와 C는 주요 지갑 4개를 완벽히 공유하고 있고 D는 토큰 송금에 사용되는 이더가 이들 지갑을 따라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출처=최지혜

B토큰 다단계의 보상 지갑으로 쓰였던 0xa로 시작하는 지갑이 C토큰 다단계에서는 총괄 지갑 역할을 했다. 이 사례에서 보상주소 1~4가 이자로 배분한 B토큰은 수량은 1억 4061만 1455개다. 

가장 최근인 올해 1월 상장한 D토큰의 경우에는 토큰 로고를 새겨넣고 관련 업체임을 암시한 홍보물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다단계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고, 조회공시를 통해 다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공식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D토큰 관련 온체인데이터에서도 다단계로 추정되는 트랜잭션들이 관측된다. 다만 4개의 주요 다단계 지갑이 모두 겹치는 B, C와는 달리 D는 한 개의 지갑만 겹친다. 0xf로 시작하는 전자지갑에서 출발한 이더가 D의 다단계 지갑인 0x2지갑을 거치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통속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진화하는 코인 범죄, 시세조종

위에 설명한 다단계 수법은 B, C, D 토큰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업계에 다단계로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사례가 흔하다. 이들의 방법은 나날이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원금 보장과 과대 수익률을 광고하지만, 실제 다단계 참여 단계에서 원화는 사용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원화가 아닌 가상자산을 거래소에서 구매해 지정된 다단계 주소로 입금하게 하고 별도의 지갑에서 보상 토큰을 분배받는다. 특히 유통량이 적고 가격이 저렴한 특정 코인을 다단계 업체가 자의적으로 선택해 토큰을 시장에서 사들여 가격조종을 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원금과 이자를 받지 못한 피해자도 알 수 없는 펌핑에 투자한 투자자도 보상을 요청할 곳이 없다. 

앞으로도 고수익을 약속하는 프로젝트는 생겨날 수 있다. 범죄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예치 이자를 지급할 때 사용한 지갑을 다음 범죄 때 교체하는 것을 잊을 만큼 이들의 유혹에 빠지는 피해자가 많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내 옆 사람이 쉽게 초대박이 났다며, 같이 하자고 권유할 때가 내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최지혜 헥슬란트 리서치센터장. 출처=헥슬란트
최지혜 헥슬란트 리서치센터장. 출처=헥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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